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배고픈 할랄 식품 체험기

한국에서 무슬림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의미한다.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 의약품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무슬림의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규율이다. 이태원에 위치한 할랄 한식당 ‘마칸(Makan)’을 운영하는 오승언 씨는 “할랄은 무슬림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약 18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무슬림이 소비하는 할랄 식품의 시장 규모는 2012년 기준 1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CJ제일제당, SPC, 청정원, 교촌 등 약 120여개의 국내 식품 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 할랄 시장에 뛰어들었다. 할랄 인증을 받은 농심 신라면, 오리온 초코파이는 해외 할랄 시장의 인기 상품이다.

  학교에서도 히잡을 쓴 무슬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국비유학생의 증가로 공과대학과 언어교육원을 중심으로 무슬림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다. 학교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서 무슬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에는 약 20만명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고, 이 중 약 4만명은 한국인 무슬림이다. 이처럼 국내외로 무슬림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할랄 시장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할랄을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오히려 IS가 국제사회의 문제로 떠오르면서, 반(反)이슬람 정서와 함께 할랄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오해가 퍼지기도 했다.

  할랄에는 허용되지 않은 것, 즉 하람(Haram)을 제외한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이슬람법인 샤리아(Shari‘ah)는 돼지와 술, 할랄 방식으로 도축되지 않은 고기를 대표적인 하람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도축 전 알라에게 감사기도를 하고, 동물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인 후 피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으로 도축된 고기만이 할랄로 인정된다. 하람과 접촉해서 교차오염된 것 역시 하람으로 간주된다.

  무슬림들은 한국사회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할랄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자는 2주 동안 할랄 식품만으로 살아보는 체험을 통해 무슬림적인 삶의 일부를 직접 경험해봤다.

‘허용된 것’을 찾아서

  사골우거지해장국·돈가스덮밥·쇠고기미역국백반·제육강정·고추소스돈까스·해물순두부찌개. 할랄푸드 체험 첫날인 3월 7일자 자하연, 동원관, 감골식당의 점심 메뉴였다. 그날의 메뉴는 선택의 여지없이 해물순두부찌개로 정해졌다. 학식의 메인메뉴는 육류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식단은 해물이 들어간 찌개류나 야채비빔밥으로 한정됐다. ‘브로콜리 마늘 볶음밥’ 같은 ‘할랄스러운’ 이름의 학식에도 햄이 들어가 있거나 고기가 들어간 소스가 뿌려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교차오염을 생각하면 육류가 아니더라도 학식은 모두 하람이지만, 이슬람 경전에서는 불가피한 경우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식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을 때는 감골식당의 채식뷔페를 이용했다. 하지만 6000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데다가 배식 시간이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로 한정돼있어서 이용하기 쉽지 않았다.

학식.jpg

유일한 할랄 음식이라 자주 먹은 학관 B코너. 반찬 중 하나였던 돈가스는 받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혼밥’이 늘어났다. 먹을 수 있는 학식을 찾으려면 원정을 떠나야했기 때문이다. 짧은 공강시간에 점심을 해결해야하는 친구들에게 멀리 있는 식당까지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배달음식을 시킬 때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대표적인 배달음식인 짜장면을 비롯한 대부분의 배달음식은 하람이다. 떡볶이에 들어있는 고기분말, 김밥에 들어있는 햄, 칼국수에 들어있는 고기만두.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모여앉아 피자를 시키는 동기들을 뒤로한 채 식당으로 향하거나, 집에 돌아와 혼자 늦은 저녁을 먹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식당에서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때였다. 간편해서 즐겨먹었던 참치김치 삼각김밥은 돼지고기와 같은 생산시설에서 제조됐기 때문에 하람이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김밥류 뿐 아니라 빵과 샐러드, 야채죽 역시 제조과정에서 돼지고기와 교차오염됐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다. 결국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 앞에서 바나나와 우유로 배고픔을 달래야했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채식 하느냐”고 물었다.

1.jpg

서울대입구역의 할랄 식당 ‘옷살’.

  3월은 이런저런 행사와 약속이 많은 시기다. 하지만 삼겹살과 술의 조합이 대부분인 큰 행사는 피할 수밖에 없었다. 소규모 약속에서도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었다. 기자에게 선택권이 있을 때는 서울대입구역의 할랄 식당인 ‘옷살’·‘미스터 커리’에 가거나 스시를 먹으러 갔다. 파스타를 먹을 때는 베이컨 대신 버섯을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국밥집에 가야했을 때는 소고기를 뺀 비빔밥을 먹었다. 반찬으로 계란말이가 나왔을 때도 먼저 먹은 친구가 계란말이안에 햄이나 고기가 없다는 확인을 해준 후에야 먹을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스스로도 할랄 체험을 하는지 채식 체험을 하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숨은 할랄 식품 찾기

  할랄 식품 체험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많은 가공식품 중 도대체 무엇이 할랄이고 하람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무슬림 지인에게 “이 과자 괜찮아?” “이 요거트는?”이라고 물으며 귀찮게 했다. 실제로 하람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가공식품도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면 할랄인증마크가 부착된 경우가 드물다. 국내 생산 제품에 할랄인증마크를 부착할 수 있도록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개정된 것은 2015년 6월로, 최근의 일이다. 

2.jpg
3.jpg

4.jpg

할랄인증마크 있는 가공식품

1 돼지고기 젤라틴이 많이 쓰이는 젤리류는 대부분 하람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젤리에는 할랄인증마크가 붙어있다.

2 할랄인증마크가 있는 초콜릿.

3 할랄인증마크가 있는 과자 ‘프링글스’.

  크라운 제과의 관계자는 경제성과 정서적인 이유 때문에 굳이 할랄인증마크를 부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교적 협소한 국내 할랄 식품 시장에서 포장지를 새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할랄인증마크를 부착하는 것이 비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할랄인증마크가 자극할 수 있는 반이슬람 정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지인이 추천해준 방법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식품성분표에 고기 첨가물, 돼지고기 젤라틴, 젠시틴 등의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것들은 그래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교육원 앞 느티나무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출신 셰라(26) 씨도 과자를 살 때면 한국인 친구에게 성분표시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식품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고, 완전히 안심할 수 없어서 찝찝함이 남았다.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할랄제품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할랄 코리아(Halal Korea)’에서는 할랄 식품과 MFF(Muslim Friendly Food)를 소개하고 있다.

  1주일 쯤 지나자 할랄인증마크 탐지기가 된 것 같았다. 사탕 하나를 내밀어도 하이에나처럼 인증마크를 찾고 있는 기자의 모습을 친구들은 측은하게 바라봤지만, 숨은 할랄인증마크를 찾아내는 기쁨이 있었다. 프링글스, 데어리 밀크 초콜릿, 수입산 젤리 등에는 작은 할랄인증마크가 숨어있다. 다이소나 세계과자판매점에는 할랄인증마크가 붙은 수입 과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태원에서 장보기

  할랄 식품 체험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취생의 필수품인 라면을 먹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느 늦은 밤 ‘아무도 모를텐데’ 하며 선반에 있는 라면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도 했다. 대부분의 라면 스프에는 고기분말이 들어가고, 야채라면 역시 교차오염으로 먹을 수가 없다. 결국 체험 일주일째 되던 주말, 라면, 과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할랄 가공식품을 찾아 이태원으로 향했다.

5.jpg
6.jpg

1 이태원 내셔널푸드마트에 붙어있는 할랄인증마크

2 최초의 할랄 한식당 ‘이드’ 내부

  이슬람 사원이 있는 이태원 우사단로 10길은 ‘할랄 거리’다. 이태원역 3번 출구를 나서면 케밥, 터키 요리, 두바이 요리, 인도 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할랄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다. 빵 가게와 피자 가게에도 할랄인증마크가 붙어있고, 할랄인증을 받은 한식당도 많다. 거리와 가게 곳곳에서 색색의 히잡을 쓴 무슬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태원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할랄 한식당 ‘이드(EID)’ 역시 이른 시간부터 점심을 먹으려는 무슬림들로 붐볐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도 많았다. 식당 안에 비무슬림은 기자 혼자뿐이었는데,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 가족 내외와 아르바이트생까지도 모두 무슬림이었기 때문이다. ‘이드’를 운영하는 유홍종 씨는 무슬림들이 편하게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할랄 한식당을 운영하게 됐다. 테이블이 10개도 안 되는 작은 식당이지만, 입소문이 퍼져 한식을 맛보려는 무슬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라마단 기간에는 낮 동안의 금식 이후 할랄 닭고기로 만든 짜장면 같은 ‘특식’을 먹으려는 단체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7.jpg

8.jpg
9.jpg

1 이태원에 위치한 포린푸드마트.

2 할랄 베이커리.

3 할랄 정육점.

  이태원에는 할랄 식당뿐 아니라 할랄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 가게도 많다.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보니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 가게가 반가웠다. 말레이시아 유학생 아스마(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 14) 씨는 거의 모든 끼니를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학교에 가기 전 자취방에서 점심을 먹고, 공강 시간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다시 수업에 가는 식이다. 식재료는 예배를 하러 이태원에 들릴 때마다 근처 가게에서 구입한다. 실제로 이태원의 내셔널푸드마트(National Foods Mart)와 포린푸드마트(Foreign Food Mart)에는 식재료를 구입하는 무슬림들이 많았다. 그날 구입한 태국, 인도네시아산 라면과 스프에는 모두 할랄인증마크가 붙어있었다.

  마트 맞은편에는 할랄 방식으로 도축한 고기를 판매하는 할랄 정육점이 있다. 정육점 안에서는 무슬림 직원이 냉동된 수입 소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국내에는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소 도축장이 없기 때문에, 할랄 소고기는 모두 수입산이다. 닭도 마찬가지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알리 진(76) 씨는 한 달에 한번 씩 양계장을 빌려서 직접 닭을 도축한다고 했다. 이렇게 직접 도축한 닭과 수입산 할랄 고기들은 인근 할랄 식당들에 공급된다. 이희열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외식창업프랜차이즈학과)는“많은 호주산 소고기가 무슬림에 의해 도축된 할랄 소고기”라고 말했지만,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할랄 정육점이 아니면 고기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일주일간 강제 채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기자도 추천받은 할랄 치킨 소시지를 구입했다. 터키에서 온 베튤(경제 13)씨는 “무슬림 학생들은 방학 때 고향에서 얼린 소시지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외롭고 배고팠던 할랄 식품 체험을 마치며

0.jpg
▲ 

 술집이 즐비한 녹두거리

  할랄 체험을 하면서, 거의 모든 뒤풀이가 고기에 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강을 맞아 동기들끼리 모일 때도,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도, 학회 세미나 뒤풀이 때도 늘 고기집이나 술집에 갔다. 어쩔 수 없이 뒤풀이를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뒤풀이에 가서도 삼겹살, 치킨, 찌개 등의 안주와 술을 앞에 두고 물만 들이켜야 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술이 빠진 뒤풀이를 상상하기 힘들어서, 무슬림 지인에게 “무슬림들은 어디서 대화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향인 터키에서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해서 “차가 없으면 대화를 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술 마시며 친해지는 문화가 있어서 한국인들과 어울리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할랄 체험이 끝나던 날, 미뤄뒀던 ‘치맥’을 했다. 2주 만에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었다. 드디어 외롭고 배고팠던 할랄 식품 체험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마저 들었다. 2주 간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한국사회에서 할랄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음식 때문에 끊임없이 민감해야했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돼지고기를 비롯한 하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엄격하게 할랄을 지키기 힘든 한국사회에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할랄을 실천하는 무슬림도 많다.

  할랄 한식당 ‘이드’의 유홍종 씨는 할랄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할랄과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라며 “세세한 규율 하나하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슬람을 하나의 문화, 삶의 양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교를 문화로, 할랄을 삶의 방식으로 오해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태도다. 치맥을 즐기는 한국인과 차를 즐기는 터키인이 어떤 장애물과 편견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본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학생회동향

Next Post

당신의 학번은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