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담회 일시: 2015년 8월 7일
좌담회 참가자: 김경회(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김민지(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김해니(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남기완(인문대학 미학과), 이동현(자유전공학부), 임찬우(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질문 1. 수강했던 수업 중 만족스러웠던 수업과 불만족스러웠던 수업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동현교수가 수업준비를 많이 해 온 경우 만족스러웠다. 교수가 학생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과제물은 꼭 피드백을 해주던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반면 강의 자료만 읽다 끝나는 수업, 과제에 대한 피드백이 없고 성적 문의를 해도 답이 없었던 수업은 불만족스러웠다.
기완결국 강의력의 문제다. 개인적으로 강상진 교수의 ‘서양중세철학’, 전예완 교수의 ‘무용미학’, 노경덕 교수의 ‘유토피아의 역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 세 수업은 공통적으로 교수의 강의력이 좋았고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적절하게 설정했다. 한편 고등학교처럼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수업이 대체로 불만족스러웠다.
경회전공 중에선 연관성이 높은 지식을 함께 배우고 최근 저널에 소개되는 논문을 공부했던 수업이 좋았다. 교양은 배영수 교수의 ‘현대서양의 형성’이 인상 깊었다. 인문학, 경제학 서적을 읽고 저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라는 과제를 주로 내줬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어서 유익했다. 모두 교수가 열정적이었고 학생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수업이었다.
민지이과에서는 수강생의 지적 수준을 너무 높게 설정하는 수업이 많다. 그런 경우 소수의 학생만 수업을 따라간다. 교수 역시 나머지 학생에게는 관심이 없다. 반면 좋은 수업은 교수가 열정적이고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다. 학생의 이해도가 부족한 것 같으면 조교를 통해서라도 보강이 이뤄진다. 그런데 교수가 열정적인 나머지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학과 전필 중 천문학 강의가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도인 교수가 빅뱅이론이 틀렸다며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전공인데도 우주론을 모른다.
찬우 경제학부 전필 중 ‘경제사’라는 수업이 있다. 그런데 교수의 목소리가 작아서 세 번째 줄만 넘어가도 안 들린다. 실제로 앞에 앉은 몇 명 외에는 수업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선배들이 필기한 것을 보며 자습해서 시험을 보곤 한다. 하지만 전필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수강한다.
해니 교수가 말을 제대로 끊지 않고 한 문장으로 길게 독백하는 수업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수강생의 지적 수준을 너무 높게 설정한 수업도 힘들었다. 강의계획서에 강의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좋겠다.
질문 2. 교육 과정은 수준에 맞게 체계적으로 구성됐나?
2-1. 커리큘럼의 체계
찬우 원론 수업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주면 좋겠다. 교수는 이미 경제학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겠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 파악하기 어렵더라. 이해완 교수의 ‘미학원론’ 같은 경우 미학이 어떤 학문이고 무엇을 배울 것인지 수업 초반에 알려줘서 학문을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굉장히 도움이 됐다.
기완 사실 이해완 교수의 ‘미학원론’은 예외적인 경우다. 미학과는 1학년 전공과 4학년 전공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생각해 보면 첫 전공을 들을 때 제일 어렵고 힘들었다. 지금은 전공이 대체로 평이하게 느껴진다. 물론 인문학의 특성상 개론, 원론, 학사(學史) 외에는 체계적인 구분이 힘들 것 같긴 하다.
동현 이과는 전공마다 표준화된 교과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인문대는 교수에 따라 수업의 체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서양사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3, 4학년 전공이 교양처럼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커리큘럼이 체계적이지 않다 보니 교수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이다.
2-2. 졸업이수 규정
기완 졸업 요건이 까다롭다. 특히 인문대가 그렇다. 졸업 요건을 충족하느라 듣고 싶은 강의를 못 들을 때가 많았다.
민지 사범대는 교직 이수가 제일 문제다. 특히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면 15주의 수업 중 5주를 빠지게 된다. 그런데 출석 인정을 안 해주는 교수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교직 이수를 교생 나가는 학기에 몰아서 한다. 사실 사범대생 중에서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이 별로 없는데 그런 쪽에서 학교가 유연성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동현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외국어를 많이 들어야 해서 이공계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힘들어한다. 또한 인문대, 사회대는 전공진입 전에 수강한 전공이 인정되는데 자유전공학부는 선택한 전공 가운데 9학점까지만 인정이 된다. 전공진입 이후 4학기 이상 재학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도 있다. 그래서 전공을 늦게 선택해 5학년, 6학년까지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적인 통로가 없다. 학생이 주체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 단순히 건의에서 그칠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데 교직원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
질문 3. 서울대학교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기완 많은 대학들이 직무능력 위주로 실용적인 교육을 할 것인지, 학문을 발전시키고 학자를 양성할 것인지 고민한다. 둘 중 어느 하나만이 대학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대의 경우 굳이 방점을 찍는다면 학문이 돼야 한다. 요즘 인문학 열풍이 분다고 하는데 인문학을 효용과 연관 짓는 행위는 인문학의 본질이 아니다. 서울대는 이런 시류에서 비교적 잘 버틴다고 생각하지만 학문에 대한 지원이 활발하다고 보진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학교 측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현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되는 부분이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민지 예전에 행정실 직원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법인화도 됐는데 사범대가 필요한가? 수익 안 되는 건 없애야지”라고 하더라. 그게 요즘 사회가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해니 학문을 발전시키고 직무능력을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울대학교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힘쓰는 인재를 만드는 게 교육의 목표가 아닐까. 윤리의식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윤리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지 않나. 기초적인 것부터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 “교육에 통일성과 유기성이 지켜졌으면 한다. 필수로 지정된 과목은 교수학습센터나 기초교육원에서 강사를 대상으로 통일성 있는 지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질문 4. 서울대학교의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한가? 서울대학교의 교육을 통해 본인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찬우 저학년 때 들은 강의 외에는 대체로 만족도가 낮다. 지난 학기 어떤 수업은 교수가 열정도 없는데다가 전달력도 좋지 않았다. 강의 자료를 늦게 올려줘서 예습도 못 했다. 사람들이 뒤에 앉아서 다 자기 할 일을 하더라. 수업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혼자 텍스트를 읽고 학습하는 능력, 혹은 어떤 교수가 와도 배울 걸 찾아가는 능력이다.(웃음)
해니 혼자서 학습하는 능력을 배웠다는 말에 동감한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기완 듣고 싶은 강의 위주로 들어서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다.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는 수업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는 재밌어서 공부한 적은 없는데 대학에 온 뒤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들으면서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뛰어나서 자극도 많이 받았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경회 전공은 만족도가 낮다. 오히려 교양 중에서 글 쓰고 비평하는 방식을 배운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일방적으로 전달받은 지식은 대부분 잊어버렸다.
민지 강의 전달력이 좋은 교수의 수업 위주로 수강해서 만족도가 높다. 교수진의 역량이 뛰어난 게 서울대의 장점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학문적 성장만이 아니라 시야와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다른 장점은 똑똑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점이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학생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나는 참 작은 존재고 세상은 넓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현 전달력이 좋지 않은 교수의 강의를 많이 들어서 만족도가 낮다. 오히려 내가 정말 성장을 한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다만 주변에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 교수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 “교수에게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방법론을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 교수에게 교육자로서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질문 5. 서울대학교의 교육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
기완 얼마 전 수강신청 사태만 봐도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했지만 바뀔 것 같지 않다. 학생과 학교 간의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수강신청 문제뿐만 아니라 수업의 질, 방식에 대한 불만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지 않나. 하지만 학교가 타성에 젖어 학생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 같다.
동현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적인 통로가 없다. 학생이 주체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 단순히 건의에서 그칠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하는데 교직원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
찬우 교육에 통일성과 유기성이 지켜졌으면 한다. ‘대학국어’(현재 글쓰기의 기초)는 어떤 교수의 강의냐에 따라 배우는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내 경우에는 주석을 달고 인용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하고 한 학기 내내 묘사하는 글만 썼다. ‘대학국어’처럼 필수로 지정된 과목은 교수학습센터나 기초교육원에서 강사를 대상으로 통일성 있는 지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전공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통계학’의 경우 어떤 교수는 수식을 하나도 안 쓰고 가르치지만 다른 교수는 높은 수준의 수학 실력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이후 수업에서도 계속해서 차이가 나서 전공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민지 융통성과 유연성이 있으면 좋겠다. 학생마다 가치관과 목적, 진로가 전부 다르다.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
경회 교수에게 학생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심어주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수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방법론을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 교수에게 교육자로서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과학적·비판적 사고를 하는 방법, 논문을 읽고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가 많아지면 좋겠다. 이과생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학과 차원에서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학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교수와 학생 간의 소통을 위해선 학과 차원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기완토론식 수업이 많아지면 좋겠다. 인문학은 이론적 배경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견을 나누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물론 토론식 수업이라고 다 잘 되는 건 아니다. 학생들의 기본 소양이 부족하고 교수의 열정이 부족하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만도 못하다.
동현 독일의 대학에서는 세미나와 강의가 분리됐다고 한다. 강의는 출석 점수도 없고 학점도 매기지 않는다. 세미나는 발제와 토론, 논문으로 학점을 받는다고 한다. 이 제도가 부분적으로라도 도입되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강의에 학생이 모이는 건 전적으로 교수의 능력에 달리게 된다. 우리의 경우 전필이라면 교수의 강의력이 좋지 못해도 무조건 들어야 하지 않나. 이걸 의무에서 해방시키고 대신 졸업할 때 시험을 보게 한다면 교수가 제대로 안 가르칠 때 학생이 수업을 듣겠나. 또한 강의로 기초지식을 쌓은 뒤 세미나를 듣게 되면 토론도 밀도 있게 진행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교육체제를 바꾸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