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처벌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처벌을 추구해야
▲성범죄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과거의 낡은 헌법은 남성이 저지른 강간을 여성의 ‘정조에 관한 죄(1988년 형법 제32장)’로 규정했다. 오늘날 성범죄에 대한 인식은 그에 비해 분명한 개선을 보인다.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가하라는 목소리는 가볍지 않고, 법과 제도 역시 이에 응답하고 있다. 아직 과제가 남았다면 ‘합당한’ 처벌의 의미와 내용을 채워나가는 일일 것이다.

더 강하게, 더욱 길게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 대표적으로 법정형의 상향을 들 수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공분을 살 수 있는 사건들이 잇따라 문제가 되면서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2008년에 ‘정성현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구 성폭력처벌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해당 개정으로 구 성폭력처벌법 제8조의2(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는 여아가 피해자일 때 최소 형량이 5년에서 7년으로 상향됐으며, 성범죄와 함께 상해·살인·치사가 발생했을 시 타 강간 범죄와 동일한 조항의 적용을 받도록 명시됐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형량을 강화하는 방식 외에도 보조 조치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도 이뤄졌다. 신상공개 및 고지명령이 한 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제49조에 의해 성범죄자의 이름·주소·사진 등 신상정보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통해 공공에 공개된다. 더불어 해당 정보는 가해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아동·청소년의 친권자 및 법정대리인,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 우편 형태로 고지된다. 해당 제도의 법적 성격에 대해 정부 홈페이지인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는 ‘일종의 보안처분으로 범죄의 책임을 추궁하는 형벌과는 다르다’고 안내하고 있다. 처벌 강화보다는 범죄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둔 제도라는 의미다. 이런 보조 조치들 역시 법정형의 상향과 유사하게 사회적으로 강력범죄가 공론화됐을 때 적용 범위 등이 확대되는 과정을 밟았다. 실제로 위치추적 전자장치, 이른바 ‘전자발찌’의 경우, 조두순 사건 때 부착대상 범죄가 확대됐으며 김길태 사건 때 부착기간이 증가한 바 있다.

  특히 처벌 강화를 이끈 사건 대부분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만큼 아동 및 청소년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령 아청법은 성범죄자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을 최대 10년까지 제한할 수 있으며, 관련 기관이 이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제56조(아동·청소년 관련기관등에의 취업제한), 제57조(성범죄의 경력자 점검·확인)). 해당 법에 명시된 관련기관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뿐만 아니라 공동주택의 관리사무소, 의료법상 의료기관 등 간접적으로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기관 역시 포함된다. 

▲성범죄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무엇을 위해 처벌하고 있나

  그러나 일련의 처벌 강화가 과연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형량 강화에 대해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법 개정을 거치면서 법정형은 상당한 수준으로 상향됐지만 실제 선고형은 법정형보다 낮다”고 비판했다. 재판 과정에서 여전히 가해자의 폭력이나 피해자의 저항을 좁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상공개 제도 등에 대해서 한국성폭력상담소 감이 활동가는 “모르는 관계에서의 성범죄는 예방되겠지만 성폭력의 다수는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며 해당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제도의 도입 목적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서울대 추지현 교수(사회학과)는 “가해자가 강력하게 처벌되지 않으면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며 신상공개나 전자장치 부착 등은 실제론 “법관의 독립성을 지키는 선에서 형벌에 보충적인 제도로 들어온 것”이라 설명한다. 범죄예방 및 피해자 보호의 측면과 별개로 처벌 자체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는 의미다.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제도의 실효성 논란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궁극적으로 일상에서 ‘안전한 환경’을 강조하는 현재 정책은 범죄예방의 책임을 잠재적 피해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감이 활동가는 “(이런 정책들이) 공포와 불안을 가중하는 측면이 있다”고 표현했다. 신상공개나 취업제한 등의 제도는 사람들이 관련 내용을 능동적으로 숙지하고 범죄자를 피해 다닐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여성을 피해자의 위치에 고착화할 위험 역시 존재한다. 추지현 교수는 “도처에 공포가 있다는 상태를 유지하고 산다는 게 과연 여성들에게 어떤 득이 될 것인가”라 물으며 “여성의 대응 능력이나 행동 반경이 축소되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피해의 의미를 질문하기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위해선 결국 우리 사회가 상정하고 있는 피해자 상을 점검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다혜 연구원은 논문 ‘성폭력 범죄를 둘러싼 현대사회의 신화들(2012)’에서 ‘아동성폭력에 집중하는 형사정책의 방향은 오직 취약하고 순수한 ‘진짜’ 피해자에 대한 극단적인 형태의 성폭력 범죄만을 문제시한다’고 짚는다. 2010년의 조두순 사건과 김길태 사건이 성범죄에 국한되지 않고 유기형의 상한선 자체를 끌어올리는 사이, 피해 이후 일상을 회복한 ‘전형적이지 않은’ 피해자의 존재는 고려되지 않는다. 추지현 교수는 “피해자다움이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에선 피해자가 피해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욕구가 있는지 등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제작 중인 자료집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Q&A’의 목차 (본 이미지는 실제 목차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도적으론 성범죄 상황에 대해서 무엇이 실제로 문제였는지 질문하고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법 외부에서의 공론화가 이뤄지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의 법 역시 필요하다면 변화돼야 한다. 이미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바 있는 형법 제297조(강간)가 대표적이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해당 조항은 가해자의 폭력을 지나치게 좁게 명시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건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감이 활동가는 “(법의) 기저에 있는 통념을 그대로 둔 채 형량만 높이는 방식은 부적절하다”며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으로 간주하는 비동의강간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더불어 성범죄에 대한 기존 통념을 개선할 수 있는 교육의 확대가 장기적으로 요구된다. 현재에도 아청법 제21조(형별과 수강명령 등의 병과)가 ‘500시간의 범위 내에서 재범예방에 필요한 수강명령 또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의 이수명령’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해당 수강명령 및 이수명령이 범죄자의 인식을 바꾸더라도 결국 이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조치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감이 활동가는 국가기관에서 성범죄 예방 교육이 필수로 이뤄지는 등 어느 정도의 발전을 언급하면서도 예방 교육이 보다 소규모로, 본인의 생각이 어떤지 돌아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추지현 교수 역시 “(범죄를 저지른) 성폭력 가해자와 일상의 문화 사이에서 그렇게 많은 차이가 있는가”라 반문하며 어렸을 때부터 교육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복해서 도입되는 강력한 처벌 정책은 우리에게 성범죄가 충분히 해결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 ‘인상’에 불과하다. 한정된 피해자 상을 과잉 대표하는 정책은 다양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성범죄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감이 활동가는 “강한 처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며 양자 간의 차이를 강조했다. 제대로 된 처벌을 향해 갈 길이 아직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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