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노동현장 스케치

성과급제와 외주화가 병원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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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병원)과 그 분원(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세종시립의원)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약 6,600명이다. 이들의 자세한 인원 구성은 표와 같다.

여기에 1,000명을 상회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더해진다. <서울대저널>은 서울대병원 외과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와 공공운수노조 산하 보라매병원 민들레분회 박재숙 부분회장을 만나 그들의 업무 내용을 자세히 들어봤다.

  긍정적이지 않은 ‘포지티브(positive)’

  서울대병원 외과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3교대 스케줄에 따라 출퇴근한다. 교대 스케줄은 오전 7시~오후 3시의 데이(day), 오후 3시~오후 10시의 이브닝(evening),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7시의 나이트(night) 근무로 구성된다. 데이와 이브닝 근무에서는 세 명이, 나이트 근무에는 두 명이 근무한다. 여기에 P.M.과 A.M.에서 이름을 딴 ‘P근무’ 또는 ‘11a근무’ 한 명이 더해진다. 오전 11시 무렵에 출근해 오후 7시 반 무렵까지 데이와 이브닝 근무자들을 지원하는 근무다.

  주5일제가 적용되고 있어 휴일의 수는 한 달의 주말 숫자와 일치하는 것이 원칙이고 여기에 생리휴가 1일이 추가된다. 하지만 항상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 원칙이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스케줄표의 왼쪽에 표시되는 ‘잔휴’에는 원칙적으로 더 쉬어야 할 휴일의 수가 표시된다. 예를 들어 20일을 쉬어야 할 간호사가 15일밖에 쉬지 못했다면 잔휴는 5다. 잔휴의 수는 보통 0보다 크기 마련이다. 이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는 아이러니하게도 ‘포지티브(positive)’다.

  A씨는 보통 근무 시작 전 30분까지 출근한다. 옷을 갈아입은 후 환자들에게 투약할 약이나 주사제 등을 준비해 둔다. 사전 준비가 끝나면 이전 시간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받는다. 환자들의 상태가 좋은 경우에는 금방 끝나지만,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가 있거나 숙지해야 할 사항이 많으면 30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인수인계를 받은 후에는 ‘라운딩(rounding)’에 나선다.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고 활력징후(vital sign)를 측정하는 일이다. ‘팀 너싱(team nursing)’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간호사들은 한 사람당 10명 내외의 환자를 도맡아 관리한다. 라운딩을 나설 때는 노트북과 함께 다양한 간호 도구가 들어 있는 카트를 끌고 다닌다. 환자와의 간단한 문답을 통해 대소변을 몇 번 봤는지, 물은 많이 마시는지 등을 체크하고 노트북에 간호 소견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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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운딩을 하는 간호사의 모습. 간호사의 카트에는 노트북 외에도 응급 처치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이 실려 있다. ⓒ김대현 사진기자

  라운딩을 하면서 A씨는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중환자가 많은 외과 병동에서 환자들은 몹시 예민하고, 간호사들에게 툭하면 짜증을 부리기 일쑤다. 단순한 짜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나 성추행까지 당할 때도 있다. A씨 또한 환자에게 엉덩이를 맞은 경험이 있다. 환자는 ‘네가 내 옆에 엉덩이를 갖다 대지 않았느냐’고 대꾸했다. 그러나 항변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간호사가 환자에게 항의를 하는 것이 환자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라운딩에는 보통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상태 확인 외에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체위를 바꿔 주고 피가 묻은 환자복을 갈아입혀 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하다가도 새로 입원하는 환자가 있거나, 다른 병실에서 환자의 보호자가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하면 바로 달려가야 한다.

  라운딩이 끝나도 A씨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라운딩 중에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있었거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요청이 들어올 경우 의사에게 보고한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검사나 투약 등을 추가로 처방하면 그것을 진행하는 것 역시 A씨의 몫이다. 라운딩을 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페셜 라운딩(special rounding)’을 통해 몇몇 환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A씨는 “과연 근무 시간 내에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면서, “노동 강도를 완화하기 위해선 이브닝 근무 때 P근무자 한 명과 나이트 근무 때 한 명 정도의 인력이 더 충원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에 오기 전까지 두 곳의 병원에서 일해 봤다는 A씨는 “전반적인 노동 강도는 비슷하지만, 나이트 근무를 단 두 명이서 감당하는 곳은 서울대병원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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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덧 12시, 밤이 깊었지만 간호사는 부지런히 병동을 돌아다닌다. ⓒ김대현 사진기자

  간호사를 위한 점심시간은 없다

  간호사들에게는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따로 할당되어 있지 않다. 수간호사는 1시간의 점심시간이 보장되어 있지만 나머지 간호사들은 눈치껏 끼니를 때워야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휴식 없이 바로 업무로 돌아와야 한다. 일이 많을 경우 아예 식사를 건너뛰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A씨는 “밖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한 후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여유롭게 회사로 돌아가는 회사원들이 제일 부럽다”고 고충을 에둘러 표현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의 업무를 항목별로 세세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때 주로 평가되는 것은 가래 흡입이나 영양 공급 등의 기본 간호 수행이나 환자로부터의 칭찬 횟수 같은 것들이다. A씨에 따르면 이러한 평가에 기초해 성과급제가 적용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투약의 경우 서로 다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서로 다른 횟수로 이뤄지기 때문에 단일한 기준으로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중환자 간호의 경우 단기적 성과를 판단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의 체위를 변경하는 작업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들지만 단기적으로 성과가 측정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A씨는 “사람의 몸에 관련된 일이니만큼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다르다”면서, “성과급제가 적용된다면 결국 간호사들은 단기적 성과가 나타나는 가래 흡입 등의 기본 간호만을 중시하고 중환자에 대한 세세한 간호는 등한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으로 A씨는 성과급제를 비롯하여 서울대병원의 이윤 추구 전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아랍인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1인실을 배정하거나, 실려 온 환자가 수술이 필요하지만 경제적인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보라매병원으로 이송시키는 등의 사례를 말하면서 A씨는 “공공병원을 표방하는 서울대병원이 노골적으로 영리 활동을 벌이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라매병원 민들레분회 박재숙 부분회장은 서울대학교가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민들레분회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하청노동자들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2008년에 보라매병원에 청소노동자로 입사했다는 그는 정형외과 병동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현재는 외래진료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 부분회장에게서 병동 청소노동자들의 일과와 근무 내용에 대해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침 6시에 병동에 출근한 청소노동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환자들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화장실을 점검한 다음 쓰레기를 정리해서 분리수거를 맡은 청소노동자들에게 넘긴다. 2시간 동안 병동 청소를 하고 나면 8시부터 9시까지는 휴식시간이다. 그러나 휴식시간에도 청소를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청소를 하러 나가야 한다.

  9시부터는 병동 전체를 밀대로 민 다음 마포질과 걸레질을 하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면대 역시 약품을 사용해 깨끗하게 닦는다. 화장실 청소를 끝내면 11시가 지난다. 환자들이 퇴원하는 시간이다. 청소노동자는 간호조무사들이 적어준 퇴원 환자들의 리스트를 보고, 퇴원 환자가 사용했던 병상에 가서 뒷정리를 한다. 침대를 청소하고 서랍을 열어서 먼지를 분무기로 닦아내는 일을 반복한다. 이러한 업무를 하다 보면 점심시간인 12시를 넘길 때가 많다.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로 청소노동자는 청소 요청이 들어오는지 항상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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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노동자들의 휴게 공간. 한 눈에 모든 것이 들어오는 비좁은 곳에서 청소노동자들은 밥상을 펼치고 밥을 먹는다. ⓒ이지원 사진기자

  감염 위험, 고용 불안, 저임금, 그 다음은?

  불편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1시가 되면 쓰레기통을 다시 비우고, 새로 발생한 퇴원 환자들의 병상을 정리한다. 퇴근 시간인 4시가 임박할 무렵 퇴원 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청소노동자는 퇴근을 미루고 그 환자의 병상을 청소해야 한다. 이처럼 애매하게 시간대가 겹치는 경우가 잦아 이들은 보통 4시가 지나서야 퇴근하게 된다.

  청소를 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적출물이나 사용이 끝난 의료 기구들을 접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호 장비는 지급되지 않는다. 박 부분회장 또한 사용 후의 주삿바늘에 2번 찔린 경험이 있다. 검사 결과 별 이상은 없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보라매병원은 메르스 집중치료 병원으로 지정됐고 많은 메르스 환자들이 보라매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이때도 보라매병원 측에서는 청소노동자들에게 특별한 보호 장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마스크나 옷 등 보호장비는 오염됐을 시 바로 벗어서 버려야 하지만, 용역 업체에서는 청소노동자들에게 하루 한 개의 마스크와 한 켤레의 장갑만을 지급했을 뿐이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에 더해 청소노동자들은 항상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청소노동자가 실수를 저지르면 간호사나 병원 직원이 총무과에 민원을 넣기도 하고, 감독, 소장 등 용역업체 관리직들이 청소 상태를 확인하며 지적할 사항이 있으면 시말서를 쓰게 한다. 사소한 실수라도 일정 횟수 이상의 시말서를 받으면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 박 부분회장은 “한 청소노동자가 몸이 아파 휴식시간에 약을 받으러 나갔다가 콜(청소 요청)에 응답하지 못해 시말서를 쓴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청소노동자는 이후 지원조로 옮겨졌다. 지원조에 배치된 청소노동자는 정해진 자신의 구역이 없이 일손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청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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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노동자의 카트. 꽉 찬 쓰레기봉투는 곧 그들의 노동량을 반영한다. ⓒ이지원 사진기자

  이들이 한 달에 받는 임금은 용역업체가 각종 명목으로 공제하는 금액을 빼고 나면 140여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인상되자 용역업체에서는 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최저임금인상을 맞추기 위해 한 달에 7만원이던 식비를 2만원으로 차감했다. 지난 1월 29일에는 공공운수노조 보라매병원 민들레분회 소속 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삼각김밥을 먹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박재숙 부분회장은 “용역업체 측에서는 보라매병원이 입찰가를 소위 ‘후려치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병원에 책임을 전가했다”면서 “용역업체 측에서는 보라매병원과의 계약이 일종의 ‘스펙’이 되기 때문에 병원 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 부분회장의 비판은 보라매병원에게로 이어졌다. 공공병원인 보라매병원이 청소와 환자 이송을 외주화하고, 용역업체에게도 낮은 가격을 제시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박 부분회장은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병원이라면 직접 고용이나 무기 계약을 통해 노동자들의 복지도 증진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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