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메르스 공포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름도 알지 못했던 전염병 때문에 총 1만6,693명이 격리되는 와중에 정부는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대책을 내놓는 등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민의 불신을 샀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한국 의료 체계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메르스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메르스 사태가 잦아든 지 1년이 지난 지금 메르스 유행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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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경계는 부족했고 대처도 미흡했다
2015년 5월 4일 한 남성이 바레인에서 입국했다. 이 남성은 5월 11일부터 고열, 기침 등의 증상을 보여 평택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여러 병원을 거쳤다. 5월 20일 그는 국내 최초 메르스 환자로 확진됐다. 그러나 그가 첫 번째 환자로 확진됐을 때는 이미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후였다. 이렇게 시작된 메르스 유행 기간에 확진자 186명과 사망자 38명이 발생했으며, 의료적인 비용뿐 아니라 경기 위축과 사회적 불안 등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생겼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7월 28일 정부는 메르스가 사실상 종식됐다고 선언했다. 공식적으로 메르스 사태가 완전히 끝난 것은 12월 23일,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7개월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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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메르스 사태는 많은 촌극을 낳았다.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대응 지침 중 하나로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라”는 홍보물을 만들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살려야 한다”는 문구를 인쇄한 A4 용지를 벽면에 붙여놓고 사진을 찍었다. 촌극에 동참한 것은 정부만이 아니었다. 메르스의 매개체가 되는 것은 단봉낙타지만, 동물원들은 메르스와는 관계없는 쌍봉낙타까지도 격리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긴급재난 1호 상황으로 지정했다”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촌극이 촌극만으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결국 메르스 환자 중 38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어째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일까?
메르스 유행 이전에도 신종 전염병의 유입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도 이런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메르스 감염자 수 세계 2위가 될 정도로 사태가 확산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김홍빈 교수뿐만 아니라 당시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그만큼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는 취약했으며, 신종감염병에 대한 경계와 대처 능력 역시 부족했다.

나백주 서울서북병원 원장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같은 경우 실시간으로 질병 현황을 감시, 파악하고 빠른 대처를 내릴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이와 같은 체계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기존의 보건 관리 인력마저 줄어드는 추세였다. 해외 방문자에 대한 자가진단 설문이나 공항의 열화상카메라도 관리 인력이 부족하여 폐지가 논의되고 있었다.
사태 전반을 감독해야 할 정부 역시 허둥대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급하게 메르스 대응팀을 꾸렸지만, 정부는 전문성도, 민간과의 공조 경험도 부족해 대응팀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정부의 지침도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오히려 정부에서 제시한 “2m 이내 거리에서 한 시간 이상 환자와 접촉”이라는 밀접 접촉자 기준은 감염 확산을 야기했다고 지적받았다.
메르스 대처에 있어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 부처는 거꾸로 민간에 크게 의존했다. 당시 정부는 감염 데이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의료진과 대한감염학회들이 앞장서서 감염 데이터를 만들기도 했다. 정부의 대응팀마저도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해 꾸려졌다. 메르스 대응 태스크포스에도 참여했던 김홍빈 교수는 “민간 전문가는 조언을 할 뿐이고 결국 결정을 하는 것은 정부와 공무원들의 몫이어야 하는데, 책임감 있는 결정이 부족했다”고 당시 상황을 지적했다.
불투명한 정보공개가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많다. 어느 병원에서 어떤 경로로 환자가 발생했는지 등의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시민들의 불안이 증폭됐을 뿐 아니라 의료진이 환자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당시 SNS 등에서 ‘괴담’이 과하게 퍼진 측면도 있다. SNS 등을 통한 공포의 확산 때문에 메르스 환자가 있던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료진들의 자녀가 학교로부터 등교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는 “치사율이나 전염력을 고려하면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과도했던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백주 원장은 “소문의 크기는 정보의 불확실성과 중요도에 비례해서 커진다”며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혼란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홍빈 교수는 무조건적인 정보 공개가 능사는 아니라고 밝혔다. 정보 공개로 인해 오히려 공포가 강화될 수 있고, 정부의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병원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당시 막대한 손실을 우려한 많은 병원은 함부로 정보를 공개하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조승연 성남의료원장은 “인천의료원에 에볼라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환자 관리에 약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지만, 이에 대해 300만원 정도의 보상밖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보 공개에 대한 정부의 제대로 된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는 병원이 손실을 우려해 보건의료적으로 엇나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감염이 의심되는 병원이 스스로 병동을 폐쇄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했지만, 실제 보상액은 적은 액수에 그쳤다. 대한의사협회는 2015년 7월 2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메르스로 인한 의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손실액이 4,1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정부의 지원금 2,500억 원은 이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의 감염관리 기준이 강화되고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관이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메르스 유행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질병관리본부의 대처 능력 부족은 정부 부처의 구조에 기인한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한 부처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지 않고 여러 부처를 순환하며 근무한다. 때문에 사스나 조류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 위기를 겪었던 인력이 현재는 대부분 다른 부처에 배치돼있다. 또한 메르스 사태 당시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질병 관련 정보 공개를 늦추는 등 의료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부적절한 결정들을 다수 내렸는데,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보건의료적인 요인보다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는 한국의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질병관리본부의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거론되고 있다. 승격을 통해 해당 기관에 더 많은 결정권과 자원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다 해도,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앞서 제기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보건의료체계가 개선돼야 한다. 조병희 교수는 “메르스 사태가 종식된 것은 전통적인 방역조치를 잘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스가 퍼진 것도 방역 체계의 허점 때문이었지만, 메르스를 종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있던 보건의료체계가 작동한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부족한 인력 탓에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메르스의 종식이 “며칠 밤을 새가며 일한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희생”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메르스 백서’ 역시 공중보건인력의 부족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에도 공중보건체계의 확충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중보건의의 수는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며, 그 대우도 열악한 축에 속한다. 8월 18일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149개 시군구 중 52곳(약 35%)에서 공중보건의에게 위험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공중보건의의 수 역시 최근 5년간 약 30% 가량 감소했다.

조승연 원장은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병원의 공공성 약화를 들었다. 간단히 말해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전염병에 대한 준비나 대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조병희 교수 역시 “감염이나 예방 분야를 의사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관련 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난 메르스 사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 영역에게 보건과 감염 관리에 대한 투자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보건 전반, 특히 감염 관리는 공공의 책임이 큰 반면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공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의료의 공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상당수의 공공병원이 법인화되는 등 공공병원들은 ‘경영의 합리화’를 위해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조승연 원장은 이러한 세태를 비판하며 “(병원들이) 적자를 보더라도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공공병원의 수는 그동안 거의 늘지 않아, 최근에 지어진 공공병원은 성남의료원이 유일하다. 현재 운영되는 공공병원들은 전체 병원 수의 약 5%, 병상 수 기준 전체의 약 10%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
김홍빈 교수는 메르스 사태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라 평가했다.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난 정부의 불통과 정부에 대한 불신, 보건체계의 허점, 수익만을 추구하는 의료, 시민들의 비합리적인 반응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곧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앞서 조류인플루엔자나 사스 위기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10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조승연 원장과 김홍빈 교수는 공중보건과 감염관리체계를 국방에 비유했다. 전쟁이 터지지 않더라도 늘 국방력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보건의료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조 원장은 “지금 당장 문제가 터졌다고 단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 1년이 지나서도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홍빈 교수는 “변화가 느린 정부 부처의 특성 상 1년 내에 많은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메르스 사태 후 1년이 흐른 뒤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현 상황을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메르스뿐만 아니라 다른 전염병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의료진의 결핵 감염, 콜레라 발생 등 전염병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메르스로 인해 치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한국 의료 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