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데 영향을 미치는 책은 물론 단 한 권일 수가 없다. 탕아를 성자로 변신하게 할 만큼 강렬한 개안과 각성을 일거에 가능하게 하는 그런 한 권의 책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웃 사람의 이야기에 밤을 새워 울 수도 있고, 신문이나 잡지기사 같은 시사성 읽을거리에서도 커다란 삶의 지침을 얻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읽을거리에서 조금씩 가르침을 얻어갈 것이다. 더욱이 인생의 가르침이란 것은 사회적으로 이미 공인된 어떤 권위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이성적 판단의 주체로서 자기가 스스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가장 위대한 책은 이 세상 전체, 그리고 삶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근본적 관점과는 별개로, 살면서 몇 번이고 다시 들추어 보게 되고 볼 때마다 그 의미에 대해 여러 생각들을 곱씹으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책들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세월의 오랜 담금질 속에서 그 진가가 입증된 고전들이 특히 그렇다. 나에게는 그런 책 중의 하나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이다. 안티고네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초년생 시절 연극 포스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시골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와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신기한 시선으로 접하던 시절, 거리를 지나던 내 눈에 띈 그 포스터에는 “안티고네”라는 제목과 함께 한 젊은 여인(주인공)의 단호하고 비장하면서도 슬픔을 가득담은 옆모습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었고 사진 위쪽으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라는 글귀가 두 줄로 가지런히 씌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으로 알고 있는데, 저 연극과 저 여인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나는 곧 도서관에서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후 안티고네라는 이름은 나에게 오랫동안 화두처럼 되었다. 군사 정권 아래서 하루하루가 힘들던 젊은 시절 프랑스의 여성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인 시몬느 베이유의 책에서 “안티고네”에 대한 글을 보고는 마치 정신적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에 빠졌었다. 안티고네의 흡인력은 어디에 있는가? 소포클레스의 는 인간영혼의 존엄성과 국가이성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정치사상, 윤리사상에 근본적인 문제를 던진다.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와 비극 전체를 통해 가장 비극적인 인물인 오이디푸스가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낳은 네 자녀(두 아들, 두 딸) 가운데 큰 딸이다. 같은 작가의 은 근친상간과 부친살해의 진실이 밝혀진 후 오이디푸스가 벌로서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데서 막을 내린다. 그 후 그는 테바이의 왕위에서 쫓겨나 곤고한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역시 같은 작가가 쓴 에서 안티고네는 장님 아버지(겸 오빠) 오이디푸스의 손을 이끌고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날까지 고난에 찬 방랑의 세월을 함께 보내 준다. 왕녀 신분임에도 궁정에 머무르지 않고 ‘나이가 차도록 시집도 가지 않은 채, 동냥음식으로 장님 아버지를 돌보아’ 주는 효녀로서, 이 때 이미 안티고네의 정신은 세상의 온갖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만 하더라도 안티고네는 남성 가족구성원을 위해 자기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는 소녀가장, 곧 심청이었으며, 전형적인 가족 가치의 수호자였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다른 힘 혹은 강자와의 대립이나 투쟁은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영웅적인 그의 성격은 부친의 사망 후 테바이 왕가로 돌아온 다음에 드러난다. 그의 남자 형제 폴뤼네이케스는 동생인 에테오클레스에게 빼앗긴 왕위를 되찾기 위해 망명지에서 군대를 일으켜 테바이를 공격하다가 성을 방어하던 동생과 맞붙게 되어 서로 창을 겨누고, 결국 둘은 함께 전사한다. 그런데 테바이의 새 국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전사자로서 영예로운 장례의식을 베풀어주었지만, ‘조국의 배신자’ 폴뤼네이케스에게는 매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매장을 시도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겠다는 엄명을 내린 것이다. 죽은 사람이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곧 저승인 하데스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장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던 것이 당시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었는데, 크레온이 폴뤼네이케스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은 것은 도시국가의 안전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말도록 일벌백계로써 시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새로운 통치자로서 엄명을 통해 국가기강을 잡고 크레온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오빠 폴뤼네이케스의 주검이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안티고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에 항거한다. 금지령을 내린 크레온은 외삼촌이자, 자기 약혼자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안티고네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국가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티고네에게는 망자의 인격적 존엄성이 시민의 공적 의무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안티고네는 폴뤼네이케스의 영혼에 안식을 주기 위해, 통치자가 선포한 국법을 어기고 매장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발각되고 안티고네는 그 벌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안티고네가 파워 엘리트의 일원으로서 크레온에게 대들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권력 주변의 인물이라고 해서 현실 권력을 위해 크레온에 대항한 것은 아니다. 안티고네는 여성 통치자를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어차피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고, 따라서 크레온과 권력싸움을 벌일 처지가 아니었다. 또 다른 해석 경향 가운데 한 가지는 를 국가 대 혈족 전통의 대립에 관한 작품으로 보고 크레온을 전자의 옹호자로, 그리고 안티고네를 후자의 수호자로서 보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혈족을 유지하는 역할은 여성에게 있었으며, 따라서 안티고네가 오빠의 주검을 수습하는 것은 에서처럼 혈족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티고네가 오빠의 주검을 묻고자 시도한 것은 혈족윤리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그가 국가에 맞서 싸운 것은 그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었다. 에서 사려깊고 이해심 있는 국왕 측근으로 등장하였던 크레온은 에서는 철저한 국가주의자로 등장한다. 안티고네의 결단은 인간 삶의 구석구석까지 관장하고 영혼의 영역까지 지배하려 드는 국가 권력의 전횡에 맞서 인간의 천부적 권리(이 작품에서는 신들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로 나온다)를 지키고자 하는, 보다 근본적인 실천윤리의 표명인 것이다. 폴뤼네이케스는 국가에 대해 배반자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장례는 영혼이 지하세계에 이르는 데 필요한 상징적 의례만으로도 충분하다. 안티고네가 베풀어주고자 한 의식도 흙 몇 줌을 그의 주검위에 뿌리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반면, 국가에 대한 충성이 보답 받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데는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주는 것으로 족하다. 국가의 경계가 인간이 나눈 것이고 산 인간들 사이의 현실적 이해관계의 반영에 불과하다면, 이 경계가 미치지 않고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하며 인간이 다른 인간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 영역, 개개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엄하고 신성한 영역은 국가권력이 건드릴 필요가 전혀 없다. 죽은 폴뤼네이케스의 매장금지 명령은 시민적 결속을 위한 것인데, 국가에 대한 충성은 공포원리로써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공익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시민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통치자가 공포정책으로써 충성심을 강요하려 드는 것은 권력욕의 과시이고 오만의 소치이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을 향해 말하고자 한 것은 그것이었다. 안티고네는 국가권력을 장악하려 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를 꾸짖고 그의 권력 과용을 경고하는 기능, 곧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담당하려 하였다. 이는 당시 여성들에게 결코 자명한 임무가 아니었다. 오빠를 매장하자는 안티고네의 권유를 자매인 이스메네는 거부한다.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에게는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딸이었다. 그러나 통치자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에는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메네는 말한다.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맞서 싸우게 태어나지 않았어. 그리고 우리는 더 강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일들뿐 아니라 더 쓰라린 일에서도 복종해야 해.’ 그는 나아가 자기는 ‘국가에 대항해 싸울 힘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데 동참하지 않고 통치자에 맞서 싸운다. 그 싸움은 폭력과 증오의 싸움이 아니라 사랑과 윤리적 의무를 위한 싸움이었다. 매장시도가 발각된 후 자신을 힐난하는 크레온 앞에서 안티고네는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라고 항변한다. 남성들이 자기가 지배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대립하고 미워하고 폭력을 쓰고 죽이는 동안 안티고네는 증오와 대립의 원칙 자체를 넘어서자고 호소하였다. 반면 크레온은 인간집단을 구분하고 대립시키는 방식에 집착하였다. 그는 애초에는 국가 질서의 유지를 위해 칙령을 내렸다. 사실 크레온의 칙령은 일벌백계의 효과를 노리는 동서고금의 통치자들이면 누구나 쉽게 써먹던 수법이었다.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크레온은 그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과격한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의 불행이 있다면, 안티고네처럼 강력한 비판자가 저항을 했을 때 정황을 고려하고 자기를 성찰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와 정면으로 대립하고부터는 안티고네에 대한 미움, 통치자로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오기에서 행동하고 결정하였다. 크레온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여인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단언하였지만, 결국 안티고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가로 그에게는 아들과 부인의 자살이라는 응징이 내려지게 된다. 그는 여인에게 지배당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인에게 져 버렸다. 안티고네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영혼은 국가에 맞먹는 무게, 아니 국가보다 더 큰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살짝 덧붙이는 글: 나는 소포클레스 원작의 를 무대에서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대학시절 장 아누이의 개작인 “앙티곤느”를 연극으로 보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문제를 다룬 연극 “아일랜드”에서 안티고네 이야기가 극중극으로 상연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영상물로는, 그리스 배우 이레네 파파스가 주인공 역을 맡은 영화 를 보았다. 대사가 그리스어이고 영어 자막이 나온다. 음영 짙은 이레네 파파스의 얼굴은 안티고네의 결단력 있고 강인한 성격을 잘 표현해 주는데, 대신 원작 속의 안티고네보다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