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밥 먹느라 shy shy shy?

여전히 제한적인 ‘혼밥’ 문화

  <서울대저널>에서 서울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420명의 응답자 중 183명(약 44%)이 전체 식사에서 혼자 식사하는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답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11년 서울·경인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4% 가량이 함께 식사하는 것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더 자주 하거나, 두 개의 비중이 유사하다고 답한 바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설문조사에서 대학생 응답자는 혼자 밥을 먹는 이유로 ‘같이 먹기 위한 시간조정이 어려워서’(48%),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17%), ‘여유롭게 먹기 위해서’(15%) 등을 순서대로 꼽았다. 서울대학교 학생들 역시 설문조사에서 ‘혼자 먹는 것이 편해서’(39%), ‘시간이 없어서’(30%),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29%) 등 주로 간편함과 용이성을 혼밥을 하는 이유로 꼽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조사 결과와 유사함을 보였다.

  현재 대학생들의 식사에서 혼자 하는 식사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혼자 하는 식사를 지칭하는 신조어인 ‘혼밥’은 일상에서의 대화뿐만 아니라 미디어 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밖에도 ‘혼밥족’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법을 모은 책이 출판되거나, 여러 상황에서의 혼밥을 난이도별로 구분한 ‘혼밥 레벨 테스트’가 SNS를 타고 유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혼밥 문화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게 됐을 보여준다.

  요식업계도 혼밥의 성행에 발맞춰 1인 식사를 타깃으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광화문, 강남 등 직장인 밀집 지역이나 신촌 등 대학가에는 좌석마다 칸막이가 있는 1인용 식당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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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족’을 위한 편의점 상품으로 꾸려 본 한 끼 식단 ⓒ박나은 사진기자

  편의점 역시 혼밥 상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편의점 ‘CU’의 운영업체인 BGF리테일 홍보팀 유억권 과장은 편의점 이용 빈도가 높은 20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혼밥 상품이 매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유 과장에 따르면 20대 대학생은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아직 시작하지 않아 가격 민감도가 높고 소위 ‘가성비’를 중시”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들을 겨냥한 편의점 도시락과 ‘밥바’, ‘밥버거’ 등, 상품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BGF리테일의 도시락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약 3배 정도 증가했고, 그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31.4%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혼밥은 ‘개별성’의 표현… 앞으로 주된 사회 현상 될 것”

  대학생에게 혼밥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확산됐을까. 성균관대학교 김봉석 교수(사회학과)는 혼밥 문화가 늘어나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현대 사회에 ‘개인’의 존재가 중요해지면서 개인 간 이질성이 부각됐고,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이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기가 힘들어진 것”이 혼밥 문화가 늘어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역시 다양하고 이질적인 개인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현대 사회의 집합체이므로 대학에서의 혼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김봉석 교수는 혼밥이 “개별성을 인정받고 싶은 독자적 개인으로서의 대응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대학 구성원의 출신 지역, 연령, 학번, 학과, 관심사 등이 다양해지는 현실에서 이질적인 개인은 갈등과 피해를 감수하며 지속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기보다 혼자 행동하는 것을 택하게 되고, 혼밥이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오유진 연구원은 대학생이 “기존의 초중고 학교급식에서 결정된 식사를 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식사 메뉴와 환경을 결정하는 최초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학창시절에 비해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일정이 개인화되는 대학생들의 경우, 타인과 함께 식사를 하기보다 혼자 식사하게 되는 빈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앞선 두 조사에서 혼밥을 하는 이유로 ‘같이 먹기 위한 시간조정이 어려워서’, ‘혼자 먹는 것이 편해서’ 등이 나왔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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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관 식당 TV 앞 테이블은 특히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박나은 사진기자

  경제적 요인 또한 대학생의 혼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 김봉석 교수는 “대학생에게 대학 생활 자체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는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상품으로 식사를 해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품은 타인과 같이 하는 식사보다 혼밥에 맞춤화돼있어 자연스럽게 혼자 식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스마트폰의 보급이 혼밥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김봉석 교수는 “스마트폰을 통해 혼자 식사를 하면서도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SNS를 하는 등의 ‘놀거리’가 제공됨으로써 대학생의 혼밥이 기술적으로도 뒷받침될 수 있다”며 혼자 식사하는 문화가 계속해서 늘어나 앞으로 주된 사회 현상으로 정착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외로움’과 ‘불완전함’, 혼밥을 향한 불편한 시선들

  현대 사회의 개별성, 경제적 사정 등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혼밥이 증가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여전히 혼밥은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저자 아주대학교 노명우 교수(사회학과)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혼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노 교수는 한국 사회가 “외로움을 인간의 실존적 본질이나 속성이라고 보지 않고 예외적 상황, 일탈적 상황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혼자서 뭔가 하기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풍토가 혼밥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김교석 문화평론가 역시 한국에서 혼밥이 일종의 ‘불완전함’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 문화평론가는 사회구조상 혼밥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미디어에서 혼밥은 “다양한 삶의 모습 중 하나로 다뤄지기보다 불완전한 삶으로 코드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청년층이 결혼, 혹은 정착을 향해 가는 과도기로 인식되기 때문에 청년층의 혼밥이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그려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혼밥은 종종 함께 할 연인이나 친구가 없다는 내용과 함께 안쓰럽게 비춰지거나, ‘결혼하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외로운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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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나 혼자 산다’ 방송의 한 장면. 혼자 하는 식사는 외로운 삶으로 직결된다. ⓒMBC

  혼밥을 주제로 한 드라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혼밥을 다루는 드라마는 주로 혼자 식사하는 캐릭터의 외로움에 주목하고, 이들이 같이 식사하는 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깨닫도록 한다. 의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는 1인 가구를 위한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결국 혼자 생활하는 주인공의 삶에 ‘로맨스를 버무려’ 인간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삼포세대 미혼남’이나 ‘미혼녀’로,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혼자 식사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밖에도 ‘혼밥 식당’에 주인공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드라마 ‘심야식당’이나, ‘혼술’하는 주인공들이 결국 ‘함께 나누는 술의 맛’을 알게 된다는 드라마 ‘혼술남녀’ 역시 등장인물이 함께 식사할 파트너를 찾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사례는 오늘날 미디어가 혼밥을 같이 먹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결핍 상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혼밥이 하나의 문화 양식으로 정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상생활에서의 혼밥 역시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SNS 상에서 유행하는 ‘혼밥 레벨 테스트’는 혼자 식사하는 문화가 현대인의 삶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만큼 제한적인 배경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소위 ‘혼밥 레벨’이 낮은 편의점, 학생식당, 패스트푸드점에서의 혼밥은 주위의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레벨이 높은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고깃집에서의 혼밥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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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당에 설치된 바 형태의 테이블에서는 누구든 부담 없이 혼자 식사를 할 수 있다. ⓒ박나은 사진기자

  송화평(영문 14) 씨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고깃집은 보통 여러 명이서 함께 식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혼밥을 할 때 “같은 식당에 있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뿐만 아니라 가게 주인의 눈치도 보게 된다”고 토로했다. 대학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가게에 혼자 식사하러 온 사람을 보면 “뭔가 사정이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여러 명의 손님이 한꺼번에 오는 시간대에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빨리 나가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혼자서도 당당하게 밥 먹고 싶다

  한편 혼밥은 미디어에서 일종의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로 다뤄지기도 한다.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해 다양한 1인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품격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식이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이러한 방식 역시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굳이 ‘혼밥’을 한다고 특별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이 또한 여전히 혼밥을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범주에 속한다고 지적한다. 김 문화평론가는 혼밥이 “둘이서 먹는 것, 여럿이서 먹는 것 등 다른 식사 양태와 별다른 차이 없이 받아들여지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혼밥을 비정상적인 행위로 바라보는 것은 혼밥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과 고민을 안겨준다. 하석현(전기·정보공학 13) 씨는 “가끔 학교 밖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면 큰 용기를 내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을지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산하면서 나오는 순간까지 행동 하나하나를 계획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1인용 식당을 자주 찾는 황원(국문 13) 씨는 “다른 종류의 식당에서도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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