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권력자들이 저항의 역사를 까맣게 잊은 채 국익의 밥그릇을 계산하고 있을 때, 홍콩에서는 사람들이 죽었다. 고무탄을 발사하던 홍콩의 경찰들은 효과적인 진압을 위해 시위대의 눈을 조준했고, 정당한 권리를 외치던 사람들은 실명했다. 홍콩 경찰과 유착한 조직폭력배들은 퇴근길의 시민들을 지하철역에서 무자비하게 폭행했으며, 항쟁을 이끌던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의장은 길에서 괴한에 피습당해 쓰러졌다. 2014년 우산 혁명 당시 빠른 진압을 위해 만들어진 속룡부대는 최근까지 전쟁에서나 쓰일법한 중화기를 들고 비무장 상태의 시위대를 진압했다. 현재 친중파의 선거 참패 이후 폭력의 수위는 진정되었지만, 홍콩 경찰들의 집단 성폭력 증언이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들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세상에 서초동과 광화문이라는 두 개의 광장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조국 사태에 매몰된 한국의 언론들은 두 광장으로 양분되던 기성 정치판의 목소리만 앞다투어 보도했고, 그 사이 우리 모두에게 닿았어야 할 소중한 이야기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지워졌다. 홍콩 민주항쟁도 그중 하나였다. 홍콩 시민들은 세계 각국을 비롯하여 특히 한국에 꾸준히 지지를 호소해왔다. 홍콩 시위대는 한국의 촛불 집회를 모방하여 매주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홍콩의 거리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그날이 오면>과 같은 한국의 민중가요가 광둥어로 불리고 있었다. 홍콩 시위대는 한국에서 일어났던 항쟁을 좋은 선례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권력자들과 언론들은 오로지 조국 사태에만 열을 올리며 홍콩의 부름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 덕분에 홍콩에서 어떤 잔혹한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한국 시민은 많지 않았다.
홍콩의 참상을 전하는 역할은 기존 언론 대신 SNS의 시민 번역가들이 도맡았다. 보다 못한 시민들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연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아시아 공동행동,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등 일종의 자치언론을 만들었고, 한국 시민들은 이 SNS 페이지들을 통해 대체 왜 이 정도의 참상이 자신에게 닿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한 집단은 대학가였다. 서울대학교에서 시작된 레넌 벽 부착과 침묵 행진은 전국의 다른 대학으로 속속 퍼져나갔고, 각종 대학 단체에서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는 대자보와 성명을발표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대학가에서 일어난 한-중 학생 간의 대치 상황이나 반중 정서에만 관심을 가졌고, 정부와 거대정당은 여전히 눈과 귀를 닫은 채 국회에서의 싸움만을 이어나갔다.
가히 적폐의 정치가 만들어낸 총체적 난국이라 하겠다. 청년 계층은 한국에서 종종 기존의 정치에 극심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는 집단으로 해석되는데, 이러한 정치에 불만과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다. 정치 조직인 대학의 학생회들이 너도나도 ‘탈정치’를 구호로 외치는 모습이나, 청년들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등 정치성을 삭제하려는 경향은 분명 ‘기존의 정치’에 대한 깊은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쨌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목소리 내는 것은 모두 정치이고, 그 방향에 중립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탈정치나 정치적 중립이 아닌 ‘대안의 정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오늘날의 청년들은 국익, 경제발전 등으로만 이어지던 기존의 정치, 또는 적폐의 정치가 아니라 모두의 보편인권을 외치는 대안의 정치를 속속 꺼내 들고 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홍콩 연대라는 의제였다.
언론들은 대학가의 홍콩 연대 활동을 다룰 때 계속해서 ‘대학가의 한중갈등’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고조되는 혐중 정서’, ‘중국 공산당 체제 규탄’ 등을 부각했고, 우리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홍콩에 전도하는 애국 청년들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정작 활동을 이끌어가는 청년들의 관심사는 홍콩 현지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였다. 청년들이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에 저항하는 데 국경이나 좌우 이념 같은 고리타분한 경계는 없었다. 오로지 우리의 존엄한 가치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위해,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청년들이 같은 마음으로 함께 연대할 뿐이었다. 현재도 정의당, 녹색당, 바른미래당, 더불어민주당에 소속된 청년들이 각 정당의 이름을 걸기도 하며 홍콩에서 일어나는 탄압을 규탄하기 위해 한데 모이고 있다. 부머들의 정치와 다른 청년들만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조국 사태가 청년들에게 남긴 것이 기존의 정치에 느끼는 소외감과 혐오감이었다면, 홍콩 연대 운동이 우리나라에 남긴 의미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이겠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전국적인 운동은 한국에서 꽤 이례적이었다. 기존의 정치 이념과 무관하게 청년 계층들이 결집하고 있는 형태 또한 그랬다. 청년 계층의 독특한 점은 기성세대들과 달리 이미 세계시민으로서 하나의 지구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명백한 국가폭력의 증거가 되었듯, 세계 각국의 청년들과 동일한 SNS 플랫폼을 공유하는 우리는 더 넓은 지역의 사람들과 더 많은 종류의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소통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이끌었던 이번 홍콩 연대 운동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정치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