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장애’라는 장벽이 무너지는 날까지
▲계단과 경사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선택지를 늘린다.

▲계단과 경사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선택지를 늘린다.

  “장애학생들이 보통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장애가 있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장애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 박선아(사회복지 17) 대표는 장애학생들이 일상의 불편함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배리어프리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돼버린 캠퍼스에서 장애학생의 권리는 직접 쟁취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익숙해져 버린 이들의 불편한 일상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배리어프리는 ‘장애’ 개념의 변화에서부터

  점자블록과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도우미를 충분히 확보하는 등 시설과 제도 면에서 배리어프리를 실천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서울대도 장애학생지원센터를 두고 각종 배리어프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시혜적 시선이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변화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박선아 대표는 “(장애학생을 위한 유일한 학내 기구인)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본부의 직속 산하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본부 측과 소통이 어렵고 인적, 경제적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센터가 총장이나 본부의 직속기관으로 전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한 직원 역시 “본부는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장애학생은 그 대상에서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원제도가 바뀐 뒤에는 법의 기준치에 따라 시설의 규격만 조정하면 그만일까.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은 건축물의 종류와 바닥면적에 따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장애인 편의시설과 이에 대한 권고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장애물없는 생활환경 시민연대(무장애연대)’ 김남진 사무국장은 편의증진법에 대해 “권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대부분 의무내용만 이행하고 만다”며 “권고사항을 준수해도 실제로는 이용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편의증진법은 1998년 제정된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률 대상 시설물의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한 규모에 대한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기준보다 규모가 작은 시설물의 편의시설에 대한 아무런 의무사항도 없다. 김 사무국장은 “이런 기준은 빠른 시일 내에 개정돼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건물의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가 되도록)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률의 강화가 꼭 배리어프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남진 사무국장은 “편의시설 설치기준과 세부기준 등은 최소 요건을 규정할 뿐이지 이것만 지키면 시설물의 배리어프리가 이뤄진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리적·제도적 차원의 배리어프리를 넘어 ‘장애’라는 개념에서의 배리어프리가 실현되지 않으면 물리적 장애물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장애는 장애인이 ‘갖고’ 있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한 불편함을 최소화 ‘해주는’ 것이 배리어프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장애는 ‘장애’라 낙인찍힌 신체적·정신적 특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장애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배리어프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18년에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해외에서 ‘합리적 편의’라 불리는 ‘정당한 편의’의 제공을 의무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정당한 편의는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시설과 서비스 등을 뜻한다. 문제는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와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편의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의무대상에포함되든 포함되지 않든 최대한의 조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내용이나 이를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법의 취지는 ‘현실적’ 한계란 샛길로 인해 법조문 밖의 현실에 닿지 못하고 있다.

모두의 배리어프리를 향해

  정당한 편의 제공에 대한 몰이해 속에 대놓고 배리어프리를 ‘선택’하는 사례 또한 가까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8년 학내 모 단과대학의 학생회 선거기간 중, 한 단과대의 선거운동본부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와의 질의응답에서 ‘학생회 행사에서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저희 과에는 장애인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거센 비판을 받았고, 해당 선본은 결국 사과문을 게시했다. 뿐만 아니다. 박선아 대표에 따르면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지난 9월에 열린 장애학생간담회에서 ‘학내 키오스크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표시를 도입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우리 학교에는 3명의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있는데, 1명은 졸업을 했고 2명은 휴학을 한 상태다. 따라서 지금은 (도입하기) 적절한 때가 아니다. 학생들이 돌아온 다음에 협의하겠다’라고 답한 바 있다. 장애인이 없으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필요없다는 생각은 합당할까.

  2016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장애인권리협약’을 분석한 논문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접근권과 반차별권’은 당사국이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과 더불어 접근권 보장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접근권 보장은 장애인 개인이 아닌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무로서 장애인이 따로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놓는 것을 뜻한다.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감시하는 기구인 장애인권리위원회 또한 시설이나 서비스 등에 접근하는 데 존재하는 장벽은 완전한 접근성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제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의 유무라는 조건 없이 사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장애인권관리위원회는 접근성 시행 의무는 무조건적인 것으로,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이유로 접근성을 제공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과도한 부담 등을 이유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놓은 우리나라의 법은 허점이 있는 셈이다.

  완전한 접근성은 모두를 위한 접근성과 같다. 경사로는 휠체어뿐만 아니라 유모차, 여행용 캐리어, 수레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설이다. 자동문과 장애인용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장애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만연해 있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다름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 때 생기는 결과다. 신호바뀜 알림음은 신호등 불빛이 잘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신호등 불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쉽게 풀어쓴 책이 널리 보급된다면 소위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고 불리는 사람들의 글을 이해하는 속도는 장애로 인한 결과가 아닌 차이가 될 수 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장애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런 인식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왜곡된 도움은 오히려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추락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2017년엔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던 사람이 계단 아래로 추락해 생을 마감하는 일도 벌어졌다. 장애인의 실질적인 이용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인 설치에 따른 결과였다. 부실한 리프트를 철거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장애계의 꾸준한 요구에도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등 지하철 운영기관은 설치의 어려움과 예산 문제를 이유로 늑장을 부리며 회피했다. 이들은 당당했다. ‘법대로’였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진정한 접근권을 보장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단순한 제도의 보완을 통한 시혜적 배리어프리를 넘어, 장애인의 시선에서 ‘장애’라는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배리어프리가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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