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새로운 미래’

만병통치약을 가장한 임금체계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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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고용노동부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라는 제목으로 임금체계의 개편을 권고하는 매뉴얼을 발행했다.                                                                                                                             Ⓒ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는 올해 3월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매뉴얼)’을 발표했다. 매뉴얼은 임금체계 개편에 있어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기본급을 중심으로 한 임금 구성항목의 단순화 연공급제(호봉제)의 연공성 완화와 대안으로서의 직무급제·직능급제의 도입 성과와 연동된 상여금 또는 성과급 비중의 확대가 그것이다.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고용노동부는 ‘복잡한 임금항목을 단순화하고, 연공·근속 중심에서 일의 가치, 능력과 성과가 반영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개선’하겠다며 취지를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합리적인 임금체계 

 고용노동부는 매뉴얼 전반을 통해 기존의 연공급제가 생산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임금체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제시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한국은 연간 2,000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로국가이고 제도적 정년은 60세로 의무화됐으나 현재 실질 정년은 53세에 불과하며 생산직 근로자의 근속연수별 임금격차(초임대비 30년 이상)는 3.3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매뉴얼은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으로서 연공급제를 지목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대안적 임금체계로 직무급제·직능급제와 성과급제를 제시한다. 직무·직능급제의 개념은 근속연수가 지남에 따라 임금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차원의 문제다. 반면 성과급제의 개념은 전체 임금을 구성하는 여러 항목들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쉽게 말해 직무·직능급제는 기본급을 결정하고 성과급제는 성과에 따른 대가를 결정한다. 노동부는 매뉴얼에서 직무·직능급제와 성과급제라는 개념을 하나로 묶어 함께 제시하고 있다. 임금은 직무수행능력과 직무가치에 따라 책정되고 성과에 연동된 성과급의 비중은 높은 임금체계를 고용노동부는 곧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로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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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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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급제는 직무 가치 또는 숙련도 등 조건에 따라 임금 등급을 부여하고, 등급 내에서 개별 근로자의 고과에 따라 임금 인상률을 차등 결정한다. 반면 직능급제는 기존 연공급과 유사하지만, 성과 평가에 따라 차등적으로 호봉을 올려 연령에 따른 호봉 상승 정도가 상대적으로 완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 매일경제신문

직무급제·직능급제와 성과급제가 만병통치약?

  그러나 과연 직무급제·직능급제와 성과급제가 장시간 근로 짧은 실질정년 높은 근속연수별 임금격차의 세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본질적인 대책인지 검토해봐야 한다. 먼저 장시간 근로의 경우, 대표적으로 성과급제를 확대해 운영하는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초과근로수당(21%)과 성과상여금(22%)이 임금 총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반면 기본급은 27%에 지나지 않는다. 10년이 넘게 운영된 성과급제는 오히려 장시간의 초과노동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초과노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울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의 ‘임금체계 개편 논의, 비판적 검토와 대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연공급제에서 직무급제로 전환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1.8% 늘어났다. 언뜻 봐서는 직무급제가 고령자에 친화적인 임금체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수치는 고령자가 퇴직 후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하는 사례도 포함한 결과다. 재취업을 제외하고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50세 이상 고령자 비율만 따졌을 때에는 오히려 비율이 0.5% 감소했다. 정의당이 4월 주최한 임금체계 개편 전문가 좌담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박하순 정책연구위원은 ‘매뉴얼대로 직무급이 도입돼 경력이 낮은 노동자 밑에서 경력이 높은 노동자들이 관리를 받게 되면 유·무형의 퇴직 압력을 받는 은폐된 정리해고가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높은 근속연수별 임금격차에 대해서는 박 위원은 ‘우리나라에서 30년 경력자의 임금이 초임에 비해 3.3배 높다는 고용부의 말을 뒤집으면 우리나라 초임이 그만큼 낮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본질은 고근속자의 높은 임금이 아니라 저근속자의 지나치게 낮은 임금에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김 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호봉급에서 직무급제로 전환할 경우 고졸 초임은 2.2%, 대졸 초임은 1.7%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능급제로 전환할 때도 대졸 초임은 임금수준이 유지되지만 고졸 초임은 1.3% 낮아졌다. 직무급제·직능급제로의 전환은 저근속자의 낮은 임금을 더 낮추어 근속연수별 임금격차를 더 확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박 위원은 고용노동부의 이번 매뉴얼이 우리나라 연공급제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연공급제는 기본적으로 초임은 낮게 유지하되 장기 근속시 높은 임금을 보장함으로써 생애임금을 보충하는 임금체계로서 도입됐다. 매뉴얼이 직무급제 도입을 통해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임금에 생산성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연공급제는 노동자의 생애기여가치(lifetime-contributing value) 개념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임금에 생산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저근속자의 초임은 올리지 않은 채 고근속자의 임금만 내리는 일편향적인 직무급제는 오히려 임금과 생산성의 괴리를 늘릴 수 있다. 이번 매뉴얼에서 저근속자 초임의 상향조정에 대한 언급은 배제된 채 장기근속자 임금의 하향조정만 논의됐던 것은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누구를 위한 매뉴얼인가

 고용노동부는 올 초부터 지속적으로 사측에 유리한 매뉴얼들을 배포해왔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통상임금 노사지도지침’, 3월 ‘임단협 교섭 지침’을 연속적으로 발행해 통상임금에서 몇몇 상여금을 제외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통상임금 노사지도지침은 2013년 12월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한다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돼 논란이 됐다. 이번 매뉴얼에 대해서 김 위원은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주장에 부분적으로 합리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인건비 절감과 노동통제 강화가 근저에 깔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금체계 전환과 관련해 또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매뉴얼이 제시된 시점이다. 정년연장법이 통과되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도록 대법원이 판결한 이후 많은 기업들의 노사위원회는 임금체계 조정을 두고 팽팽한 협상과정을 거치고 있다. 우려되는 점은 당장 협상에 등장할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이 성과급제, 직무급제·직능급제를 대안적 임금체계로 제시하면서 그 구체적인 실현과 조정의 방식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제도가 도입돼도 사회적 힘의 관계에 따라 제도는 취지와 다르게 실현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박창규 의원은 “직무가치의 결정방식과 절차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은 채 제도(직무급제)만 도입하는 것은 급여의 결정을 사측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라고 우려를 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개발 중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들어 이 같은 우려에 해명했다. 국가직무능력표준은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직업능력을 산업부문·수준별로 표준화한 것으로, 직무가치와 임금등급을 산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국가직무능력표준의 완성시기를 2015년으로 내다보고 있어 당장 실무적으로 도입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직무능력표준 개발 작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고용노동부가 직무급제·직능급제와 성과급제를 권고하는 매뉴얼을 배포한 것은 성급한 인상을 준다. 기업이 정년 60세 연장과 통상임금 확대에 대응해 임금수준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노동계의 의혹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박창규 진보정의연구소 위원은 “매뉴얼이 주장하는 성과급제의 확대와 직무급제의 도입은 현재의 상황적 맥락을 고려할 때 진정성을 담보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는 ‘새로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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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일,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임금체계개편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 정의당 정책위원회

 올해 4월에 정의당이 주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관련 좌담회에서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소장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단순히 사회에 직무급제·직능급제를 발제하는 성격의 것이며, 따라서 구체적인 실현방식에 대한 언급은 생략했다’고 해명했다. 국가기관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한국 내 모든 기업에 ‘권고’하는 매뉴얼이라면, 구체적인 실현방식까지 고려하는 책임감이 필요해 보인다.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다. 상식적인 차원의 ‘새로운 미래’는 사회적 힘의 관계를 보정하는 형평성이 담보될 수 있을 때 다가갈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말하는 새로운 미래는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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