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불편함이 아닌 불편한 일상

캠퍼스 내 장애학생의 하루를 들여다보다

*본 르포기사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조금 더 바쁜 아침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는 날이면 안소연 씨(국사 17)는 평소보다 고된 아침을 보내야 한다. 조금의 늦잠은 누군가에겐 흔한 일탈이지만 장애학생지원센터(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학생이동지원차량(이동지원차량)을 이용해 기숙사에서 등교하는 소연 씨에겐 30~40분의 지각으로 돌아온다. 기숙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83동에서 아침 강의가 있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약속된 시간에 (이동지원차량에) 못 타면 휠체어로 혼자 강의실까지 가야 해요.” 소연 씨가 정해진 시간에 탑승 장소에 나오지 않는 경우 이동지원차량 운영을 돕는 공익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제가 2~3분 정도 늦는 건 양해를 구하면 기다려주시는데, 저 다음에 타야 하는 다른 학생들이 걱정돼 먼저 가시라고 말씀드리는 경우도 많아요.” 학교에 이동지원차량이 한 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동지원차량을 사용하려면 매 학기 수강신청기간에 예상 시간표에 맞춰 센터에 서류를 보내고 시간을 조율해야 한다. “한 대의 차량을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다 보니 누군가는 수업시간보다 훨씬 일찍 타야 해요. 차를 타고 가는 날엔 보통 일찍 출발해서 수업시간 20~30분 전에 혼자 강의실에 도착해서 할 일 없이 앉아있곤 해요.(웃음)” 오늘은 다행히 제시간에 이동지원차량을 타서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소연 씨에게는 최근 늘어난 공유형 킥보드도 골칫거리다. 공유형 킥보드는 이동지원차량이 지나가야 하는 도로 곳곳에 무분별하게 주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유형 킥보드가 길을 막으면 운전자가 내려서 킥보드를 치워야 하는데 그동안 시간은 흘러만 간다.
 
소연 씨의 수업시간은 비장애인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앉아서 강의를 듣는 수업의 경우엔 이동과 학습을 돕는 장애학생도우미가 따로 필요하지 않아서다. 다만 학기 초엔 비장애학생들에 비해 더 긴장해야 한다. 교수자가 장애학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장애학생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하고 때로는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학기 초마다 제가 어떤 장애를 가진 학생이고 어떤 것을 신경 써주셨으면 하는지 등을 적어서 교수님들께 보내요. 제가 작성하고 센터에서 보내는 건데, 이 서류에 양식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입학 이후 제가 스스로 계속 발전시켜서 서류를 만들었어요.” 대학 생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잘 몰랐던 1학년 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가늠할 수 없어 뭘 적어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했다.

  학기 초가 지나면 많은 교수자들은 수업을 듣는 장애학생의 존재 자체를 쉽게 잊는다. “수강인원이 많아 시험을 볼 때 큰 강의실로 옮겨야 하는 대형강의의 경우 먼저 말하지 않으면 시험 보는 강의실을 변경할 때 보통 장애학생을 신경 쓰지 않아요.” 학교 밖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면 좀 더 고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얼마 전엔 덕수궁 미술관에서 수업이 있었는데, 기숙사에서 수업 장소까지 가는 길에 이미 녹초가 된 거예요. 수업은 재밌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졸았어요.(웃음)” 

각개전투의 연속인 일상 

  비장애인 구성원들을 대할 때 장애학생들은 차별적인 언행

들을 견뎌야 한다. 지팡이를 사용하면 보행이 가능한 지체장애인인 소연 씨는 보통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휠체어로 이동이 불편한 장소는 지팡이를 이용해 걸어서 이동한다. “평소에 강의실엔 휠체어를 안 가져가다가 어쩌다 팀플(조별활동)을 할 때 휠체어를 타고 가면 팀플을 같이 하는 분들로부터 ‘걸을 수 있는데 왜 휠체어를 타세요? 어디 다치셨어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어요.” 비장애인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지만 보행이 가능한 지체장애인 소연 씨는 계속해서 자신의 ‘특별한 상황’에 대해 설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수업이 끝나고, 소연 씨는 점심을 먹기 위해 학생회관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면 으레 그렇듯 메뉴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이동하기 힘든 소연 씨는 보통 함께 온 일행이나 식당 직원에게 대신 음식을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사람이 너무 많은 날엔 부탁하기가 망설여진다. “여러 번 가서 얼굴이 익은 직원분은 나서서 도와주세요. 그런데 이게 또 식당마다 편차가 있어서 부탁하면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달갑지 않아 하시기도 해요.” 소연 씨가 생활하는 기숙사의 식당 출입문은 자동문이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기 어렵다. 그나마 기숙사 식당엔 직원을 부를 수 있는 벨이 마련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아서 직접 가서 부탁해야 했다. 장애학생 전용석이 마련돼 있지 않은 식당에선 앉을 자리를 찾는 일마저 쉽지 않다. 

“제가 늘 아쉬운 건 일상에서 많은 불편을 겪는데 이걸 시스템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소연 씨는 작년까지는 매 학기 열리는 장애학생간담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학내 장애학생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요구사항을 반복해서 말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소연 씨는 장애학생간담회에서 시설 개선을 요구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당시 시설 담당 직원분이 제 얘길 듣고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같이 돌아보면서 고민해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함께 시설을 점검하러 가기로 했는데 그 직원분이 약속을 잊은 거예요. 결국 길에서 혼자 20분을 기다려야 했죠.” 소연 씨는 그간의 대학 생활을 ‘각개전투’라고 표현했다. “담론이 형성되고 공동체로서 대응할 수 있다면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라며 말을 흐린 소연 씨는 오늘도 혼자 말하고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꿈꾼다. 

장애인 배려 없는 화장실과 강의실

  지체장애를 가진 김혜준(생명과학 18) 씨는 주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다. 혜준 씨는 아주 짧은 거리만 걸어서 이동할 수있고, 팔에도 장애가 있어 크고 무거운 문을 여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동문이 아니면 건물 출입이 어려워 누군가 통행을 도와줘야만 한다. 보통 어머니가 동행하면서 혜준 씨의 학교생활을 돕는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필기를 도와주거나 이동 시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을 지원해주는 등 서비스를 제공해주지만, 이런 지원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난관이 혜준씨의 일상을 찾아오곤 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데, 문제는 장애인 화장실이 일반 화장실 안쪽에 위치한다는 거예요. 이럴 경우 부녀, 모자, 부부간 화장실 이용은 굉장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어요.” 배리어프리를 위해 생긴화장실이었지만, 실제 사용자의 생활과 맞닿지 않는 설계는 또 다른 장벽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학생회관 1층에 혜준 씨와 어머니가 사용하기 편한 ‘가족 화장실’이 처음으로 학교 안에 들어섰지만, 이 역시도 원활하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가족 화장실’이라는 이름때문인지 장애인과 그를 도와주는 비장애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만큼 화장실 관리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장애인 화장실이 아예 없거나, 건물 통틀어 한 층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있어도 물이 안 나오거나 청소용품이나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이용을 위한 공간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그럴 때마다 그는 여러 층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동할 때 혜준 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출입문이다. 자동문 없이 이중으로 돼있는 출입문들이 특히 그렇다. 휠체어가 진입하기 위해서는 앞문과 뒷문을 모두 열어 놔야 하는데 문이 열린 채로 고정되지 않아 양팔을 벌려 양쪽 문 모두를 붙잡고 있어야 휠체어가 겨우 통과할 수 있다. 그마저도 왼쪽이나 오른쪽 문이 잠겨있는 고정문이면 통과할 방법이 거의없다. 힘들게 강의실로 들어가더라도 혜준 씨에게는 착석이 또 다른 과제로 다가온다. 책상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장애학생 전용 책상이 구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자가 일체형으로 된 책상 역시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 이용하기어렵다. “이동이 힘들어서 휠체어를 계속 이용해야 하는 분들에게는 (책걸상이 일체형일 때) 굉장히 불편하죠. 저도 작년에 무릎을 다쳐서 무릎을 굽히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일체형 책상에 앉지 못했어요.” 혜준 씨는 단과대에서도 (장애학생 전용 책상을) 보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없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혜준 씨는 필기 속도가 느려 수업 시간엔 항상 대필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때때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한다. 보통 장애학생 지원 센터에서는 개강 전 장애학생의 어려움을 교수자에게 안내하는 ‘교수·학습 조정 안내문’을 발송하지만, 때때로 안내문을 읽고도 혜준 씨에게 별도로 진단서나 소견서를 요청하는 교수자도 있었다. “물론 많은 교수님들은 배려를 잘 해주세요. 다만 진단서나 소견서를 끊으려면 동네병원에선 힘들고, 보통 3차 진료기관에 예약하고 방문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평일 낮에 수업을 듣는 대학생으로서 일정을 잡기가 상당히 까다롭죠”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장애학생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수업 뒤 도착한 카페. 여느 학생처럼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마시는 것도 혜준 씨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키오스크가 즐비해진 요즘엔 더 그렇다. 비장애인이 서서 사용하는 높이에 맞춰 설계된 키오스크는 그가 앉아서 사용하기엔 너무 높다. 사람이 붐빌 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든 카페지만, 혜준 씨에겐 키오스크 앞에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눈치를 보며 카운터에 따로 주문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마음에 쓰인다.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학생회관은 특히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구조다. 일단 엘리베이터로 건물의 모든 층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위 2.5층, 4.5층과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 계단을 이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층이 있어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접근할 수가 없다. “관심 있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다른 접근로가 없냐고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아리 가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나마 2.5층의 경우 외부로부터 접근할 방법이 있긴 하지만 먼 거리를 돌아서 이동해야 한다. 학생회관 1층에서 약국과 라운지가 위치한 2.5층으로 가려면 보건소가 존재하는 뒷길을 통해야 이동할 수 있다. 2층 엘리베이터에서 2.5층으로 가는 짧고 높은 계단의 경우, 경사로가 설치되더라도 경사가 지나치게 가파르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힘들다. “가파른 비탈은 (올라가기) 힘들죠. 마치 에베레스트를 만난 느낌이에요”라고 혜준 씨는 덧붙였다.

  도서관 역시 혜준 씨에게 온전히 열려있는 건물은 아니다.관정 도서관 2층 출입구 앞에는 가파른 경사가 존재해 특히 겨울철에 휠체어로 이동할 때 땅이 미끄럽진 않은지 주의해야한다. 경사가 없는 안전한 1층으로 관정도서관에 들어갈 수도있지만, 그곳에선 열람실 등 대부분의 시설이 있는 2층 이상으로 이동할 방법이 없다. 1층과 2층을 잇는 ‘관정마루’란 나무 계단은 때로 전시 공간으로 쓰일 만큼 미적으로 신경 쓴 공간이었지만, 혜준 씨와 같은 지체장애인을 고려한 흔적은 없었다. “그래서 주로 중앙도서관 정문을 이용해요. 비탈로 돼있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다 올라갔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게 유리 수동문이에요. 누가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어요.” 혜준 씨는 거의 모든 수동문이 무겁지만, 특히 인문대의 철제문은 너무 무거워서 누군가가 열어주지 않으면 이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예전엔 자유롭게 이용했던 중앙도서관 엘리베이터는 이제 보안상의 이유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화를 걸어 보안업체 직원을 부르고 학생증을 맡겨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있는 카드를 받는 절차가 추가됐다. 카드를 찍는 곳의 위치가 높아서 불편하지만,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 서고까지 들어가더라도 책을 자유롭게 찾을 수 없는 때가 많다. 책장 사이 간격이 좁으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휠체어로 좁은 책장 사이에 들어갔다가 나오지못해 곤란을 겪었던 혜준 씨는 웬만해서는 좁은 틈에는 들어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도서관에서는 장애학생들에게 원하는 책을 배달해주는 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제목만 보고 내용을 알기 힘든 책들도 많고,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서는 서고에서 직접 여러 책을 훑어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혜준 씨는 “그나마 (이런 제도가 있어서) 다행이긴한데, 이런 경우가 시설물 접근권이 정보접근권으로 확장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혜준 씨는 장애학생들이 요구하기 전에 학교에서 먼저 배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6동이 리모델링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더 불편한 점이 많아져서 실망한 적이 있었어요. 건물을 설계하거나 보수할 때 항상 장애학생들의 입장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넘어 앞으론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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