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대저널> 112호에는 ‘찻잔 속 태풍, 학생회관 동아리방 재배치’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2010년 새로 추가된 동아리연합회(동연) 회칙을 중심으로 고질적이었던 동아리방 부족 문제를 짚어본 기사였다. 당시 학생회관에 동아리방이 없었던 ‘다솜공부방’의 사무국장 배양진 씨(정치11)는 기사에서동아리방 재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악 동아리 ‘여민락’의 서지훈 회장(응용생명화학 10) 역시 매우 협소한 동아리방을 사용하는 불편을 토로하며 동아리공간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참여를 촉구했다.
기사가 실린 지 5년이 지난 지금 관악의 동아리방 공간부족 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현재 동아리연합회(동연)에 등록된 81개의 중앙동아리 중 8개는 동아리방이 없다. 동연에 등록된 중앙동아리는 총 6개의 분과로 분류되는데,이 중 동아리방이 없는 동아리는 학술매체분과 12개 중 1개, 무예운동분과 10개 중 2개, 연행예술분과19개 중 3개, 취미교양분과 16개 중 1개, 인권봉사분과 9개 중 1개다. 종교분과 16개 동아리는 모두 동아리방을 가지고 있다.

동아리방이 없는 동아리 중 하나는 다솜공부방이다. 다솜공부방은 1년째 동아리방 없이 활동 중이다. 법대 동아리였던 다솜공부방은 2008년 중앙동아리로 등록되면서 학생회관에 동아리방을 신청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다솜공부방은 기존의 법대 공간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2013년 ‘법대대학원동아리연합’이 법대 구성원이 활동하지 않는 중앙동아리라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했고, 다솜공부방은 자유전공학부 밴드 ‘베루카’와 15동 319호를 공동 사용하다가 지난해 6월 실시된 법대 리모델링으로 동아리방을 아예 잃게 됐다
동아리방 배정을 위해 5년을 기다린 동아리도 있다. 축구 동아리 ‘Soccer 21’은 2011년 중앙동아리로 등록한 뒤 5년의 기다림 끝에 올해 3월 비로소 동아리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신규 자치공간이 생기지 않는 이상, 동아리방 대기 순위에 오른 뒤 기존에 동아리방을 사용하던 단체가 등록을 취소하거나 제명될 경우에만 우선순위에 따라 공간을 배정받는 시스템 탓에 기존의 동아리가 등록을 취소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동아리방이 동아리의 필요에 따라 제대로 배치되지 않는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김장현(화학생물공학 15) 다솜공부방 사무국장은 동아리방이 없어 공부방 자료 보관에 차질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회의 진행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다솜공부방은 2006년까지 모든 공부방 자료를 수기로 작성해 동아리방에 보관해왔다. 동아리방을 비우면서 자료를 삼성동에 위치한 공부방으로 최대한 옮겼으나, 공간이 협소할뿐더러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유실됐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동아리방이 없어진 이후 회의 진행이 불안정하고 비상시적 행사에 대한 논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며 동아리방 없이 활동하는 것의 고충을 토로했다.
있으면서도 없는 동아리방 재배치 회칙
그동안 지속돼온 동아리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 동연 측은 2010년 동아리방 공간 조정을 위한 회칙을 제정하고 1년 뒤 시행세칙도 마련했다. 동연 회칙 제41조는 동아리방이 없는 동아리가 비교적 활동이 적은 동아리와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동아리방 재배치’를 매홀수 년도마다 시행할 것을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공간조정 시행세칙 제 4, 5조는 동연 측에서 자치공간 관리가 부실하다고 판단하는 동아리에 대한 동연의 동아리방 재배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회칙 및 시행세칙은 제정 이후 한 번도 집행된 적이 없다.

▲ 임수빈(조소11) 동연 회장은 “동아리 공간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학생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권소현 사진기자
임수빈(조소 11) 동연 회장은 “현재 동연은 무너진 제반사항을 재건하는데 애쓰고 있다”며 그동안 인력 부족의 이유로 동연의 업무가 원활히 진행돼오지 못했다고 밝혔다. 운영은 물론 의결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니, 공간 문제 해결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임 씨는 동연 회칙에 동아리방 재배치 내용이 포함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분과 자치에 대한 동아리의 저조한 참여 또한 공간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한다. 동연은 총 6개의 동아리 분과마다 각각 분과장을 선출해 소속 동아리의 의견을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분과 자치에 대한 동아리의 참여가 저조한 편이라 분과장은 몇 해째 선출되지 못하고, 대신 각 분과 소속 동아리 장들이 돌아가며 분과장직을 맡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별 동아리의 의견은 동연에 전달되지 못해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 여민락은 접근성을 포기할 수 없어 학생회관 2층에 위치한 동아리방(210호)을 사용하고 있지만 비좁은 공간 때문에 복도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권소현 사진기자
부족한 동아리 공간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은 우선 현재 확보한 학생자치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특히 대부분의 중앙동아리가 위치해 있고 접근성이 좋은 학생회관의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회관의 자치공간은 총 77개로, 총학 중앙집행위원회 관할 및 ‘문화인큐베이터’가 포함된 기타자치단체를 제외한 65개 공간이 동연 관할의 동아리연합회실 및 동아리방으로 활용된다.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제정된 동아리방 재배치 회칙이 몇 년째 집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회칙에 근거한 동연의 적극적인 공간 재조정은 현재의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임수빈 동연 회장은 각 동아리의 상황을 고려한 공간 재배치의 필요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재배치 회칙 집행에 대해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임 씨는 “열심히 하는데도 (동아리 방이 없어) 운영이 어려운 동아리를 돕는 것이 우선”이라며 “동연의 공간 재조정은 동아리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재배치 기준이 불명확해 동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동아리방의 유무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로서는 동연 측에서 동아리의 활동 및 공간 활용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동아리 활동심사보고서 뿐인데, 실제 활동이 미비하더라도 형식만 갖춰 제출하면 되는 탓에 실질적인 공간 활용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활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아리방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평가 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공간조정 시행세칙에 의거해 동연 회장이 공간조정안을 발의할 수 있게 돼있지만 그 필요성을 회장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때문에 동연이 동아리방 재배치를 실제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재배치 기준에 대한 합의가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현재 동아리방 대기 순위는 정등록 일시가 기준이지만 재배치는 공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활용도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단순히 활동이 적은 동아리를 걸러내기보다는 각 동아리의 성격을 고려한 공간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명수(수리과학 15) 여민락 회장은 “각 동아리의 문제를 조사해 성격에 맞도록 공간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동연의 공간 현 공간사용 실태파악이 선결과제라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절대적인 공간 부족… 본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그러나 동아리방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절대적인 공간 부족에 있다.꾸준히 늘어나는 중앙동아리 수에 비해 학생자치공간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김명수 회장은 “동아리방 문제의 본질은 동아리 공간의 절대적인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등록된 중앙동아리의 수가 81개임에도 불구하고 동아리에 배정된 학생회관 자치공간은 64개에 불과하다. 2014년 두레문예관 리모델링으로 새로 마련된 두 곳을 더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 8개의 동아리가 여전히공간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학생자치공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학생사회의 노력은 번번이좌절되기 일쑤다. 2015년 동연 회장 하진우(동양사 11) 씨는 “학생자치공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본부에 캠퍼스 내 유휴공간인 153동 ‘우정글로벌사회공헌센터’의 빈 공간을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본부가 몇 차례 말을 바꾼 끝에 흐지부지됐다”고 전했다. 현재 153동 4, 5층의 일부는 ‘추후 사용 계획’이 있다는 본부의 안내문이 붙은 채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학생 자치공간 문제에 대한 본부의 미온적인 입장은 본부의 문제 해결 의지에 대한 의문점을 남긴다. 기획과 이승호실무원은 “공간 사용 실태점검, 초과 보유 공간에 대한 사용료 부과 등의 방법으로 공간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간 부족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개발 가능 부지가 모자라 건물 신축이 어렵다”고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본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동아리 몫으로 공간을 배정할 계획은 없다”고도 밝혔다.
동아리방 문제의 공론화와 본부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총학생회의 역할도 요구된다. 말하기 동아리 ‘다담’은 다솜공부방과 마찬가지로 법대 리모델링으로 동아리방을 잃었다가 총학생회의 중재를 통해 공간을 되찾았다. 총학생회 측에서 본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한 결과 올해 12월 31일까지 사용 조건으로 220동 지하의 공간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임수빈 동연 회장은 지금까지 동연이 겪은 운영상의 문제를 인정하고 앞으로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였지만, 동아리방 공간 문제는 동연만의 과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 해결을 위한 본부, 동아리, 학생사회의 다각적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