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기사, 빛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하루

지위조차 불분명한 대리운전기사, 근무여건의 개선이 절실해
ⓒ 시사저널 대리운전업체와 기사의 수는 몇 년 사이 폭발적인 증가를 했지만 이들에 관한 제반 규정은 구비되지 못하고 있다.
ⓒ 시사저널 대리운전업체와 기사의 수는 몇 년 사이 폭발적인 증가를 했지만 이들에 관한 제반 규정은 구비되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쉬고 매일 여덟 시간씩 꼬박 일해도 수입이 70만 원 될까 말까한다.”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은 시급 4,860원이다. 이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한 사람이 받아야 하는 월급은 101만 원이다. 그러나 이의 3/4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면서 30만 명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직업이 있다. 바로 ‘대리운전기사’다. 10년 전까지 대리운전기사는 드라마에서 집안 사정이 어려운 가장이 가계를 살리기 위해 ‘투잡(Two-Job)’을 뛰는 소재로 묘사되곤 했다. 그랬던 대리기사가 10년이 지난 지금 30만 명이 종사하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직업군이 됐다. 이는 공인중개사, 택시 종사자와 비슷한 규모며 제주특별자치구의 경제활동인구와 똑같은 수다. 근로자의 수는 많지만 대리운전기사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대리운전기사들은 하루에 8시간씩 혹은 더 장시간 노동하며 근로자의 지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힘든 근무를 이어나가고 있다.대리운전, 회사에서 일은 구했지만 피고용자는 아니다? 대리운전기사들은 30만 명이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이지만 그들의 지위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특수고용직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를 두고 상이한 입장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리운전기사들은 자신들이 ‘비정규 특수고용직노동자’라고 주장한다. 특수고용노동자란 학습지 방문교사, 골프장 캐디와 같이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을 통해 노동하는 근로자를 말하는데 ‘콜 회사’와 ‘기사’의 관계를 이처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고용노동부는 ‘대리운전업’을 자영업으로 판단한다. 고용노동부가 대리운전을 자영업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우선 회사와 기사가 중개방식을 통해 일한다는 점때문이다. 대리운전기사는 콜 정보에 대한 수수료를 회사에 지불하며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고 일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관계를 ‘고용-피고용’이 아니라 ‘정보 교환’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회사 설립과 등록 절차과정도 정의를 어렵게 만든다. 대리운전 콜 회사 중에는 무허가업체가 많은데 이는 회사 설립에 대해 정부의 감시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들과 계약해 일하는 대리운전 기사의 경우 고용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송대성 사무처장은 “대리운전기사와 근무형태가 유사한 퀵서비스 기사도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됐다”며 “두 개의 근로체계가 비슷한 이상 대리운전업을 ‘특수고용노동’으로 인정하는 데 있어 무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노동위원회(민변 노동위) 이용우 변호사 역시 “회사가 기사들의 업무에 제한을 거는 ‘락(Lock)’ 등의 방침을 볼 때 회사와 기사의 관계를 ‘고용-피고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대리운전, 시작도 진행도 어려운 ‘고비용’ 일주일에 6일, 8시간을 일하지만 70만 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숙련도가 수입을 결정하는 대리운전의 특성 상 초보 대리운전기사는 그 ‘70만 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급격히 증가하는 대리운전기사의 수가 임금을 낮추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지만, 대리운전기사들이 말하는 저임금의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데 원인을 두고 있다. 우선 높은 수수료가 문제로 꼽힌다. 대리운전기사는 ‘콜 회사’로부터 제공받는 정보를 통해 고객을 찾게 된다. 그 대가로 회사에 일정 부분의 수수료를 납부하는데 문제는 이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일반적인 대리운전서비스 요금은 25,000원으로 여기에 부과되는 수수료는 5000원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송대성 사무처장은 “비슷한 업종인 퀵서비스의 경우 회사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는 10%다”며 “대리운전은 일부지역에서 33%에 육박하는 수수료를 떼어간다”고 비판했다. 대리운전기사의 생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과중한 수수료만이 아니다. 우선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너무 높다는 점도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대리운전 업계가 너무 복잡하게 조직됐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대리운전 업계의 주체는 크게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 ▲콜 접수 회사 ▲대리운전기사로 나눠진다. 우선 고객이 대리운전회사에 전화를 걸면 1차적으로 ‘콜 접수 회사’를 거친다. ‘콜 택시’의 경우 회사에서 기사에게 연결해주지만 대리운전의 경우 여기서 한 단계를 더 거쳐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로 고객의 콜이 전해진다.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란 고객의 콜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일종의 기지로 기사가 가지고 있는 PDA로 콜을 전달하고 고객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언뜻 보기에도 복잡한 이 구조에서 ’콜 회사‘와 ’프로그램 회사‘는 몇 개의 방법을 통해 이익을 거둔다. 그 중 하나의 방법이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가 기사들에게 나눠주는 ’PDA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다. ’PDA 시스템‘은 프로그램 회사가 보유한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계로, 이를 임대하기 위해서는 월 15,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과거 수도권에서 영업하는 프로그램 회사는 총 3개로 1개의 ’PDA 프로그램‘으로 전체 콜의 1/3을 소화할 수 있어 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대리운전 업계의 총 규모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급격히 불어나고 이에 맞춰 프로그램 회사들이 자회사를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대두됐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창수 이사장은 “기사들은 콜 수를 유지하기 위해 PDA를 추가 구매할 수밖에 없어 금전적인 부담감이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매일신문 납부한 보험료를 갈취한 콜 회사에게 시위 하는 대리운전기사들.

징계가 가능한 ‘동등한 계약’?, 저임금 문제와 더불어, 대리운전기사들은 최소한의 근로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보험과 관련된 문제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송대웅 사무처장은 “영업을 위해서는 개별 PDA에 대해 보험을 의무로 가입해야 한다”며 “기사들이 사용하는 PDA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보험료만 월 18-25만 원을 지불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전했다. 운전자가 자신이 가입한 보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콜 업체가 도중에 보험료를 갈취해 사고가 생겼을 때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대구, 2012년 군산에서는 대리운전 회사의 보험료 비리사건이 발생했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해묵은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콜 회사와 프로그램 회사가 대리운전 기사에게 부과하는 제재수단도 대리운전 기사를 압박한다. 대리운전기사가 받을 수 있는 규제수단은 크게 ‘벌금’과 ‘락(Lcok)’을 꼽을 수 있다. 벌금의 경우 초기 대리운전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대리운전 기사들 사이에서 콜을 자체적으로 취소하는 경우가 발생해 고객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벌금도 콜 회사가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준 마지막 대리기사가 받았기 때문에 대리운전 기사들 사이에도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벌금을 ‘중간 콜 회사’가 징수하게 되며 문제가 발생했다. ‘낚시 콜’이 PDA 시스템에 나타나게 되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콜 회사’가 조작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고 말했지만 “‘강남 – 하남 – 파주’와 비정상정인 콜이 빈번해진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대리운전기사들은 PDA 시스템에 나타나는 콜을 누가 빠르게 클릭하느냐 따라 수입이 결정돼 콜이 뜨면 확인 없이 클릭 한다. 이 때문에 낚시 콜이 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콜 회사’들은 ‘낚시 콜’로 징수한 벌금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다. 송 사무처장은 “대리운전 업체가 ‘낚시’를 통해 버는 돈은 한 달에 2-3억 원 가량이다”라고 밝히며 “대리운전 회사가 벌금을 통해 ‘회사 임대료’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벌금뿐만 아니라 ‘락’도 큰 문제다. ‘락’이란 프로그램 회사 및 콜 회사가 대리운전 기사의 PDA에 콜 정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조치다. 따라서 ‘락’이 걸린 기간에는 수입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더 심각한 것은 ‘락’이 대리운전기사의 업체를 교체하거나 ‘낚시 콜’을 취소하는 상황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락’을 통해 회사들은 기사들의 이탈을 막아 회사규모를 키우며, 더 나아가 대리운전 기사들의 실질적 고용주로서의 지위를 얻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루하루 이어가는 생계, 투쟁조차 어렵게 해 대리운전기사들이 상황 개선을 위한 행동에 쉽게 나설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모두가 ‘동종업계의 노동자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쟁자’인 까닭에 사람을 모으기도 어렵다. 사람들을 모으더라도 사건 해결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규정한 까닭에 대리운전기사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송대성 사무처장이 속한 ‘전국대리운전기사노동조합’ 역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의 조합일 뿐 고용노동부가 정식으로 인정한 노동조합은 아니다. 사람을 모으고 조합을 만들어내도 강력한 투쟁을 이어갈 수 없다는 점도 난점이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소위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긴 시간을 투쟁에 할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송대성 사무처장은 “대전 지역에서 대리운전 기사들이 단합해 근무를 거부하기도 했다”며 “그 기간이 2일을 넘어가기 힘들어 기대하는 바를 이루기 어려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사건 해결을 위한 발걸음, 힘겹지만 계속되고 있다 관계자들 대리운전 업계의 높은 수수료, 열악한 근무환경, 불리한 근로조건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를 위한 개선 노력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리운전기사의 지위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대리운전기사노동조합 송대성 사무처장은 “대리운전 기사의 지위가 정해지지 않아 곤란한 일이 많다”며 “고충이 생길 때 고용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사이에서 주관부서를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리운전을 특수고용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법원의 대답은 냉랭하다. 민변 노동위 이영우 변호사는 “퀵서비스 기사 사례의 경우 고용의 종속성을 입증할 수 있는 지표가 많았다”며 “대리운전 기사의 경우 이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상태”라는 견해를 밝혔다. 종속성을 나타내는 부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의 지위를 쟁취하는 것 외에 침해되는 권익을 위한 법적 개선도 필요하다. 이 변호사는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상 입법적 쟁취는 아직 어렵다”며 “우선 산재법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 추진을 하고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리운전 기사들 내부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인정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하고 있다. 2006년 대전대리운전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2011년 대구, 2012년 서울에 거쳐 지속적으로 노조설립이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대리운전기사들은 자체적인 ‘협동조합’을 설립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원동력을 제고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제 1호 협동조합으로 등록된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도 이 취지 아래 세워졌다. 협동조합이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설립해 이용함으로써 대리운전 기사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더 많은 회원을 모집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관심이다. 이를 위해 이 변호사와 송 사무처장 모두 “대리운전 기사들의 단합과 연대투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문제가 이슈화되기 위해 전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의 수는 30만 명에 달한다. 어느덧 2,400만(2013년 1월 기준) 경제활동인구의 1%를 넘어선 것이다. 1%의 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상위 1%의 재벌이 나라를 살린다며 ‘1%’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1%인 대리운전 기사들에 대한 관심만이 그들의 어둠에 해를 띄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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