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법무부의 갑작스런 발표 이후 사범시험 폐지를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측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단연 관심이 집중된 것은 바로 ‘개천의 용’입니다. 그러나 ‘개천의 용’만으로 지금의 갈등을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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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자격시험 하에서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는 응시자들은 모두 그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정원을 정해 놓고, 점수대로 줄을 세워 소수에게만 자격을 부여합니다. 사법시험의 정원 통제 덕분에 변호사는 용이 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 100명을 뽑던 사법시험의 인원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1000명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변호사는 일반 국민에게 멀고 먼 대상입니다. 사회의 수요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변호사 공급을 통제한 결과, 국민들은 질 높은 법률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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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한국법사회학회 부회장] 문제는 변호사라는 것이 더 이상 옛날처럼 권력을 누리는 자리이거나 또는 부를 축적하는 자리가 아니죠. 법률은 국민 모두가 향유해야 하는 공공재거든요. 이 과정에서 변호사 숫자는 무제한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논의되어야 할 것이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것과 영업을 하는 것은 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독일이 매년 변호사가 만 명에서 만 이천 명씩 배출이 됩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그 중에서 약 삼분의 일 정도는 변호사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 다른 업무에 종사하거든요.
[내레이션] 이러한 측면에서 사법시험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변호사시험은 사법시험의 폐해를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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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로스쿨 도입 취지 중 하나는 “교육의 정상화”였습니다.
[한상희 한국법사회학회 부회장] 과거의 법학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보면은 수입법학, 무조건 외국의 법제를 베껴오거나 이론을 베껴 오고 사법시험에 맞추어 사법시험을 공부하기 편하도록 정리한 일종의 수험법학이죠. 그리고 학생들은 그런 법 공부를 대학에서 하지 않고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하는 형태였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학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가장 저급한 형태의 수험 중심의 기술을 암기하는, 시험 기술을 암기하는 형태의 교육체제였다.
[내레이션] 그러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의 통제와 미합격생의 누적으로 인해 이러한 사법시험의 폐해가 로스쿨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스쿨이 법학을 공부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한 장이 된 것입니다. 법은 사회의 중요한 제도이기 때문에 깊이 연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학교육은 자격시험에 의해 규정되어 왔습니다. 이는 수능이 고등학교 교육을 지배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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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얼 한국법경제학회 부회장] 우리나라의 굉장히 뿌리 깊은 문제에요. 시험으로서, 국가가 운영하는 시험은 공정하고, 국가가 지식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거죠.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지적인 능력 모든 능력에 있어서 최고라고 인정하고, 평생토록 그것을 가지고 모든 것들이 결정되도록 하는 시스템이란 말이에요.
[아나운서] 사법시험은 오랜 기간 운영되며 ‘개천의 용’ 신화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개천의 용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적은 변호사 수이고 그로 인해 국민들은 법적 서비스를 높은 가격에 구매해야 합니다. 또한 이때까지 운영되어 온 사법시험은 법학 교육이 비 제도권 내의 학원 또는 독학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 동안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로스쿨이 법학 교육을 제도권으로 통합하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법조인으로 양성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로스쿨은 자격시험화 되지 않은 변호사시험과 각종 불합리한 규제들, 깊이 재고되지 못한 운영 방식으로 인해 사법시험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천의 용 프레임에서 벗어나, 법조인 양성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국민들에게 질 높은 법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건설적 토론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PD 이지원 lsae0812@icloud.com
PD 박나은 susanna@snu.ac.kr
나레이션 안미혜 algp143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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