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못하는 효도 국가가 대신한다”는 이념 하에 출발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다. 정부는 고령화와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을 위한 돌봄 서비스를 주요 복지사업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당초의 정책 목표에는 노인 복지 증진과 더불어 ‘양질의 중장년 여성일자리 마련’에도 방점이 찍혀 있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운영을 주관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제도의 시행으로 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가정의 부양 부담이 경감되는 한편 여성의 일자리도 늘어났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 성과의 이면에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윤혜연 한국돌봄협동조합협의회 협회장은 “2008년 처음 정책이 시행될 당시, 요양보호사는 마땅한 경력이 없는 중장년 여성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로 여겨져 너도나도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은 가파르게 늘어나 2014년 기준 121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 실제 일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약 26만 명으로 자격증 소지자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요양보호사의 처우가 워낙 열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가요양보호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직접 해 보면 계속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자들의 낮은 취업률은 여기서 기인한다. 일선 요양기관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요양보호사들은 좋은 근로조건을 가진 요양기관을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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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가고 말라면 말고, 불안정 노동에 처한 요양보호사들
요양보호사는 크게 재가요양보호사와 시설요양보호사로 나뉜다. 재가요양보호사는 가정에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설요양보호사는 요양기관에서 입원 환자를 돌본다. 시설요양보호사들의 노동 환경 역시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가요양보호사들의 노동 실태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노동 폐해를 보여준다.
재가요양보호사들이 겪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시급제 노동’에 기인한다. 재가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보험수급자는 먼저 신청을 한 뒤 공단으로부터 요양대상자 인정과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신청자의 등급과 소득수준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결정된다. 판정을 받고 나면 여러 재가요양기관 중 하나를 골라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신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요양보호사가 가정에 방문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문제는 이때 미리 협의된 시간만큼만 재가요양보호사의 노동 시간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용자의 요구로, 혹은 업무가 많아 약속된 시간보다 30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해도, 이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시간과 노동 일수도 불안정하다. 이용자가 친척집 방문, 입원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서비스 이용을 임시 중단할 경우 재가요양보호사는 일거리가 없어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좋은돌봄실천 요양보호사 지원단’에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 이은희 씨는 “아침에 출근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갑자기 문자로 ‘오늘은 안 와도 된다’고 통보하는 일도 있다”며 요양보호사의 불안정한 노동 시간에 대해 토로했다. 이용자가 건강 악화로 시설에 입소하거나 사망할 경우 갑작스럽게 실업자 신세가 된다.
이처럼 재가요양보호사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안정적인 노동 시간과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본인의 업무 능력과는 관계없이 이용자의 사정이나 변심에 따라 얼마든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근로계약을 했으면 사용자가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데, 이 경우는 노동자가 모든 위험과 고통을 뒤집어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들의 낮은 임금도 문제다. 재가이용서비스 이용자 한 명이 하루 최대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이다. 일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임금도 적다. 이렇게 하루 4시간씩 일주일에 다섯 번 출근했을 때 요양보호사들의 손에는 월 50~60만원 남짓의 돈이 주어진다. 이는 각종 수당을 적용했을 때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금액이다.
생계유지 목적으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근무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하루를 오전, 오후로 나눠 두 가정에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경우 요양보호사는 온종일 노동을 한 것이 되지만, 중간의 이동시간은 일한 시간으로 계산되지 않을뿐더러 점심 식대와 교통비 역시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급제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가정을 돌볼 경우 일도 두 배가 돼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두 이용자의 세면, 식사, 빨래 등 업무를 각각 4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8시간을 일하는 것과는 다르다. 중간의 이동 시간으로 인한 피로는 덤이다.
요양기관은 정부가 기관에 지급하는 시간당 수가에서 운영비를 제한 금액을 요양보호사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데, 임금은 대개 최저임금에 맞춰진다. 임금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어 임금 책정은 기관의 자율에 맡겨진다. 때문에 요양 기관에서 특별히 배려해주지 않는 한 요양보호사들의 임금은 모두 똑같다. 경력이 길다고 해서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니며, 이용자의 장애 수준에 따라 노동 강도에 차이가 있어도 수가는 같다. 자연히 중증 장애를 가진 이용자는 기피 대상이 된다. 지난 8년 간 최저임금이 3,770원에서 6,030원으로 60% 가량 오르는 동안, 방문요양서비스의 수가는 6.6%에서 11.4%로 오르는 것에 그쳤다. 물가가 오른 걸 고려하면 요양보호사들의 임금은 오히려 하락한 셈이다.
저임금 문제가 불거지자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처우개선비를 도입했지만, 시간당 625원에 불과할뿐더러 이마저도 일시적인 조치라고 못박았다. 요양보호사들은 현재까지는 유지되고 있는 처우개선비가 언제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11개월 계약을 하는 일은 예사다.
신체질환과 감정노동에도 시달려
상당수의 요양보호사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대부분 중장년 여성인 요양보호사들에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들어 옮기거나 자세를 바꿔주고, 세면과 목욕을 돕는 일은 신체적으로 무리가 가는 활동이다. 이은희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을 일으켜 화장실에 데려가고, 다시 눕혀놓고, 간이침대의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려 높낮이를 조절하는 등의 일을 하루에 몇십번씩 매일 한다. 손목이며 허리, 어깨 등이 나갈 수밖에 없다”며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계속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들이 이러한 질환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하더라도 승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근골격계 질환은 나이가 들면 자연히 생기는 퇴행성 질환으로 여겨져 업무 수행으로 생긴 질환인지의 여부를 밝히기가 까다롭다는 게 이유다.
게다가 재가요양보호사은 감정노동에도 노출돼있다. 이용자를 ‘돌보는’ 업무의 특성상 헌신적인 업무 수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임종할 경우 요양보호사 역시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또한 일하는 장소가 이용자의 가정이고, 여성 혼자 파견돼 일을 하다보니 이용자와 이용자 가족의 부당한 업무 지시나 언어폭력, 성희롱에도 쉽게 노출된다. 요양보호사를 ‘아줌마’라고 낮춰 부르며 무시하거나, 이용자와는 관계없는 가족들의 세탁, 식사 준비, 설거지 등 잡일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용자 가족이 요양보호사의 업무에 대해 공연히 감시를 하고 의심하는 경우도 잦다.
이용자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요양보호사들은 이를 쉽게 거부할 수 없다. 고용이 불안정한데다가 문자 한 통에도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을’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돌봄지부 김미현 선전부장은 “요양기관은 (요양보호사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전혀 방어하거나 컨트롤해주지 않는다”며 “괜히 말을 했다가 어르신(이용자)이 다른 기관으로 넘어갈까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구를 거부하면 기관을 바꾸겠다며 이용자가 으름장을 놓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요양기관이 요양보호사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 위해 어르신을 이용해 협박하기도 한다”고 김 선전부장은 덧붙였다.
수가 개선, 감독과 함께 월급제 전환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재가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보건복지부의 제도 설계에서 온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윤혜연 협회장은 “진짜 사장은 국가고, 요양기관에 하청을 준 것”이라고 표현했다. 윤 협회장은 이어서 “수가대로, 규정대로 운영하면 (요양보호사들에게) 최저임금을 겨우 지급하고 기관도 최소한의 운영비만 남길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비영리 기관도 이러한데,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영리 기관은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결국 인건비를 깎고 서비스를 줄이는 결과로 돌아온다.
2016년에는 보건복지부가 수가를 동결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수가 동결에 따라 요양 기관들은 시설운영비를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의 업무를 늘렸다. 하루 4시간씩 주 5일 출근하던 것을 하루 3시간 혹은 3.5시간씩 주 6일 출근하도록 한 것이다. 노동시간을 한 시간 가량 줄인 것은 이용시간이 적을수록 시간당 수가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가요양보호사들은 기존에 비해 하루 더 출근해야하는데다가, 평소 4시간에 하던 일을 3시간 혹은 3.5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한 재가요양보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윤혜연 제공
“국가가 대신하는 효도”라는 요양 사업의 노동 현실은 국가 주관하는 사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열악하다. 전문가들은 보건복지부가 보험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수가를 동결하고, 서비스 시간을 줄여 등급 판정을 까다롭게 만듦으로써 대상자를 축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윤지영 변호사는 “국가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하청에 떠넘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중장년 여성이기에 여성 문제와도 분리할 수 없다. 윤지영 변호사는 “돌봄 노동에 대한 저평가와 열악한 대우는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장보현 사무국장은 “돌봄노동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면 그 돌봄노동자에게 우리 부모님 또는 나 자신을 맘 편히 맡길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시급제 노동이 있다. 윤지영 변호사는 “노인돌봄·가사간병, 아이돌보미서비스, 장애활동보조인 등 비슷한 ‘바우처(상품권) 방식’으로 이뤄지는 국가 사회복지서비스는 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우처 방식에서는 국가가 이용자를 선정해 바우처를 지급하면 이용자는 민간 기관에서 바우처와 서비스를 교환하고, 국가는 다시 기관에 책정된 수가를 요양보호사들에게 시간 단위로 지급한다. 바우처 방식은 이용자는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는 노동자의 시급제 호출형 노동을 야기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제 대신 일당제 혹은 월급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용자 개인 사정으로 근무가 끊기더라도 일을 지속해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지영 변호사는 “애초에 제도를 설계할 때 이용자의 편의, 서비스 질 개선에만 주목했지 종사자들의 인권이나 노동 조건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요양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 정부는 민간 시장을 개방해 기관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심화되는 경쟁 속에서 희생을 떠안는 쪽은 오히려 요양보호사들이 됐다.
윤혜연 협회장은 “결국 복지는 비영리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리 기관이 복지를 담당한다면 이익을 추구하느라 이용자에게 돌아가야 할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미현 선전부장 역시 “사람의 생명을 돌보는 일이고 공공 기금으로 운영되는 사업인데, 영리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불가피하게 영리 기관에 개방한다고 하더라도, 수가 개선과 철저한 근로감독이 필요하다. 임금 가이드라인을 정해 임금체계를 대폭 손볼 필요도 있다. 윤혜연 협회장은 “실제적으로 이 일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이며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임금 인상의 목소리를 높였다.
요양 서비스 시장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장보현 사무국장은 “요양기관 난립으로 경쟁이 심화됐다. 이미 열린 시장을 다시 막을 순 없지만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기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혜연 협회장은 “일본의 경우는 케어매니저제도가 있어서 요양보호사가 해야 하는 일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중재한다. 이런 제도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며 요양 서비스 관리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다행히 지난 6월 관련 단체의 노력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일부 개정됐다. 수가에서 일정 부분을 보호사의 임금으로 지급하고, 요양기관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등 몇 가지 요구사항이 반영됐다. 그럼에도 김미현 선전부장은 “시급제 노동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며 “내년 시행을 앞둔 시행령과 세부 조항들이 결정되지 않은 만큼 시민의 지속적인 감시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시행하는 사회보험제도’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가입자가 되고, 법률상 가입이 강제돼 있다. 재원은 보험료를 기본으로 하고 국고 지원과 본인부담금이 더해져 조성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도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