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내고 있다. ⓒ 시사인
쌍용자동차(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내상으로 남아있다. 해고노동자측 소송대리인단에서 회계적 쟁점의 분석을 맡았던 김경율 회계사 또한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처음 <서울대저널>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기억을 꺼내기엔 머릿속에 같이 떠올려야할내상이 많다”며 망설였다. “(노동자들에게) 꼭 이긴다고 약속했었는데…” 그가 인터뷰 요청에 응하며 되뇌인말이다.
처음부터 김경율 회계사가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확인소송을 함께 한 것은 아니다. 1심에서 패한 후 노조측이 항소한 2심 중간부터 그는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2심 공판준비기일 도중 안진회계법인(안진)의 회계감사 조서를 처음 봤을 때 노조측 회계사들은 모두 “어렵다”고 말했다. 식별이 어렵기에 반박도 어려운 자료였다. 재판에서 감정을 맡았던 최종학 교수(경영학과)도 2013년 10월 제출한 감정보고서에서 ‘쌍용차의 회계조작은 없다’고 결론을 냈다. 사망 선고를 받은 것처럼 암담하던 2014년 1월 김경율 회계사는 대리인단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한상균 당시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처음 그에게 찾아와서 물은 것은 ‘위로는 괜찮으니 솔직하게 말해달라. 동지들에게 뭐라고 말해야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민주노총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도 그에게 ‘사실상 회계 싸움이 될 것 같다. 승산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회계사는 주저없이 “이길 수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많이 싸워봤기에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안진회계법인의 감사조서와 쌍용자동차의 재무제표에서 이상한 점들이 여럿 보였다.
그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선수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민주노총법률원 김태욱 변호사 등과 함께 3주 동안 이틀 꼴로 잠을 걸러 가며 재판을 준비했다. 금융감독원과 안진의 감사조서를 검토하고, 2,646명의 구조조정인원을 산정한 삼정KPMG의 경영정상화 보고서를 살피고, 하루도 빠짐없이 쌍용자동차의 5년간의 재무제표를 확인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이들은 2014년 2월 7일,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 민사2부 재판에서 “피고(쌍용자동차)가 2009년 6월8일 원고들(쌍용차 해고노동자)에게 한 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판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년도 채 안 되어 법원의 판결이 뒤집혔다.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해고를 단행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존재했다”는 판시와 함께 원심법원에 사건을 돌려보냈다. 올 초 복직문제를 극적으로 타결한 노·노·사 3자 간 합의가 있었지만, 김 회계사를 비롯한 법적 대리인단은 아직도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욱 변호사는 “쌍용차 판결은 이후 수많은 정리해고 판결의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에 법률 투쟁을 끝낼 수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들은 법정에서 변론을 마쳤고, 5월 7일 예정된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정면으로 충돌한 서울고법과 대법원의 정리해고 판결
정리해고는 최후의 구조조정 수단으로서 이뤄지는 ‘마지막 해고’다.사용자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그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해고를 피하기 위한 사용자의 노력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고기준▲해고기준 및 회피 방법에 관한 노사간의 성실한 협의라는 네 가지 법적 요건이 충족돼야한다. 또한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인원감축규모가 합리적이고, 사용자가 직업훈련•직업알선 등의 방법으로 해고자의 전직이나 재정착을 도울 때 정리해고의 정당성이 포괄적으로 인정된다.
법정에서 쌍용자동차(피고)와 해고노동자 153명(원고)이 격돌한 법적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사측의) 유동성 위기 존부 ▲재무 건전성 위기 존부 ▲인원감축규모의 합리성 여부 ▲해고회피의 적극적 노력 여부가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쟁점을 바탕으로, 양측의 소송 대리인단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하에서 ‘해고 회피를 위한 사측의 갖은 노력’ 끝에 ‘최후적 수단’으로서 시행됐는지 갑론을박을 펼쳤다.

정리해고의 적법성을 판단하는 핵심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여부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유동성과 재무건전성, 두 지표를 통해 주로 판단한다. 먼저 유동성에 관련해 서울고법은 “담보권이 설정되지 않은 다수의 부동산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유동성 위기를 완화할 수단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원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까다로운 대출조건으로 인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달리 판결했다.이에 대해 김경율 회계사는 “사채나 기업어음발행, 자산매각 후 리스 등 민간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회계사는 당시 법정에서도 쌍용자동차의 자금조달활동이 미비했음을 중점적으로 얘기했다. 실제로 2008년 3사분기 각 자동차회사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기아자동차와 한국지엠의 재무현금흐름은 7,752억과 6,464억에 달하는 반면, 쌍용자동차의 재무현금흐름은 257억에 지나지 않는다. 재무현금흐름이 높다는 것은 회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차입이나 유휴자산 매각 등을 적극적으로 했음을 의미한다. 기아자동차와 한국지엠은 민간자본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유동성을 확보했으나, 쌍용자동차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재무상태와 관련해서는 고법과 대법원 판결 모두에서 ‘유형자산손상차손’이 핵심적인 쟁점으로 설정됐다. 손상차손이란 기계 등 유형자산을 통해 실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사용가치)이 장부가액보다 적을 경우 이를 재평가하여 발생하는 손해액이다. 2008년 3사분기 기준 쌍용차의 당기순손실과 부채비율은 1,861억 원과 168%였지만, 2008년 말 안진의 감사를 통해 5,177억 원의 손상차손이 인식되며 각각 7,038억 원과 561%로 불어났다. 고법은 이에 대해 “사용가치는 주로회사의 매출수량 계획 추정치에 따라 결정되는 바, 2009년 단종을 전제로 기존 차종의 예상 매출수량을 추정하면서도 2013년까지 어떠한 신차도 출시하지 않는다는 안진의 가정은 비합리적”이라고 평했다. 아울러 “이 가정으로 유형자산의 사용가치를 과소평가함, 손상차손을 과다계상했다”고 판시했다. 쉽게 말해, 안진의 손상차손 과대계상으로 쌍용차의 당기순손실과 부채비율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재무제표에 기록됐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추정이 합리적인 가정에 기반한다면 보수적으로 이뤄졌더라도 그것을 인정한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흥미로운 것은 양측의 소송대리인단 모두 법정에서 “손상차손은 재평가액에 지나지 않기에 회사에 유입되는 현금흐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재무건전성 평가는 손상차손과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는 점이다. 동일한 논리를 두고 해석은 달랐다. 사측의 소송대리인단은 쌍용자동차가 손상차손을 인식하기 이전인 2009년 1월, 이미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허가받은 점을 들어 열악한 재무건전성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손상차손을 인식하기 이전에도 쌍용차는 1,86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태욱 변호사는 “회생절차에서는 ‘도산법’적인 관점에서 회생계획안이 작성될 뿐 근로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며, “법원의 기업회생 허가로 정리해고의 필요성이 검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경율 회계사 역시 “손상차손을 인식하지 않을 경우 부채비율이 561%에서 187%로 떨어지고 이는 동종업체에 비해 오히려 낮은 수준의 부채비율”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2007년을 제외하고 2005년부터 2009년 전반기까지 계속 (+)의 영업현금흐름을 유지했던 점, 정리해고 당시누적된 5년간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약 7,799억 가량이었던 점을 들어 “쌍용차의 자체적인 현금흐름개선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쌍용차가 재무건전성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2014년 11월 4일, 해고노동자들이 13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한 정리해고라는 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확정을 호소하고 있다. ⓒ 금속노조뉴스
정리해고 고속도로를 열어준 대법원?
대법원은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 규모에 대해 삼정KPMG에서 모답스 기법등을 활용해 적정하게 산정됐다고 판단했다.모답스 기법은 사람의 신체 각 부분의 동작을 거리 비율로 나타내어 시간 데이터 카드에 따라 표준시간을 구하는 표준시간 측정 방법이다.반면 서울고법에서는 모답스 기법을 활용해 구조조정 규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출한 것인지 근거를 알 수 없기에 합리적 추정치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똑같은 내용을 두고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를 대법원은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적정 규모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만큼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한다”는 논리로 인정했다. 김태욱 변호사는 이에 대해 “경영자의 재량적 판단에 대해 구체적 법리 없이 폭넓게 인정해주는 것은 무분별한 정리해고의 고속도로를 열어주는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나아가 김 변호사는 “쌍용자동차가 해고회피노력을 다했다”고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서울고법 2심 판결은 해고회피의 노력을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회피노력과 유지하는 회피노력으로 구분해, 후자에 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회사는 무급휴직 등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해고회피조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고 희망퇴직을 실시”한 점을 들어 사측이 적극적인 해고회피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종류의 노력을 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전제하며, 사내협력업체 인원축소, 희망퇴직 등을 들어 사측이 해고회피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했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추후 무수히 많을 정리해고 판결에 있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현재 대법원은 정리해고의 적법성을 판단함에 있어 ‘경영상의 긴박한 필요’와 ‘경영자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경영상의 긴박한 필요에 대한 판례 법리는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 감축이 필요한 경우도 포함된다’는 내용으로 현재 정착됐다.기업이 ‘장래의 닥쳐올 잠재적 위기’를 주장해도 법원이 이를 정리해고 요건인 ‘경영상의 긴박한 위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상의 위기는 또 한 번 ‘경영자의 재량권’에 의해 뒷받침되며 그 인정 요건이 크게 넓어진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은 경영자의 재량권을 노동자의 생존권보다 우위에 둔 것이고, 사실상 정리해고에 대해 사법심사를 포기”한 것이라 비판했다.

뒤늦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은 집단해고의 규모와 용이성에서 OCED 27개국 중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는 정리해고가 엄격히 통제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김경율 회계사와 김태욱 변호사는 “노·노·사 3자 간 합의로 복직 문제가 타결됐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이후 수많은 정리해고 판결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법률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경율 회계사는 “상황이 많이 어렵지만, 뒤늦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