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룬드 대학은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다. 룬드 대학의 건물들은 고풍스
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은 룬드 대학의 중앙도서관.
느지막이 일어나 창밖을 본다. 오늘도 하늘은 흐리다. 해를 볼 수 있는 날보다 볼 수 없는 날이 더 많은, 전형적인 북유럽의 11월이다. 여기에 바람과 비가 더해진다. 안개도 자욱해 자전거를 타고 밖을 돌아다니면 자연스레 얼굴에 미스트가 뿌려지는 보습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하늘은 우중충해도 그 아래 세계마저 칙칙하지는 않다. 빨강, 노랑, 초록이 어우러진 나뭇잎들은 흐린 날씨에 봐도 색감이 예쁘다. 붉은 벽돌 건물들과 그 사이로 구불구불 난 자갈길, 그리고 11세기경 지어져 도시 한복판에 가만히 서있는 성당에는 천 년에 가까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곳은 서울에 비해 무척이나 한산한 거리와 오후 5시쯤이면 이미 사라져버리는 해 덕분에 상당히 차분하다.
마음도 도시 분위기를 닮아가는 지 차분할 때가 많다. 어느덧 약간의 쓸쓸함과 칙칙함을 지닌 이곳의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교환학생을 오면 들뜬 나날들만 계속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사뭇 다르다. 비슷비슷하게, 그리고 조금은 정신 없이 돌아가는 나날들. 나는 수업을 듣고, 리딩을 하고,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그럼에도 일상은 자주 새롭다.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보면 특히 그렇다. 가게든 관공서든 문 여는 시간은 한국 기준으로 너무 짧고(이곳 세*일*븐의 운영시간은 그 이름을 충실하게 따른다), 교직원들은 한 달 가까이 휴가를 떠날 예정이니 그 동안 문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 메일을 보낸다(이용자의 불편함을 통해 스웨덴의 노동복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명 남짓한 수업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 학생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거리낌 없이 질문하고 교수를 그의 이름으로 부른다. 학제도 특이해 학기의 전반부나 후반부에만 수업이 이루어지는 강의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수업이 일주일에 많아야 세 개 정도다. ‘주4파’의 여유를 갈망하던 지난 학기를 떠올려보면 신선한 충격이다. 때문에 여기서 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한국을 떠나서야 여유가 생긴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어쨌든 그 시간을 채우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나는 주로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곤 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이런저런 행사들에 부지런히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생활이 재밌고 덕분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모임도 생기고 재밌게 살고 있지만, 가끔씩 외국에 나와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럴 때면 그냥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함께한다. 각자 만들어 온 음식을 맛보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 중 마음이 가장 편한 때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불쑥 찾아온다. 지금에야 일상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조용한 성격과 시원치 않은 영어실력 탓에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더구나 자기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강한 스웨덴 사람들과, 자신을 먼저 드러내야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는 이곳 문화가 내겐 참 낯설었다. 그때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한국의 풍경들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한국에도, 스웨덴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덧 교환학생 생활의 반이 지났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것 자체가 되돌아보면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교환학생으로서의 삶은 외국에 나온 학생들 수만큼 다양할 테지만, 적어도 나의 삶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신민섭(외교 10)

늦바람이 불어 4학년 2학기에 스웨덴 룬드(Lund) 대학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중이다. <서울대저널> 활동을 해오다 차기 편집장 후보로 지명되는 불상사(?)를 피하고자 외국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현 편집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 글을 기고하면서 <서울대저널>과의 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유럽에서의 크리스마스를 잘 보낼 수 있을까’라는 사소한 고민거리로 괴로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