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탄올에 중독된 노동자들
부천시 소재 휴대폰 부품 생산 업체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지난 1월 16일 작업 후 앞이 보이지 않아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6일 후, 그는 산업재해 피해자(재해자)로 고용노동부에 보고됐다. 의료진의 진단은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이었다. 이후 그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메탄올 피해 노동자가 확인됐다. 재해자들은 시력 손상을 입었으며, 심한 경우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재해자들이 근무했던 사업장들은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던 3차 하청업체들이었다. 삼성은 ‘갤럭시 S6’ 모델부터 금속 소재 몸체를 선보였다. 이를 위해 사업장들은 알루미늄 부품을 절삭하는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컴퓨터 수치제어) 공정을 가동하고 있었다. 메탄올은 절삭된 부위의 열을 식히기 위해 사용됐고, 피해 노동자들은 에어건(air gun)으로 알루미늄 제품에 묻은 잔여 메탄올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다량의 메탄올에 노출됐던 것이다.

▲올해 출시된 ‘갤럭시 S7’. 삼성은 ‘갤럭시 S6’ 모델부터 금속 소재 몸체(사진에서 휴대폰 테두리 부분)를 선택하고 있다. / © 삼성전자 홈페이지
메탄올은 체내 흡수 시 간에서 포름알데히드라는 독성 물질로 변환돼 심한 경우 실명 및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첫 번째 환자에 대해 메탄올 중독 진단을 내렸던 이대목동병원의 김현주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메탄올은 독성이 잘 알려진 물질이라 기본 사항만 지키면 중독되기 어렵다”며 “국내에서 메탄올 급성 중독으로 인한 직업병은 이전에 ‘보고’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해외 학술문헌상 마지막 보고도 1960년대다”라고 설명했다. 몇십 년 전에나 일어났을 법한 메탄올 중독이 왜 2016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것일까.
안전 사각지대 유발하는 불법파견
이상윤 노동건강연대(노건연) 공동대표는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인의협)’가 주관한 월례포럼에서 이 사건이 “단순히 메탄올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과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부돼 있다”고 주장했다. 재해자들의 고용주는 파견업체였고, 파견업체는 휴대폰 부품 제조 사업장으로 이들을 보냈다. 그런데 ‘파견자 근로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5조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근로자파견사업 대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알루미늄 부품 제조공정에 파견 노동자를 투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불법파견은 버젓이 행해진다. 고용노동부의 ‘2014년 관할지청별 파견근로자 수 현황’에 따르면 안산 반월·시화공단 내 파견노동자는 약 2만 6천 여 명이다. 그런데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의 정현철 수석부지 회장은 “이 중 약 97%는 불법파견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파견법에서는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기거나 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제조업 파견을 최장 6개월까지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업체들(근로자파견계약에 의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업체)은 이 조항을 악용, 6개월 단위로 계약을 반복 체결해 파견 노동자들을 상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 파견근무가제조업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과 ‘남동공단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119’가 지난해 남동공단과 및 부평공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사업장 161개, 파견노동자 3,825명 대상)에 따르면 파견노동자의 97.5%가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체 근무인원 중 파견노동자의 비중이 20%가 넘는 경우도 조사 대상 사업장 중 75.8%에 달했다. 제조업 파견 근무가 일시적·간헐적으로 이뤄진다고 보기 힘든 수치다. 이에 대해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이미 파견업체 시장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정부에서 단속을 나오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 오선영 사진기자
이처럼 불법파견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노건연에서 활동하는 유성규 노무사는 “직접고용했을 경우 사업주는 노동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간접 고용이 이뤄지는 순간, 현실적으로 그 의무는 사라져 버린다”고 지적했다. 이윤이 최우선시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정부의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파견업체와 사용사업주(근로자파견계약에 의해 파견 노동자를사용하는 자)는 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서로에게 떠넘기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사고가 났던 사업장들에서는 안전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장안석 조직사업부장은 “메탄올은 ‘산업안전보건법(산보법)’상 관리대상 물질이기 때문에 설비를 밀폐하고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보호구조차 지급되지 않았다”고 당시의 작업환경을 설명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메탄올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시행한 소변검사 결과 재해자들 중 한 명의 소변에서 메탄올이 7.632 mg/L 검출됐는데, 이는 기준치의 50%를 초과한 수준이다. 메탄올의 반감기가 2~4시간이고 소변검사가 메탄올 노출 중단 후 약 72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업장에서의 메탄올 노출이 매우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첫 번째·두 번째 환자가 발생했던 사업장은 작업환경측정 결과 메탄올 노출 수준이 1103-2220ppm(노출 기준 220-250ppm)이나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들이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안석 조직사업부장은 “(노동자들은) 메탄올의 위험성은 물론, 자신이 쓰는 물질이 메탄올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용사업주에 의한 안전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작업환경이나 안전에 대해 노동자들 간의 정보교환도 없는 실정”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의 사업장은 서로 다른 파견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들로 구성되며, 그 결과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재해자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사업장에서 일했음에도 동료의 발병사실은 물론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단기간 파견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이 사업장에서 저 사업장으로 계속 옮겨 다니는 점도 이러한 ‘개별화’에 한몫했다.
한 파견업체 직원이 장안석 조직사업부장에게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다. 그들은 4대보험의 테두리 밖에 있다. 사용업체가 노동자들을 가입시키라고 파견업체에 지급한 4대 보험료는 고스란히 파견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게다가 파견업체는 임금의 5~12%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 갈 뿐더러, 사용업체로부터 나오는 각종 수당도 중간에서 가로챈다.
이런 맥락에서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파견 노동자들은 사실상 ‘파견노예’ 취급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이번 메탄올 중독 사건에 대해 “불법적 고용형태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 열악한 노동환경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도 연결된다. 원청과의 관계 속에서 하청업체는 재정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노동자의 안전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하청업체인) 사업장 입장에선 돈이 가장 큰 문제기 때문에 파견 노동자들에 대해 굳이 안전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노건연 이상윤 공동대표는 인의협 월례포럼에서 “원청인 삼성이 단가를 맞춰주지 않고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계약을 요구했다. 하청업체 입장에서 (노동자 안전을 위해) 법을 지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한 비용문제는 더 저렴한 대신 더 위험한 물질을 선택하게 했다. 앞서 언급한 CNC 공정에는 메탄올 대신 상대적으로 독성이 적은 에탄올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이 공정을 처음 개발한 독일과 일본 업체들도 에탄올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하청업체들은 에탄올에 비해 가격이 1/3 수준인 메탄올을 택했다.
휴대폰 제조 산업은 기술 발달에 따른 물량 변동이 매우 심하다. 하청업체는 수시로 바뀌는 원청의 요구에 따라 생산량을 늘렸다 줄였다 해야 하고, 고용 유연화의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장안석 조직사업부장은 “하청업체는 (경영)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파견 노동을 사용한다. 쉽게 쓰고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생산라인의 외주화’는 불법파견과 맞물려 ‘위험의 외주화’로 이어지게 된다. 정현철 수석부지회장은 “구조적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그 중에서도 파견 노동자에게 모든 위험이 몰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역설했다.

인력이 부족한 고용노동부,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안전보건법’상 메탄올 취급 사업장의 사업주는 정기적으로 작업환경측정 및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고용노동부와 노동자들에게 보고·통보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사건이 발생했던 사업장들의 경우 사전에 어떠한 안전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을 뿐더러, 정부, 사업주, 그리고 노동자조차 공정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섯 번째 재해자가 발생했던 사업장은, 고용노동부가 네 번째 재해자까지 확인된 상황에서 유사 사업장들의 안전조치 확인을 위해 근로감독관을 파견했던 곳이었다. 당시 사업주는 메탄올을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며칠 뒤 환자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은 그만큼 허술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건강연대의 유성규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의 행정력 부족을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 담당 감독관 수가 전국에 300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십, 수백만 개의 사업장을 이들이 관리·감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은 갖춰야 제도를 얘기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1981년 제정된 산보법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은지난 10, 20년 간 급격하게 변해왔다. 특히 계약직·간접고용 등 새로운 고용형태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과 건강> 91호에 실린 기획기사에서 카디프대학의 데이빗 월터스 교수(노동환경과)는 하도급업체와 임시직 파견업체의 등장이 “규제가 영향을 미치기 힘든 안전관리 책임자들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제조업 중심의 종신·직접 고용이 대부분이던 시절 만들어진 산보법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유성규 노무사의 입을 빌리면 “첨단의 시대에 30년 전 무기로 예방하려고 하는 것”이다.
유 노무사는 “현재 산보법상에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업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파견 노동자의 경우 사용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기는 하지만, 다단계하도급 구조 속에서 이런 법 조항은 쉽게 무력화 된다”며 노동자의 안전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더 이상의 피해자 발생을 막기 위해선 전문가들은 원청도 산업재해의 책임을 지게끔 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원청의 ‘단가 후려치기’ 및 급격한 주문량 변동에 따른 부담이 결국 하청업체로 하여금 위험마저 파견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목동병원 김현주 교수는 “지금처럼 위험관리 비용을 하청업체가 떠안게 되면, 하도급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말했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 역시 “노동자들이 사망해도 처벌 받지 않는 상황에서 원청 기업들이 굳이 안전에 돈을 써야할 유인이 없다”며 원청에 대한 처벌 강화·다양화를 주장했다.
그 방안으로 노동건강연대 등이 지속적으로 제안해온 것이 ‘기업살인법’이다. 유성규 노무사는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및 대대적인 언론 공표를 통해 기업들에게 심각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줌으로써, 이들이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기업살인법’의 요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국내에서 ‘기업살인법’을 당장 법제화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기업살인법’의 문제의식이 기존의 다른 법들에 녹아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성규 노무사는 “변화된 현실에 걸맞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편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컨대 하도급 체계가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선 원청에 대한 처벌강화가 산보법에 포함돼야 한다. 또한 유 노무사는 “작업환경의 안전성에 대해 노동자가 사업주·고용주에게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산보법에 명시”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현주 교수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직업병 사전 예방을 위한 충분한 활동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산업안전보건 감독관의 충원을 주장했다. 유성규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청(가칭)’과 같은, 전문성과 수사력을 지닌 독립적인 행정기구 설치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현주 교수는 “이번 사건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무심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불법파견과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산업재해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실재한다. 노동자들의 안전에 눈 감은 사회가 더 이상 노동자들의 시력을 잃게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