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상 방탄소년단, 레코드상 워너원, 앨범상 방탄소년단, 베스트송상 아이콘, 신인상 (여자)아이들과 더보이즈, 핫트렌드상 로꼬와 화사 … 국내 최대 대중음악시상식 ‘멜론뮤직어워드’의 2018년도 수상자 명단이다. 주요 18개 수상분야 중 핫트렌드상의 로꼬와 트로트부문의 홍진영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수상자가 아이돌이다. 아이돌 음악을 제외하면 음원차트에 남는 음악이 몇 없을 정도로 아이돌이 한국 대중음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아이돌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거듭난 것일까.
한국 대중음악을 독식한 아이돌 음악
아이돌 가수의 등장은 한국 대중가요의 르네상스였던 80년대에 빚을 진다. 언론 통폐합, 문화검열 등 대중문화에 대한 억압이 이뤄지던 70년대와 달리, 80년대엔 전두환 정권이 국정홍보 수단으로 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며 한국의 대중문화 환경은 완전히 변화했다.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서 이선희, 신해철 등의 가수가 발굴됐고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김완선, 소방차 등의 댄스 가수가 인기를 끌었다. 88올림픽 등 정부의 국제화 기조와 맞물려 해외 음악장르의 적극적 수용이 이뤄지기도 했다. 아이돌의 등장도 위와 같은 다양한 문화적 시도의 연장선에 있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1996년 최초의 아이돌 그룹 H.O.T를 선보였다. 기획사가 재능 있는 청소년을 선발해 노래, 춤 등 다방면으로 훈련한 뒤 데뷔시키는 일본식 체계를 수입한 결과였다. 이어서 SM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데뷔한 S.E.S도 큰 성공을 거두며 JYP, YG 등 다른 매니지먼트 기업들 역시 아이돌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음악 시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개편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마주했다. 기존 시장을 주도하던신나라 레코드 등의 음반 회사는 MP3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적응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그 빈자리를 이동통신사의 음원 서비스와 지상파 방송사가 대체했다. 전통적인 음반 회사와 달리, 이동통신사의 목적은 음원을 통한 수익 확보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음원 서비스는 이용자를 끌어들여 모회사의 수익을 늘리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이용자 확보에 유리한 저가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주요 유통경로를 잃은 대부분의 음악 장르는 디지털 음원을 통해선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아이돌 음악만은 달랐다.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아이돌 가수를 음악 방송에 내보이면 주요 시청층인 10대로부터 고정 소비층인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아이돌 가수는 대부분 그룹 형태이기에 멤버들이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웹진 <아이즈(iZE)>의 박희아 기자는 “음악과 퍼포먼스, 사인회 등의 공감각적 콘텐츠와 음악 장르 간의 유연한 결합”을 아이돌 가수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 결과 대중음악 공인 차트인 가온차트가 출범한 2010년에 상위 100개 곡 중 아이돌의 비중은 70%에 달했다.

디지털화라는 세계적 흐름이 한국에서만 유독 아이돌 음악으로의 대중음악 획일화로 귀결된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부실한 기반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음악적 다양성이 확보되기 위해선 다양한 규모의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과 CD, LP, 디지털 음원 판매업소 등 다양한 유통경로가 확보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작은 음악 시장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유승종은 2010년 발간된 논문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구조적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에서 대중음악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을 막는 수익성 악화 요인들이 존재함을 지적했다. 체육시설을 공연장으로 대체해 사용하다보니 비용을 들여 따로 가설무대를 제작해야 하고 공연장 시설을 사용하더라도 대중음악 공연에만 더 높은 금액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대중음악에서 공연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며 지상파 방송을 통해 음악가를 홍보하고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음원 서비스를 통해 스트리밍하는 것이 유일한 유통경로가 됐다. 변화된 환경에서 아이돌 음악은 생존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아이돌은 대중음악의 주류로 거듭났지만 정작 아이돌의 중심엔 음악이 있지 않다. 전통적 음악 시장의 붕괴 속에서도 아이돌 음악만은 부흥했다는 사실은 아이돌 음악이 여타의 장르와 달리 음반 수익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음악제작업 매출액에서 ‘음반 및 음원’과 ‘음반 외 수익’을 마지막으로 구분한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 산업백서’ 통계를 보면 ‘음반 외 수익’이 전체 음악제작업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어선다. 음악성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한 광고와 행사 출연료가 아이돌의 주요 수익원인 셈이다. 이에 따라 가수들이 ‘만능 엔터테이너’로 거듭나야만 하는 산업 환경이 만들어졌다. 가수들은 노래와 춤 이외에도 아름다운 외모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개성’을갖춰야 했고 기획사는 그에 맞춰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다.

아이돌 산업을 독점하는 대형기획사
이러한 산업구조 속에서 대형기획사 출신 아이돌의 성공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대형기획사가 다수의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며 축적한 트레이닝 노하우를 중소기획사가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형기획사는 막대한 아이돌 데뷔 비용을 마련하는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흥국증권이 2015년 발행한 ‘스타가 만들어지기까지’ 보고서에 따르면 6주를 기준으로 산정한 5인조 아이돌 데뷔 활동비용은 녹음, 뮤직비디오 등의 음반 제작비와 무대에 필요한 인건비 등을 포함해 총액 5억 원을 넘어선다. 여기에 연습생 한 명을 훈련하는 데 매달 수백만 원이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돌그룹 하나가 데뷔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 아이돌 가수를 다수 성공시킨 대형기획사가 투자금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향후 아이돌 가수의 인지도 상승을 위한 방송 출연 등에서도 인지도 높은 대형기획사 아이돌이 우선권을 지닌다. 출연진 섭외에는 서너 개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총괄 프로듀서(CP; Chief Producer)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대형기획사와 총괄 프로듀서 사이에 인기있는 아이돌을 내주는 대신 신인 아이돌을 출연시켜주는 등의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형기획사가 아이돌 가수의 제작부터 유통까지 우위를 점하는 위계적 순환고리가 형성된다.
대형기획사의 독점구조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아이돌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드는 중소기획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대중문화예술 기획업 사업체 수는 2014년 1,393개, 2015년 1,728개, 2016년 1,952개로 크게 증가했고(한국콘텐츠진흥원, ‘2017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보고서’) 동시에 중소연예기획사의 퇴출 또한 빈번하게 일어났다(한국콘텐츠진흥원, ‘연예기획사 등록제 도입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 활성화 방안(2012)’).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이돌 시장이 전형적인 ‘슈퍼스타 시장’이기 때문이다. 김대일 교수(경제학과)는 전체 시장의 1%가 이윤을 독식하는 ‘슈퍼스타 시장’에선 오히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겼을 때 막대한 보상이 주어져 중소기업이 경쟁에 참여할 유인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신윤희 작가 역시 《팬덤 3.0》에서 최근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를 통해 인지도를 얻은 모모랜드와 같은 사례가 등장함에 따라 기획사의 규모와 가수의 성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한 해 동안 324명이 아이돌로 데뷔한 것(아이돌로지 편집부, ‘2015 데뷔 신인 통계’)과 대조적으로 현재까지 인 기 를 끄 는 아이돌이 트 와 이 스 ( J Y P ), iKON(YG), 세븐틴(플레디스) 등 극소수 대형기획사 출신 아이돌이라는 점은 대형기획사의 독점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아이돌 지망생은 연습생 준비생-아이돌 연습생-아이돌 가수로 이어지는 가파른 피라미드를 마주하게 됐다. 연예기획사의 연습생 선발 과정이 공식화됨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고가의 사설 학원들이 등장했다. 아이돌 준비생들은 학원에서 기본 소양과 연기, 춤 등의 개인기를 쌓으며 인지도 높은 기획사에 합격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 사이에 데뷔는 시켜주지 않으면서 ‘기획사’라는 이름을 단 학원형 기획사가 등장해 전문 트레이닝을 명목으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수업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이사는 “사실상 집안에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이돌 지망조차)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방송사와 기획사 이해관계의 합작: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 산업에 드리운 독식 구조는 ‘프로듀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탄생은 대중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엠넷>을 내세운 CJ E&M의 부흥과 함께했다. 지상파 채널에 비해 <엠넷>은 24시간 음악 프로그램만을 연달아 방영하니 기획사 입장에서 아이돌을 대중에 노출시키기 용이했다. 따라서 음악방송의 권력은 점차 지상파 채널에서 엠넷으로 이동했다. 엠넷의 모회사인 CJ E&M은 ‘슈퍼스타K’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발굴된 가수들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와 하이라이트 레코즈를 인수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러한 배경하에 CJ와 기획사의 이해관계가 ‘프로듀스’ 시리즈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CJ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쌓은 노하우와 매니지먼트 업계 진출을 바탕으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호칭을 부여받은 시청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연습생을 홍보하는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뒀다. 나아가 CJ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과 직접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어 프로그램 종영 후에도 수익 통로를 마련했다. 시즌 2의 워너원과 시즌 4의 엑스원은 CJ가 투자한 스윙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고, 시즌 3 아이즈원의 소속사 역시 CJ 산하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다. 계약 기간 또한 워너원이 18개월, 아이즈원이 2년 6개월, 엑스원이 5년으로 점차 늘어났다.
한편 연예기획사들은 CJ의 기획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아이돌 가수 제작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갔다. 소속사가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자본을 들여 데뷔 준비를 완결지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연습생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면 노래, 춤 등의 기초적 훈련에 소속사가 관여할 필요가 적어졌다. 방송 내에서 가수의 개성 있는 이미지를 형성함으로써 홍보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더불어 프로그램 출연료 또한 들어오니 기획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이던 연습생 육성이 수익 창출 수단으로 변모하게 됐다.
‘프로듀스’ 시리즈가 전통적인 3대 기획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엠넷은 해당 프로그램을 중소기획사 연습생에게도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주는 장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신윤희 작가는 저서 《팬덤 3.0》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아이돌 가수 육성 체계는 결코 중소기획사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대형기획사가 프로젝트 그룹을 매니지먼트하는 상황에서 ‘중소기획사일수록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이돌 업계의 위계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중소기획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데뷔의 문 앞에서도 여전히 방송사와 대형기획사의 그늘 아래서만 소속 연습생을 내보일 수 있었다.
최근 불거진 ‘프로듀스’ 문자투표 조작 사태는 이러한 공정의 가면 속 불공정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이사는 이를 “사실상 누구에게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신화”라고 평가했다. 아이돌 업계의 위계적이고 불공정한 구조는 사회의 다른 부분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 10대 참가자들에겐 극적인 성공이 강요됐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생존 경쟁의 모습이 “상하가 명확한 선생과 지원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잠 잘 시간도 없이 과제를 주는 등 새마을 운동과 같은 압축적 근대화의 모습으로 재현”되며 아이돌 연습생의 과도한 노동이 극적인 성공서사로 미화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돌 산업은 디지털 음악 시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아 노래, 춤, 연기, 예능 모두에 능통한 수많은 ‘별’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빛나는 아이돌 가수의 무대 뒤엔 무너진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대형기획사가 독점한 산업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이돌 지망생의 고통이 있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가파른 피라미드는 방송사와 기획사의 이해관계로 지어졌으며 조작과 비리로 덧칠됐다. 찬란함에 가려진 아이돌 산업의 왜곡된 구조에도 관심의 빛을 비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