다양한 시각에서 사회적경제를 분석하다

‘사회적경제의 혼종성과 다양성’ 심포지엄

사회적경제 심포지엄 1.jpg

ⓒ 김대현 사진기자

  지난 10월 27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설립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사회적경제의 혼종성과 다양성’이 개최됐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4월부터 이어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설립 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이었다. 1부에서는 사회적경제의 혼종성에 대해, 2부에서는 사회적경제의 다양성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의 분석이 이뤄졌다.

 

  심포지엄은 사회과학연구원장 구인회 교수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구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지배적인 경제 체제로 이해하던 시장경제에서 여러 부작용들이 발견되면서 대안을 찾게 됐고, 그 중 하나가 사회적경제”라면서 “오늘 심포지엄이 현실의 사회적경제를 여러 학문 분야에서 조명하고 사회과학적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의 혼종성

 

  ‘사회적경제의 혼종성과 정치학적 연구의 가능성’이란 제목으로 첫 발표를 맡은 김의영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체계를 소개하고 연구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사회적경제는 변화무쌍하게 진화, 확대되는 영역이기에 한 가지 정의로 사회적경제를 설명하기는 힘들다”며 “사회적경제를 설명하기 위해선 여러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경제 조직은 기본적으로 민주성, 사회성, 경제성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경제 조직은 이 세 요소를 각각 어느 정도로 갖췄는지, 그리고 자본과 인적 자원 중 무엇을 더 지향하는지, 개별 분야 서비스와 지역 공동체 중 무엇을 더 지향하는지 사업 방향성 등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뉠 수 있다.

 

  김 교수는 사회적경제 연구 사례로 국가간 비교 연구를 제시했다. 영국과 스웨덴의 사회적기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영국의 사회적기업이 주로 소규모공동체와 자원봉사조직이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 형태로 등장했지만 스웨덴의 사회적기업은 주로 협동조합의 형태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상품을 공급하며 나타났다. 이런 차이는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내에서도 영국은 자유시장경제를, 스웨덴은 조정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영국의 사회적기업은 시장에 의존적으로, 스웨덴의 사회적기업은 국가에 더 의존하는 방향으로 적응했고 그 결과 둘에는 큰 차이가 생긴 것이다.

 

  안도경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협동조합과 조직경제학’이란 제목으로 조직경제학적 시각에서 협동조합을 분석했다. 조직경제학에 따르면 협동조합의 경제적 성공은 그 조직 형태가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안 교수는 한스만(Hansmann)의 협동조합 이론에 따라 이를 설명했다. 경제조직의 개개인은 최소로 기여하고 최대로 보상받으려 한다. 소유와 생산의 주체가 분리된 조직에선 이를 막기 위해 소유자가 생산자를 감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감시비용이 증가한다. 협동조합은 감시의 필요가 적어 감시 비용이 감소하지만 한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의 기여에 무임승차하려는 문제가 나타난다. 또 협동조합은 많은 참여자 사이에서 의견을 수렴해야 하기 때문에 집단의사결정비용이 커진다. 이 비용은 참여자 사이의 동질성이 높을수록 감소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참여자 사이의 이질성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가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유동성과 안정성을 조화시키는 가입과 탈퇴 규칙, 비용을 줄이며 내적 갈등을 완화하는 집합 선택 및 갈등 해결 장치, 적절한 감시활동과 점증적 제재 등을 제시했다. 안도경 교수는 “이처럼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들을 통해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경제성을 제고할 수 있다”며 발표를 마쳤다.

 

  한신갑 교수(사회학과)는 ‘협동조합 생태계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협동조합의 환경에 대한 분석을 소개했다. 생태학에서 말하는 환경수용력(carrying capacity) 개념에 따르면 특정 생태계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개체 수에는 제한이 있다. 이를 사회적경제에 적용하면, 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수에도 제한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교수는 “수리통계적인 분석을 거친 결과, 협동조합의 성장세가 갈수록 둔화되는 서울시는 협동조합에 대해 환경수용력의 한계에 달했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따라서 앞으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조합을 어떻게 잘 살리고 엮어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발표를 한 권헌익 교수(인류학과)는 “모든 경제가 사회적경제라는 것이 인류학의 기본적인 생각”이라면서, 혼종성이 인간의 삶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개념이라 분석했다. 권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셀 모스의 에스키모인들에 대한 에세이를 소개했다. 에스키모는 여름과 겨울에 전혀 다른 생활양식을 보인다. 여름에는 핵가족으로 살며 사냥도 따로 하는 반면 겨울에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사유재산의 개념이 희박해진다. 개인주의적 삶과 공산적 삶이 혼종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의 개인적 삶이 있어 겨울의 공산적 삶을 즐길 수 있으며, 겨울 동안 공산적 삶을 통해 풍족하게 지낼 수 있기에 여름의 개인적 삶이 가능하다. 둘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로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한 사회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산적인 것은 낯설 수있지만, 이런 혼종성은 사실 인간 삶의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속성”이라 말했다.

 

  권헌익 교수는 발표를 마치며 사회적경제의 사회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경제는 시장과 화폐, 비시장과 비화폐의 혼성인데 그 중 비시장과 비화폐라는 요소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사회적경제를 화폐 경제, 자본주의 경제와 유리된 순전히 사회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면서 사회적경제를 이상화하려는 태도를 비판했다.

 

 

사회적경제의 다양성

 

  안상훈 교수(사회복지학과)는 ‘한국형 복지국가 전략과 사회적경제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복지국가와 사회적경제 개념을 연결해 분석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는 ‘중부담 중복지 국가’가 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그만큼의 세금 징수는 어려우므로 국가가 부담하지 못하는 영역을 사회적경제에게 맡기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사회복지에 대한 재정투입을 최소화하면서, 사회복지 영역에 사업자 진입을 규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적은 재정으로 사회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인데, 이 때문에 ‘왜곡된 시장’ 구조가 생겨난다. 예컨대 의사나 약사들은 그들의 서비스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서비스보다 수익 위주의 사업에 치중하는 ‘나쁜 공급자’로 몰리는 것이다. ‘나쁜 공급자가 판치는 왜곡된 시장’에서는 재정이 더 투입돼도 그것이 국민의 복지 증진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안 교수는 실제 사회복지 영역에서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적경제 분야의 공급자는 ‘나쁜 공급자’보다 착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진입장벽만 풀어주면 공급자들이 선한 경쟁을 펼치게 돼 선순환하는 민관협력이 가능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탈리아 협동조합 ‘몬드라곤’의 사례에서 보이듯 어린이 돌봄 협동조합, 사회적 건축 협동조합, 정원 관리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협동조합이 가능하고, 이런 협동조합이 기존의 사회복지 공급자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성과 사회적경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최인철 교수(심리학과)는 심리적 관점에서 사회적경제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사회적경제에 참여하는 이들의 심리적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심리학 이론을 다뤘다. 최교수는 “‘순수한 이타성이 가능하느냐’는 심리학의 오래된 질문”이라면서 이 질문은 “사회적경제가 지속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연관되기 때문에 사회적경제 연구에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순수한 이타성이 가능하다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순수한 이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심리적 장벽이 돼 사회적경제로 사람들을 이끌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경제에 오랫동안 참여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요인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다. 순수한 이타성이 아니더라도 사회성이나 가치관 때문에 사회적경제에 참여할 수 있다. 공동체 지향적이고 비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적경제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런 연구를 통해 사회적경제 자체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사회적경제에 이끌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서 “인간은 누구나 (충분한 경제적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확신이 사회적경제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다”고 말하며 발표를 끝냈다. 

  구양미 교수(지리학과)는 ‘사회적경제와 지리, 공간, 지역’이라는 제목으로 지리학적 관점이 사회적경제에 대한 연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소개했다. 구 교수는 사업체 수, 인구수 대비 협동조합 수 등 어느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협동조합의 발전 현황이 다르게 나타나는 사례를 보여주며 “다양한 지리학적 기준을 통해 다각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나타나는 조건이나 사회적경제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알 수 있다”면서도 이를 위해 큰 규모의 자료 조사 및 구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다양한 지리적 단위에서 상이한 사회적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것을 심층적으로 관찰하는 데 지리학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옥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네덜란드의 사례를 중심으로 ‘유럽 사회적경제의 발전과 시사점’에 대해 다뤘다. 네덜란드는 사회적경제가 활성화돼있고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 네덜란드 사회적 기업들의 유급고용창출 비율은 EU 가입국 평균을 웃돌고 사회적경제 관련 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회적경제에 대한 네덜란드인의 인식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이 교수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지도가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같은 EU 신생 회원국과 비슷한 수준인데도 어떻게 사회적경제가 크게 활성화될 수 있는지 연구할 만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사회적경제에서 나타나는 혼종성과 다양성의 특징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혼종성은 서로 다른 영역이 합쳐져 공통영역을 창출할 때 생긴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혼종성이 약하게 나타나는데 이 교수는 이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서로 독립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이 두 영역이 접점 없이 존재하기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이어주는 제3의 영역이 필요하다. 이옥연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사회적경제는 이렇게 분리된 영역들을 이어주는 제3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면서 발표를 마쳤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치킨집도 협동조합이 되나요?

Next Post

[다큐] 녹두의 이웃, 천막을 지키는 사람 -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