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부터 바다까지 플라스틱, 이대로 괜찮을까

플라스틱 없는 삶 살아보기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의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찾아볼 수 없게 된지 2달이 넘었다. 올 초, ‘자원순환과 재활용촉진에 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에 따른 변화다.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다가 들고 나갈 수 없게 됐다며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용객도 많았고, 직원들이 매일 해야 하는 설거지의 양은 몇 배로 증가했다. 양쪽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한 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단 하나,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플라스틱이 생태계와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한 시도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중에는 ‘플라스틱 프리’라는 슬로건 아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플라스틱의 과도한 사용이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 살펴보고, 그 유해성에 대해 시민사회 차원에서 어떤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짚었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아보기 위해 ‘플라스틱 프리 라이프’를 일주일간 직접 살아봤다.

몸에도, 환경에도 해로운 플라스틱

  플라스틱 규제가 급속히 강화된 데에는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금지조치가 결정적이었다. 세계 폐플라스틱의 절반 이상을 수입·재가공하며 청소부 역할을 해왔던 중국은 올해 1월, 자국의 환경오염을 이유로 폐플라스틱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한 해 3억 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갈 곳을 잃자 각국 정부는 일회용 컵, 빨대를 시작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국도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폐기물 발생량 20% 감축을 목표로 하는 자원순환기본계획을 올 9월 발표했다.

  플라스틱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십 년 사이의 일이다. 1933년, 현재 가장 많이 소비되는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이 발견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생산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플라스틱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가가 싸고 만들기 편리하다는 이점에 힘입어 꾸준히 늘어온 플라스틱 연간 사용량은 현재 발명 초기의 200배 수준이다. 활용 분야도 다양화돼 일회용 용기부터 건축자재까지 일상생활 속에서 플라스틱이 사용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을 기준으로 한 사람이 하루에 360g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다.

  플라스틱은 생산·제조되는 전 과정에서 유해 물질을 배출한다. 여성환경연대 조은지 활동가는 특히 플라스틱의 원료인 비스페놀A와 가소제 등의 유해성을 지적했다. 합성 고분자물질인 플라스틱의 제조에 필수적인 이러한 첨가물들이 피부에 맞닿거나 열에 노출될 때 신체에 유해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이들이 토양, 대기, 해양 등에 배출되는 경우에는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연세대 환경공학과 구자건 교수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으로 유입됐을 때 인간에 미치는 위해성을 강조했다. 난분해성 물질의 최종 정착지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류이기 때문에, 바다에 녹아 들어간 플라스틱은 결국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설명이다.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에 부유하면서 플랑크톤, 어패류, 조류, 파충류, 포유류에게까지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최근 연구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환경연대 김현경 활동가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매립·소각되는 과정도 환경에 이롭지 않다. 그는 “매립되는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여분의 부스러기가 해양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고, 소각할 때에도 완전 연소가 되지 않으면 다이옥신과 같은 발암물질이 배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플라스틱은 매립되고 난 후 분해되기까지 500년의 세월이 필요하므로 토양에 치명적이다.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시민사회에서 맨 처음 이뤄졌다. 올 3월, 영국에서는 최초의 플라스틱 반대 캠페인인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이 시작됐다. 플라스틱 어택은 유통업체가 일회용품을 남용하는 실태를 개선하고자 과대 포장된 플라스틱과 비닐을 분리해 해당 매장에 버리고 오는 방식의 운동이다.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이 캠페인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 등으로 가지를 뻗쳤다.

시작부터 험난했던 플라스틱 프리

  플라스틱 없는 삶을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과연 일상생활이 가능할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이나 평소에 입는 옷 등에도 모두 플라스틱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생활에 필수적인 물건들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당장 대체품을 찾을 수도 없었기에 기자는 이전에 플라스틱 프리 라이프를 실천해본 사람들의 경험을 참고해 두 가지의 원칙을 정했다. 첫째, 기존에 사용하던 플라스틱 제품은 그대로 사용하되 다 썼을 시에는 대체품을 찾을 것. 둘째, 플라스틱이 포함된 제품을 새로 구매하지는 않을 것. 어쩔 수 없는 타협의 과정 속, 일상에서 플라스틱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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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제로 라이프를 시도하기 이전, 하루 동안 구매한 플라스틱 제품들

  기존에 쓰던 플라스틱 제품은 다 쓸 때까지 사용하기로 한 원칙이 있었기에 생활하는 데에 큰 지장이 생기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일회용 컵 정도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던 안일한 생각은 이틀 만에 깨졌다. 학생식당이 열려있는 시간에 수업이 있어 따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편의점이나 매점에서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이 되지 않은 음식을 찾을 수 없었고, 카페에서도 음식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나왔으며 일회용 숟가락을 사용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끼니를 건너뛰면서,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하고 있는 건지 다이어트를 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플라스틱 없는 소비, 가능할까 

  플라스틱 없는 일주일을 시도하기 전에 작성한 주의 물품표에는 플라스틱 용기, 비닐, 볼펜, 노트북, 냉장고 등과 같이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플라스틱 프리 라이프를 시작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워 성분을 검색하고 사려던 물건을 내려놓는 일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 일일이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자 합성섬유나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제품들을 조사했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폴리에틸렌 같은 합성섬유부터 테이프, 스티커, 스크럽제 등 포장에 플라스틱 포함 여부가 기재되지 않은 물건들까지 ‘플라스틱 프리’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제품의 영역은 너무나도 광범위했다. 전부 제외한다면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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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날수록 볼펜의 잉크가 떨어져 필기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고 싶었던 화장품이 세일하는데도 집어 들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갔다. 사야 할 것들이 쌓여가면서 무작정 물건 구매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그때부터 대체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규제가 강화된 만큼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나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생분해 플라스틱, 바이오 플라스틱 등을 활용한 생분해가 가능한 티백이나 비닐봉지 등이 대표적이다. 종이 빨대 도입 방침을 발표한 스타벅스를 비롯해 플라스틱 절감을 선언한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조은지 활동가는 플라스틱의 대체품을 찾는 기자에게 목재, 면, 금속, 종이 등 이전까지 인류가 사용해왔던 소재의 물품을 사용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생분해 플라스틱 등의 신소재는 아직 개발 단계에 있고 환경 친화성도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이 빨대나 대나무 칫솔, 삼베 수세미, 면 생리대 등이 출시돼 있었지만 파일이나 볼펜 등 당장 필요했던 물건들의 대체품은 찾을 수 없었다. 상용화된 대체품들마저도 쉽게 구하기 어려웠는데, 다회용 빨대를 찾아냈더니 비닐로 포장돼 판매 중이기도 했다. 일반 마트나 편의점에서의 구입은 포기하고 멀리 있는 특수한 매장을 찾아가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해야 했다. 그나마 온라인 주문이 접근성을 높여줬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상품은 비닐이나 뽁뽁이로 싸여 주문 목록과 배송정보가 적힌 스티커가 부착된 상자에 테이프로 밀봉돼 온다. 비닐, 뽁뽁이, 스티커, 그리고 테이프는 모두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기 위해 대체재를 구입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 대체재가 플라스틱 포장재에 담겨 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기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했던 책은 깨질 위험이 없는 제품인데도 뽁뽁이에 싸여 주문 목록이 적힌 스티커와 함께 배송됐다. 소비자와 생산자 외에 유통업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우유, 과일, 라면, 과자 등의 식료품도 플라스틱 없이 구매하기 어려웠다. 특히 과자나 초콜릿 등 디저트류는 모든 제품이 예외 없이 플라스틱으로 포장돼 있었다. 종이 포장으로는 바삭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포장 소재를 바꾸기가 어렵고, 관련 규제도 없기 때문이다. 밥을 챙겨 먹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아 초콜릿과 과자를 주식으로 삼던 기자에겐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친구들이 일주일이 지나면 먹으라며 보내준 기프티콘을 보면서도 플라스틱 소비를 미루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대형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수십 가지 물품 중에 살 수 있는 것은 달걀뿐이었고, 심지어 카페에서 파는 케이크 한 조각에도 형태 유지를 이유로 플라스틱이 이용되고 있었다. 위생을 위해 건강에 유해한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개인과 기업,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끼니를 식당에서 해결하면서도 나 한 명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기자의 일주일은 어떻게든 지나갔지만, 어디로 눈을 돌려도 플라스틱이 사용되지 않은 물건을 찾기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 진정한 플라스틱 프리 라이프가 실현 가능한가 하는 고민은 깊어졌다. 대체할 수 있는 물품도 드물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접근성이 낮아 일상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따랐다. 외국에서는 플라스틱 없이 장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비교적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접근성도 매우 떨어졌다. 전국에 하나뿐인 플라스틱 프리 매장이 다행히 서울에 있었지만, 그마저도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 매장의 휴일과 겹쳐 방문하기 어려웠다.

  중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폐기물 대란이 터지기 이전부터 서서히 대응을 준비하고 있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형국이다. 때문에 대안의 범위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사용억제정책의 수준과 구체성도 미흡하다. 올 1월부로 시행된 자원순환기본법(자원순환법)에는 폐기물 처분 (소각·매립) 부담금 및 유해성 및 순환이용성 평가, 자원순환성과관리제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그러나 조은지 활동가는 이에 대해 여전히 상세한 시행 방안과 규제가 부족하고, 권고 및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택배 배달 포장재의 경우 어떤 업체를 대상으로 얼마만큼 규제할지, 어떤 대안포장재를 이용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김현경 활동가 또한 종이컵과 빨대 등 세세한 품목들이 기재돼있지 않아 규제의 사각지대가 많다고 비판했다. 김 활동가는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가 변화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사용처가 생기는 플라스틱의 특성을 고려해 사용 용도나 일회성 등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측은 우선 모든 물건을 대체하기보다 비교적 대안이 잘 구비돼있고 가장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일회용품을 줄여나가자고 주장한다. 카페에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이용하고, 장을 볼 땐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드는 일은 개인의 층위에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현재의 플라스틱 소비량을 비약적으로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플라스틱으로부터 정말로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부의 규제와 대체재를 마련하려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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