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대학생들처럼, 평소 제가 신경쓰던 일상은 학점 관리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 여행 계획을 짜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6월 초 이곳에서 송환법에 대한 반대 시위가 열릴 때부터 저의고민은 독한 최루탄과 강압적인 경찰의 체포 같은, 보다 무거운 주제로 바뀌어 갔습니다. 11월 초가 되자 경찰이 캠퍼스로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홍콩에서 함께 공부하던 몇몇 한국인 친구들은 홍콩이 더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돌아갔고, 학교 당국은 혼란스런 정세로 인해 정규 학기를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학기를 단축했습니다.

  대학생인 나에게 시위란 람마다 시위를 통해 경험한 바가 다르고, 평소 지닌 정치적 성향도 다를 것이기에, 저는 다만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제가 직접 경험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쓸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더라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6월부터 12월이 된 지금까지, 거의 모든 주말마다 거리에 나서 시위에 참여했어요. 친구들과 이 카페 저 카페 쏘다니며 수다를 떨던 달콤한 시간은 집회에 참여하고, 경찰에 연행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변했습니다. 지난 6개월간 홍콩에선 말 그대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우리는 경찰이 시민과 기자, 현장 구호에 나선 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목격했어요. 우리는 이제 홍콩 시민들의 노래(anthem)와 홍콩의 상황에 대해 알리는 레논 벽, 그리고 운동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게 됐어요. 떠올리기엔너무 아픈, 너무 많은 기억을요.

  2. 친구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던 단체 채팅방은 이제 데모가 끝날 때마다 서로의 신변과 안전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변했어요. 경찰의 과잉 체포와 의문스러운 자살이 계속되자 우리는서로의 안전에 대해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월 27일 의회 질의에 대한 홍콩 보안국의 답변에 따르면, 6월 9일부터 11월 14일까지 경찰에 연행된 사람의 수는 4,319명에 달합니다. 이 막대한 수치는 경찰이 홍콩중문대학을 공격하고, 홍콩과기대를 포위한 경찰이 민간인을 캠퍼스에 가둔 채 생활필수품과 인도적 지원 물품의 반입을 금지한 기간 발생한 수는 제외한 것입니다.

  3.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한 가게에 방문했습니다. 어떤 가게들은 시위자들이 경찰 기동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줬고, 어떤 식당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어린 시위자들에게 공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홍콩에선 이런 상점들을 민주주의의 상징색인 노랑을 따 ‘옐로우 샵’이라고 부르는데, 옐로우 샵의 종류는 화장품점과 애견샵, 웨딩샵까지 아우릅니다. 홍콩의 시민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지와 구글 지도에 옐로우샵을 표시해 공유하고 있어요. 옐로우 샵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는가치에 기꺼이 동참하는 윤리적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시위를 이유로 체포되고 유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고자 했습니다.

  4.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이후, 저는 집회가 주로 열리는 지역의 도로명과 거리 배치에 대해 전에 없이 자세히 알게 됐어요. 이런 정보는 경찰의 시위 진압을 피해 탈주로를 계획할 때 중요한데, 특히 요즘처럼 경찰이 사전 허가된 집회에까지 들이닥쳐 시위대가 해산할 때까지 최소한의 시간만 주고 최루 가스와 고무탄 같은 진압용 무기를 사용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경찰은 치안을 이유로 민주파의 시위를 자주 해산시켰습니다. 사실은 경찰의 개입이야말로 충돌을 낳는 원인인데도 말이죠. 저는 정부가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무력 시위와 시민-경찰 간의 충돌이 늘어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5. 저는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홍콩에서 지하철은 폭압과 잔인함의 동의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7월 21일에 지하철역 내에서 경찰과 폭력배가 함께 시민을 공격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8월 31일에는 경찰 기동대가 프린스 애드워드 역에서 시위자들의 목숨을 위협할만큼 폭력적인 충돌을 조장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철로공사 측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CCTV 자료의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시위가 열리는 날이면 해당 지역 주변의 역을 폐쇄해 시민들이 집회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기도 했습니다. 철로공사 측이 폭압의 편에 서자 저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은 지하철 이용을 보이콧했습니다.

  언뜻 사소해 보여도, 이런 일상의 변화들은 억압적인 정권, 남용되는 경찰력, 늘어나는 중국 정부의 개입 등 홍콩시민이 마주한 심각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그간 민주화 운동은 구심점 없이 진행돼왔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 없습니다. 11월 24일, 지역 선거는 역대 가장 높은 투표자 등록률을보이며 진행됐고, 민주파는 많은 의석을 얻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11월 28일, 미국 정부는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법안’에 서명하며 홍콩의 자주권과 홍콩 시민의 인권 억압에 가담한 사람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했습니다. 시민들의 피와 결연한 노력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통해 얻어낸 작은 승리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민주화 운동이 끝나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홍콩 정부는 5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찰의 폭력은 여전히 저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방의 빛을 보기까진 갈 길이 먼 듯합니다. 국제적 공조를 통해 자유로운 홍콩이 이뤄지든 아니든, 앞으로 더 많은 가두 집회와 홍콩 정부에 대한 재정적 압박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견디는 일일 테지요. 우리가 역사의 옳은 편에 서서 싸운다는 것을 늘 되새기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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