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김질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이틀 밤

마장동의 발골사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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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2시, 마장동의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가 처음 마장동을 찾은 것은 새벽 2시였다. 주변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은 시각에도 마장동의 가게들에선 발골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냉동 탑차가 가게마다 서고, 사람들은 탑차에서 고기를 쉴 새 없이 내렸다. 기자는 한 가게에서 발골 작업을 하던 발골사를 발견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앞치마를 두른 그는 낯선 사람이 가게 앞을 서성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자는 조심스레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장동에서 일한지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이영호 씨.jpg
소를 발골하는 이영호 씨. 조명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는 걸 막기 위해 쓴 모자 아래로 살며시 미소가 보인다.jpg

  마장동에서 일한지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이영호 씨.

  취재 협조를 요청하자 그는 흔쾌히 취재를 허락했다. 그는 발골사 이영호 씨였다. 기자가 무슨 질문을 할지 머뭇거리는 동안 가게 안으로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몸집이 좋고 털모자를 눌러쓴 그는 동네 삼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배고파서 일찍 나왔다”던 그는 발골사 정연호 씨였다. 정 씨는 마장동에서 발골을 ‘새김질’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직함을 물으니 그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저요? 그냥 새김질하는 사람이죠.”

  기자가 마장동을 찾은 것은 2월 중하순, 마침 명절 특수가 끝나고 비교적 일이 적은 때였다. 덕분에 기자가 만난 발골사들은 기자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고 사진 촬영도 흔쾌히 승낙했다. 기자는 마장동에 관해 조사하던 중 흉흉한 소문을 접했다. 마장동에서 행패를 부리던 조폭이 칼에 찔렸다거나 취재를 오면 다들 거부한다는 등의 소문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지만 기자는 긴장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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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발골하는 정연호 씨.

  기자가 방문한 마장동은 그런 소문과 사뭇 달랐다.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이 씨가 말했다. 기자는 처음 마장동에 방문해 세 잔의 커피와 한 병의 박카스를 얻어 마셨다. 마장동은 커피 인심이 좋아 어딜 가든 커피를 얻어먹을 수 있다고 정 씨가 설명했다. 150개 들이 커피 믹스 한 상자를 보름이면 다 소비한다고 한다. “타우린, 우리가 버티는 힘이지!” 정 씨가 자양강장제를 마시며 넉살 좋게 말했다. 발골사들은 밤을 새워 작업을 해야 하기에 커피와 자양강장제를 많이 마신다. 정 씨는 틈이 생길 때마다 커피를 마시며 기자에게도 커피를 권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삶

  밤이면 지방에서 경매된 고기가 마장동으로 올라오면 4조각으로 나뉜 소와 2조각으로 나뉜 돼지가 각 매장으로 배달된다. 이 상태의 고기는 거의 손질이 안 된 상태다. 발골은 고기 손질의 첫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발골은 새벽에 이뤄진다. 새벽 동안 발골을 끝내야만 오전부터 고기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씨는 낮과 밤이 바뀐 것이 이 일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말했다. “오전에 할 일 끝내고 오후에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좋죠. 대신 친구들이 불러도 만나지 못해요. 저녁 6시면 벌써 잘 시간이니까.” 이 씨는 일이 없는 날마다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기르거나 잠을 보충한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이 ‘밤’이라고 부를 시간이 그들에게는 ‘새벽’이고, 보통 사람들이 ‘새벽’이라 부를 시간이 그들에게는 ‘아침’이다. 그들은 낮과 밤이 바뀐 삶을 산다.

소를 발골하는 정연호 씨. 그들은 잠깐씩 쉴 때를 빼고는 멈추지 않았다.jpg

 

소를 발골하는 정연호 씨. 그들은 몇 시간 동안 멈

추지 않았다.

 

  고기를 자르고 뼈를 발라내는 발골 과정은 언뜻 보기에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절대 간단하지 않다. 큰 뼈를 따라 살을 가르고, 지방을 떼어낸다. 무게를 실어 큰 뼈를 꺾고, 틈을 따라 칼을 밀어 넣는다. 다시 틈을 벌리고 칼을 밀어 넣기를 반복, 큰 덩어리를 잘라낸다. 고기에 따라 다른 칼을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하고, 세심하게 지방과 이자(땀샘)를 제거해야 한다.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고기도 모두 자르는 방식이 다르다. 발골 전에는 큰 고무 덩어리처럼 생긴 고기가, 섬세한 발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우리가 보는 모습의 고기가 된다.

  작은 실수에도 고기가 상하거나 사람이 다치기 쉽다. 발골사들이 다치는 것은 서투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씨는 일이 바빠 서두를 때 가장 다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 씨도 허벅지에 칼이 찔린 적이 있다. 정 씨는 “외국인들이 한국 발골사를 보면 ‘몸에 철갑을 둘렀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발골사는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만, 한국의 발골사는 몸이 둔해진다는 이유로 보호 장구를 잘 쓰지 않는다. 정 씨도 크게 다친 적이 있었지만,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다시 일해야 했다. 오랫동안 일을 쉬면 생계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요?”

  발골은 힘들다. 그래서 많은 발골사들은 사정이 되는대로 발골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차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씨는 그의 일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요?” 이 씨는 당분간은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횟집에서 참치 자르는 걸 보여주듯 고깃집에서 고기 자르는 걸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장난스레 물었다. 나중에는 참치 분해 작업도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그에게는 이 일이 아주 잘 맞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자기 전에 떠오르잖아요. 저는 이 일이 그래요.” 이 씨의 칼질은 경쾌했고 그의 표정은 내내 밝았다.

p3 이영호 씨가 사용하는 칼. 칼날이 닳아 모두 다른 모양이 되었다.jpg

  이영호 씨가 사용하는 칼. 칼날이 닳아 모두 다른 모양이 되었다.

  이 씨와 정 씨는 한 번에 여러 개의 칼을 쓴다. 처음에는 같은 모양의 칼이었지만 오랫동안 쓰이면서 칼날이 닳아 이제는 제각기 다른 모양이다. 그들은 각각의 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TV에서 보던 발골과 그들의 발골은 사뭇 달랐다. 훨씬 정확하고 섬세했으며, 동시에 날렵했다. TV에 나오는 이들은 발골보다 가게 경영에 집중하는 상인들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었다. 발골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 씨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정말 잘하는 사람은 TV 같은 데 잘 안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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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씨는 고기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기자가 취재하는 동안 정 씨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외국의 발골 방식, 고기 지방의 종류,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고기 등, 고기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틈날 때마다 고기에 관해 공부한다고 한다. 정 씨는 그의 일본어 실력을 기반으로 일본 정육 업체에서 일할 생각도 있었다. 일본 회사에서 면접도 봤지만, 아내의 반대로 마장동에 계속 남게 됐다고 했다. 원래 돼지 발골을 하던 그는 최근 관심이 생겨 소 발골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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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씨의 말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쳤다. “호텔 주방장 같은 사람들이 이 일을 배우러 와요. 그런데 그때마다 하는 말이, ‘우리는 이론에 강하다’는 말이에요. ‘이론에 강해서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증 필기시험도 한 번에 붙는다’고 하고.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이론에 약하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저도 필기시험 한 번에 붙었고, 공부 안 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는 TV에 나온 외식전문가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건 ‘야스리’라고, 칼의 날을 세우는 도구에요. 그런데 이걸 칼 닦는 도구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TV에 나와서 발골 보여주는 거 보면 어려운 건 미리 해놓고 (외식전문가는) 쉬운 것만 해요.” 정 씨는 전문가였다.

 

  새김질하는 사람들

  이 씨는 거의 20년, 정 씨는 14년 동안 마장동에서 일했다. 그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마장동에서 일하는 사람 중 많은 수가 자녀 교육에 큰 투자를 한다. 자녀에게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라 한다. 아직도 정육가공업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남아있다는 것이 이 씨와 정 씨의 공통된 설명이었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묻자, 이 씨는 기자도 이 씨의 일이 안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정 씨는 밖에서 일을 배우러 왔던 사람들이 마장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인식을 물리치기에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보고 백정이라 하지만, 사실 백정은 도축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새김질하는 사람들 보고 백정이라 부르면 사실 틀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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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골사들은 주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발골 일을 하게 됐다. 정 씨는 친형이 마장동에서 일했고, 이 씨는 시장 근처에 살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장동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 마장동이 알려지면서 일부러 발골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골사에 대한 직업적 인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육가공업에 대한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은 여전하다. 정 씨는 “한국은 기술에 대한 대우가 너무 박하다”고 말했다. 한 번은 에서 마장동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촬영 팀은 한국의 발골 기술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에서만큼 섬세한 발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발골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자, 정 씨와 이 씨는 “유럽에선 전기톱으로 대충 자른다”고 답했다. 한국의 발골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발골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언론에서 발골 기술을 다룰 때는 그 기술의 전문성보다 노동의 강도가 부각된다. ‘전문직종’이라는 인식보다는 ‘기피직종’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것이다.

  아침이 밝아오자 발골도 마무리됐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말수가 적어 보이던 이 씨는 어느덧 기자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줬다. 정 씨는 기자에게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라 하며, 다음에 오면 쇠고기에 소주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밤에 일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넓히기 힘든데, 손님이 와서 반갑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마장동을 두 번 찾으며 어느덧 마장동의 밤에 정이 들었다. 마장동에서 만난 발골사들은 기자가 여태껏 알게 된 ‘형님’ 중 가장 멋진 형님들이었다.

두 사람이 소를 발골 중이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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