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이란 무엇인가

 인식론은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과 더불어 철학의 네 가지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다. 철학이란 확실성을 추구하는 학문이기에 초기에서부터 지식을 화두로 삼는 인식론은 철학의 중요한 줄기를 이루게 된다. 고대 그리스철학의 대화편을 보면, 철학자의 주장은 다른 철학자에 의하여 도전을 받게 되고, 결국 이 도전은 당신이 그것을 아는가에 대한 도전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도대체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확실성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생각도 철학자들로 하여금 지식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정체성, 즉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특성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왔다. 동물들이 적자생존의 방식으로 행동하게끔 자연에 의하여 프로그램되어 있는 존재인 반면, 인간은 자연의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이성적 존재로 생각되었다. 세계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근거로 행위의 결과를 예측하고, 그에 의하여 행위를 결정하는 능력이 인간을 이성적이게 하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이성과 지식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인식론이 철학의 시작부터 중요한 분야이기는 하였지만, 인식론이 철학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근세에 들어오면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세에서 근세로의 이행은 기본적으로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개인주의적 사회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서양사상의 원류인 그리스 철학을 중세의 종교적 해석을 넘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상에 있어서의 개인주의의 흐름이며, 종교개혁은 교황청을 위시로 한 사제를 통하지 않고 개인의 차원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길을 터준 종교에 있어서의 개인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종교의 족쇄를 넘어 세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토양을 형성하게 되어 자연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수많은 자연과학자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이들에게 이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우리 인간이 자연세계의 진리를 파악해가는 데에 우리는 때로 감각 경험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수학적 진리를 파악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경험과는 전혀 다른 이성이라는 능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제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개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의하여 구성해 나아가고자 할 때 경험과 이성 중에서 어떤 능력을 우선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갈 것인가? 기본적으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성향이 강한 영국인들은 경험에 방점을 두어 경험론의 흐름을 만들고, 반면 상대적으로 사변적이고 관념론적인 성향이 강한 유럽 대륙의 철학자들은 이성을 강조하며 이성론 또는 합리론의 흐름을 구성하게 된다. 이후 거의 200년에 걸쳐 서양철학은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탐구, 즉 인식론이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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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 걸까? ⓒ123RF

 

현대인식론, 전통적인 주제를 넘어 

 

 이런 역사를 거쳐 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은 인식론은 지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우리는 과연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갖는다면 얼마나 가질 수 있는가라는 전통적인 주제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주제들로 관심사를 넓혀나가고 있다. 현대인식론의 주제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필자가 요새 관심을 갖고 있는 두가지 문제를 소개하기로 하자. 첫째는 한 사람이 한 사실에 관하여 갖고 있는 증거가 변화가 없음에도 그 사실을 아는지의 여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내가 지금 내 손에 대한 생생한 감각경험을 갖고 있을 경우에 나는 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일상적인 경우에 우리는 당연히 내가 손을 갖고 있음을 안다고 할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누군가가 당신은 실제로는 육체를 갖고 있지 않은데 매트리스의 세계에서처럼 수퍼컴퓨터에 의하여 조작되어 손을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뿐이라고 한다면,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 사람의 이야기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이런 의심이 떠오르게 되고, 그 의심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과연 내가 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어떤 의심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지식의 지위가 변화될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생각은 한 명제에 대한 판단이 지식이 될 수 있는가가 확정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전통적 견해에 도전을 야기하며 흥미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논란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어떻게 고려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나와 같은 증거를 갖고 있으며 나와 동등한 추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명제에 대하여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나는 항상 나의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여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그런 반대 주장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얼핏 보면, 당연히 기존의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나와 상대방 중에 누가 틀렸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일진데, 그것을 알면서도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이 입장은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모든 종교적 신념, 정치적 견해, 철학적 입장은 모두 불합리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이견이 팽배하여, 언제든 나만큼 똑똑한 다른 사람이 반대 의견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판단을 보류하여야 한다면, 이들 영역에서는 합리적 판단이 있을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지나친 결론처럼 보인다. 의견불일치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을 어떻게 수정하는 것이 합리적인가의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은 것으로 또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기현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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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University of Arizona에서 인식론의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University of Oklahoma와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현혹되어, 지식을 탐구하는 인식론, 심리현상의 본성을 탐구하는 심리철학, 그리고 과학과의 연관 하에 인간의 인지를 탐구하는 인지과학에 관심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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