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우리 가슴에 살아 -최우혁 열사를 기억하며

* 영상 내에 최우혁 열사의 유골이 드러난 장면이 포함돼있습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울대저널TV 연작 다큐멘터리 : 민주화의 길을 걷다]

그대 우리 가슴에 살아

– 최우혁 열사를 기억하며

 

[내레이션]

2014년 8월 30일. 최봉규 씨는 조금 특별한 이사를 치렀다. 1987년 군대에서 죽은 아들 최우혁을 27년 만에 새집으로 옮기는 날. 이 자리엔 유가족과 기념사업회 관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최우혁 열사의 이삿길을 함께했다.

 

[내레이션]

최우혁 열사는 1984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하던 1984년은 학생 민주화 운동의 불꽃이 치열하게 타오르던 때였다. 교정은 최루탄 연기와 사복 경찰들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최우혁 열사도 경제법학회 선배, 동기들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뛰어들게 된다.

 

[내레이션]

하지만 학생 민주화 운동의 길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길이었다.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학생 민주화 운동의 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최우혁 열사의 가족들은 걱정했고, 그는 모친의 간곡한 권유에 1984년 육군에 입대하게 된다.

 

[김능구/서양사학과 81학번]

그 때 내가 (군대에) 안 가게 말렸어야 되는 거 아닌가. 저는 뭐 부모님도 가라고 하고 하니까 3년 갔다 와서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학생) 운동할 수 있다고 저는 오히려 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자

[김치하/최우혁열사기념사업회 회장]

군 내에서 우혁이가 실질적으로 운동권 학생이었고 그 당시에는 ‘녹화사업’이라고 해서 학생이었다가 군대에 간 사람들을 어떤 ‘정보원’으로 활용을 하기도 했었어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책들을 보는 것을 용공서적을 본다고 해서 상당히 위해도 가하고, 보안대에 끌려가서 조사도 받고 아마 심하게 어떤 대우도 받았을 거예요.

 

[내레이션]

결국 최우혁 열사는 1987년 9월 병영 내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당시 군 당국은 최우혁 열사의 죽음을 단순한 개인적 고민에 의한 분신자살이라 발표하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 하지만 불에 탄 시신이 몸부림 친 흔적 없이 꼿꼿했다는 점, 군 당국의 사인 발표가 번복되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그의 죽음을 둘러 싼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그가 분신한 이후, 군 입대를 권했던 열사의 어머니는 죄책감에 고통 받다가 1991년 겨울, 한강에 투신해 사망한다.

 

[내레이션]

무덤을 파내자 빛바랜 군복이 나타났다.

군복을 벗겨내자 지하에 잠들어있던 최우혁 열사의 유골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꼭 27년 만이다.

 

[내레이션]

새 관에 담겨진 유골은 이장지인 마석 모란공원으로 옮겨졌다. 먼저 앞세운 아들을 삼십여 년 만에 마주하고, 또 다시 땅에 묻어야 하는 아버지. 덧씌워진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고 최우혁 열사의 아버지 최봉규 씨는 이장을 진행하는 내내 담담해보였다.

 

[내레이션]

최우혁 열사가 이장된 모란 공원에는 전태일 열사, 박종철 열사를 비롯한 민주 열사들이 잠들어있다.

 

[김치하/최우혁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참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27년이라는 세월이. 오늘 개장을 하고 보니까 백골이 육탈이 다 되셔서 이렇게 뼈만 남으셨는데, 여전히 그 퍼런 군복을 그대로 입고 계셨습니다. 27년 동안 안타깝게 돌아가신 그 군인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내레이션]

이장을 겸한 추모식에는 최우혁 열사를 기억하는 이들 여럿이 참가했다. 대학 동기로 처음 만나 민주 열사로 다시 마주한 최우혁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레이션]

최우혁, 그의 또렷한 눈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눈이다. 언제나 당당한 그의 얼굴은, 진리를 가슴에 품었던 우리 모두의 젊은 시절이다.

 

[최재인/서양사학과 84학번]

우리 가슴에 살아

어두웠던 시절 우리들은 새벽하늘 닮은 희망을 품었다.

강제로 입혀진 퍼런 군복도, 시퍼런 죄수복도, 다만 우리들의 푸르디 푸른 희망을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바람찬 거리를 우리들은 뜨거운 맨 가슴으로 달렸다. 뻘겋게 덧칠된 취조실도, 시뻘건 명찰도, 그저 우리들의 붉디 붉은 열정을 상징할 뿐이었다. 그 때 너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거짓으로 살지 않겠다고, 바로 잡겠다고, 온 몸으로 부딪혔고 남김없이 불살랐다.

 

[내레이션]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다간 민주 열사 최우혁. 2014년 최우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PD/이다경 (celeste92@snu.ac.kr)

글·내레이션/원종진 (jjwon26@snu.ac.kr)

지면 취재/곽성원 (giantsnu@snu.ac.kr)

 

제작/서울대저널

www.snuj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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