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 : 성 소수자는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소수자를 일컫는다. 비슷한 말로는 퀴어와 LGBT가 있다.퀴어(Queer) : 본래는 ‘기묘한, 이상한’이라는 뜻으로 동성애자를 멸시할 때 쓰는 단어였으나.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당당하게 ‘퀴어’라는 뜻을 사용함으로서 점차 성 소수자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랑은 미디어의 단골 소재다. 그 중에서도 연애 과정은 많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빈번하게 다뤄져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강타했던 ‘천생연분’, ‘장미의 전쟁’과 같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이다. 이 흐름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우리결혼했어요’, ‘짝’, ‘님과 함께’ 등 연애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나 ‘마녀사냥’과 같은 토크쇼의 형태로 이어졌다. 드라마 역시 젊은 남녀의 연애, 불륜 등 다양한 연애의 면모들을 다뤄왔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랑은 이성애에 한정된다. 퀴어의 연애는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거나, 시장의 논리에 따라 왜곡된다. 미디어는 어 떤 식으로 퀴어의 연애를 배제하고 왜곡해 왔을까. 미디어가 퀴어를 다루는 방식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우리 결혼했어요’, ‘짝’ 등 연애 관련 많은 프로그램들이 미디어에 나오고 있다. ⓒMBC(좌) ⓒSBS(우)
조롱거리가 되거나 보이지 않거나
퀴어의 연애는 미디어에서 종종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A 씨는 “누군가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인 동성연애가 미디어에서는 ‘더럽다’는 반응과 함께 가려진다”며 미디어가 동성연애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불편함을 전했다. 그는 “동성연애가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이라는 전제 아래, 해당 내용이 방송에 나왔을 때 최대한 웃음으로 그걸 무마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A 씨의 말처럼 커밍아웃한 연예인들은 쉽게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개그콘서트의 코너였던 ‘감수성’을 예로 들었다. ‘감수성’의 내용은 성 앞에 흐르는 내천의 물을 마시면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내천 이름은 ‘홍석천’이고, 물 이름은 ‘하리수’다. 김지학 소장은 “홍석천 씨가 게이라는 소재로 개그를 하는 것은 스스로가 게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그가 타자에 의해서 희화화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퀴어의 연애에 대한 콘텐츠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미디어에 퀴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퀴어에 대한 획일화된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미디어에서의 잦은 노출은 퀴어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에 일조했지만, 퀴어의 정체성이 곧 ‘홍석천’이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퀴어의 다양한 모습이 미디어에 등장해 퀴어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홍석천이라는 연예인 한 명에서 퀴어의 이미지가 파생되고 있는 것이다.
김지학 소장은 퀴어의 연애를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무장애도시’를 예로 들었다. 무장애도시란 모든 시설이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만으로 이뤄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설계된 도시다. 그는 이런 도시가 자동으로 장애인에 대한 가시성을 높여주고, 이는 곧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무장애도시는 장애인을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내 공론화를 가능케하고,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많이 만들어지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미디어가 퀴어의 가시성을 높여 무장애도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퀴어에 대한 획일적 이미지만이 나타나는 한국 미디어와는 달리, 외국 미디어는 퀴어의 연애에 대한 다양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자신을 퀴어라고 밝힌 B씨는 외국의 미디
어에는 성소수자의 등장 빈도가 높고, 성소수자가 고정적으로 나오는 쇼와 드라마도 많다고 말했다. B 씨는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는 예로 들었다. ‘모던 패밀리’가 게이 부부가 가족, 친구들, 지역사회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서로의 감정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등 부부의 다양한 모습을 다룬다. B 씨는 이러한 지점이 퀴어의 연애를 “사회와 격리시키고 평면적인 이야기로 다루며 타자화시키는” 한국 미디어와의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퀴어’하기만 한 미디어 속 퀴어의 연애
퀴어의 연애에 있어 미디어가 가지는 한계는 미디어 자체의 한계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김지학 소장은 “현재 미디어가 연애를 다루는 방식이 최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 고 지적한다. 현대사회에서는 1인 가정, 이혼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하며, 많은 여성들이 연애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중파나 스크린 등 주요 미디어에 서 다루는 연애는 여전히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라는 것이다. 작품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초점 또한 개인 대 개인의 사랑보다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집중한다. 여전히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이 자주 등장하며, 내용 역시 가부장적 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는 미디어에서 퀴어의 연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공중파나 스크린에서 다루는 많은 동성애 작품들은 고정된 성역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현실이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역시 고정적 성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동성애에 접근한다. 원작 연극 ‘이(爾)’속 공길은 영악하고 야망있는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 이준기가 연기했던 ‘공길’은 한없이 여리고 무기력하게 나올 뿐이다.

게이 코미디언 홍석천이 나온 tvN ‘코미디빅리그’의 ‘마초맨’. 여기서 홍석천은 말끝을 올리는 등 성역할이 분배된 말투를 사용한다 ⓒize
B 씨는 “가장 큰 문제는 미디어가 퀴어의 연애를 퀴어의 연애로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가‘브로맨스’와 ‘걸크러쉬’라는 이름 아래 동성애를 동성애자 사이의 사랑이 아닌 이성애자들 사이의 우정, 동경 등의 산물로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거부감 줄이기 전략’은 동성애를 하나의 판타지로 다루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퀴어를 화려하거나 섹시하게 등장시켜 그들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줄이려는 식이다. 조인성 주연의 영화 ‘쌍화점(2008)’은 잘생긴 두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격정적으로’ 다룸으로써 화제가 됐다. 미남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2008)’에도 ‘모델같은 외모의 마성의 게이’가 등장한다.
물론 퀴어를 다루는 이러한 방식이 절대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김지학 소장은 “시장성을 겨냥한 성역할 분배나 판타지적 묘사는 점차 개선되어야 할 문제지만, 이는 퀴어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는 초기 단계에서의 현상”이라고 말한다. B 씨 역시 이런 미디어의 전략을 “동성애라는 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반영하면서도,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룰 때 대중의 거부감을 피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한국의 주요 미디어에서 대중의 거부감에 대한 고려없이 퀴어의 연애를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2015년 두 레즈비언 여고생의 키스신을 긴 시간 내보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선암여고 탐정단’이 대표적 사례다.
미디어가 퀴어를 다루는 방식이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자신을 퀴어라고 밝힌 20대 C 씨는 “미디어는 시장을 반영해 현실을 한 차례 왜곡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미디어에서 퀴어가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을 통해 일상과는 거리가 먼 연애를 보여주는 건 이성 연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퀴어의 연애를 판타지로 다루는 것은 퀴어의 연애를 다룬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의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을 지적했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조금 더 채워져야 할 일상성
퀴어의 연애를 다룬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1988년 개봉한 송경식 감독의 ‘사방지’는 조선왕조실록 세조편에 기록되어 있는 사방지라는 인터섹슈얼(Intersexual, 선천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다룬 한국 최초의 퀴어 영화다. 1999년 김태용 감독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레즈비언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후 김조광수, 이송희일과 같은 퀴어 감독들이 퀴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김조광수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2006)’는 기존의 성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에는 유명 감독들에 의해 퀴어 영화가 만들어져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14년 장진 감독의 ‘하이힐’,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대표적이다. 2012년에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SBS에 방영되면서 호평을 받았고, 그 외에도 tvN의 ‘우와한 녀(2013)’, MBC의 ‘형영당 일기(2014)’, Mnet의 ‘더러버(2015)’ 등 다양한 퀴어 작품들이 브라운관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김지학 소장은 퀴어의 연애를 다루는 작품이 증가하는 것과 더불어 이를 소재로 한 웹툰이나 팟캐스트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런 현상들이 현재 10~30대들 사이에 퀴어를 가시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퀴어 아동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퀴어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비성소수자들의 퀴어에 대한 인식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김 소장은 퀴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개선된다면 이러한 콘텐츠에 대한 지지자들이 늘 것이며, 결국 시장성을 고려하는 미디어의 태생적 특징 때문에라도 퀴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웹툰, 팟캐스트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퀴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네이버 웹툰(상) ⓒ팟빵 ‘GAY라디오SHOW(하)
한편 미디어가 퀴어를 다루는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자가 만난 퀴어들은 모두 변화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지만, 그 방향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다. A 씨와 B씨는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는 퀴어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미디어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퀴어로서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차별과 혐오 역시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에 퀴어의 연애를 그려나가는 데 있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B 씨는 “퀴어 커플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감정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해야 비성소수자들로 하여금 퀴어들이 그들로부터 멀리 있지 않고, 편하지만은 않게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가벼운 생각과 행동이 그들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A 씨는 “퀴어 연애의 어려운 점, 헤쳐 나가야 할 고난만을 강조하면 결국 퀴어의 연애는 ‘비정상적인 것’, ‘특이한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오히려 그런 특이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의 연애의 일상적인 모습이 미디어에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B 씨는 미디어 내부에서 퀴어의 연애는 늘 과장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B 씨는 퀴어의 연애가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늘 우발적이며 모호하고, 아름답거나 슬프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A 씨 역시 미디어 속의 퀴어들의 연애가 단순히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아니라 섬세한 연애 감정으로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애하는 퀴어가 “특이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고, 결국엔 그냥 연애하는 사람일 뿐”이라며 미디어에서 퀴어의 연애를 과장되게 다루는 관습이 점차 개선되어야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김지학 소장은 성소수자를 타자화되거나 대상화되지 않은 ‘주체’로 묘사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들을 시혜적인 입장에서 그리는 것은 피해야한다 고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트랜스젠더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랑과 연애가 동등하게 이해되지 않는 현 사회에서, 퀴어의 연애를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 속 왜곡된 퀴어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주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한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퀴어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안의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고 혐오를 쓴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