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질병이 될 수 있는 HPV

성접촉 후의 고민도 모두의 몫이 돼야
▲2018년 건강보험을 청구한 명세서를 통해 파악된 HPV 진료 실인원수 ⓒ건강보험공단

  인유두종바이러스로도 번역되는 HPV(Human Papilloma Virus)의 성격은 독특하다. 성인 인구의 80%가 평생 한 번 이상 노출될 정도로 흔하지만(질병관리본부 발표),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또, 대부분의 유형은 성인에게 자연 면역되지만, 일부 유형의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암의 원인이 될 만큼 위험하다. 무엇보다 독특한 HPV의 특성은,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보건 체계의 성차(性差)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무관심하거나

여성의 책임이거나

  현재까지 약 100여 종이 발견된 HPV는 세계적으로 흔한 성 매개 질환으로, 대부분이 단 한 번의 성접촉으로도 감염되며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으로 뽑힌다. 질병관리본부 역시 성 경험을 가진 성인의 약 80%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 HPV 감염에 노출될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한 바이러스라고 밝힌다.\

   HPV는 크게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으로 나뉜다. 저위험군의 경우 성인은 2년 내에 자연면역을 통해 체내에서 소실되거나 사마귀 정도의 질병으로 이어지지만, 고위험군의 경우 자궁경부암‧외음부암‧질암 등의 주원인이 된다. 이처럼 고위험군 HPV에 의한 질병이 주로 여성의 질병이었던 까닭에, HPV 역시 여성이 염려해야 할 문제로 여겨져 왔다. 한국에는 HPV 보균에 대한 조사자료가 없는 실정이지만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하는 ‘HPV 진료 실인원수’ 자료를 통해 HPV 검사 후 건강보험을 청구한 성별과 연령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는 생물학적 성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전반적으로 여성의 검사 비율이 남성이 비해 압도적으로 높고, 특히 20대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HPV가 남성에게도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HPV는 음경암을 발병시키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며, HPV에 의한 구강 관련된 질환의 발병률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3배가량 높다. HPV에 대한 고민이 여성에게만 전가될 수 없는 이유다.

▲2018년 건강보험을 청구한 명세서를 통해 파악된 HPV 진료 실인원수 ⓒ건강보험공단

예방접종 지원사업의 정비 필요해

  2016년부터 정부는 만 12세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HPV에 제대로 대응하기엔 지원되는 백신의 종류와 접종 성별, 연령 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정부는 해당 사업을 통해 전국 보건소 혹은 지정의료기관에서 HPV 백신 예방접종인 가다실 4가(HPV4)과 써바릭스(HPV2)를 지원하고 있다. 써바릭스는 고위험군 HPV 중에서도 자궁경부암의 가장 주된 발병 요인으로 뽑히는 2개 유형(16, 18형)을 대상을 하고, 가다실 4가는 이에 저위험군 2개를 더한 4개 유형(16, 18, 6, 11형)을 대상을 한다. 문제는 두 개의 백신이 대상으로 하는 바이러스의 유형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정선화 전문의는 “가다실 4가와 써바릭스가 오래됐으며, 현재보다 폭넓은 유형의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하는 가다실 9가 백신이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기에 맞지 않는 백신을 접종하는 셈”이라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 가다실 9가가 예방 대상으로 하는 45‧50번대 바이러스의 감염률이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현재 제공하는 백신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HPV 백신 종류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성은 예방접종 사업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HPV의 진단과 예방접종 비용을 모두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해바라기센터 이함성 활동가는 “모든 성접촉이 파트너와 같이 이뤄지고, 남성의 경우 주요한 증상 없이 잠복기에 성관계를 한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며, 원치 않는 성접촉에 노출된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위험성 또한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방사업의 대상이 되는 성별은 물론 연령대 역시 확대해야 한다. 2019년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국회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대 성병 환자의 수는 2014년 대비 33% 증가했다. 현재 HPV 예방접종 사업은 만 12세 여성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예방접종 백신은 성접촉과 성병 발병 이전에 이뤄져야 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이른 나이부터의 접종이 필요하다. WHO 역시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해서는 9~14세를 주 대상으로 HPV 예방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20세 이상의 여성에게 2년 주기로 지원하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자궁경부암 검진은 30~45%의 위음성률(false-negative rate)을 보이는 등 정확도가 낮기 때문에 HPV 검사와 병행할 것이 권유된다. 자궁경부암이 전암 단계에서는 98%의 완치가 가능하지만 일단 암이 생기거나 전이됐다면 5년 생존율이 20%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른 검진을 통한 발견은 중요하다. 이함성 활동가는 “평균 성경험 연령이 10대 중반이며 20대 자궁경부암 발병이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자궁경부암 검진 역시 검진 권고 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0대의 산부인과 접근성이 떨어지므로 국가 보건사업에서의 권유는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정환욱 부회장은 “선진국에서는 기존 세포검사 외에도 검사의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자궁경부암 원인 바이러스를 검사하는 HPV 검사도 시행하고 있어 자궁경부암의 발생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방접종의 효과에 대한 정확한 안내 역시 필요하다. 해바라기센터 이함성 활동가는 “HPV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HPV 바이러스 예방접종’이라고 전달받는다면, 본인이 어떤 접종을 받았고 무엇을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HPV가 성접촉 이후 계속해서 노출될 수 있는 바이러스임을 고려할 때, 한 회의 예방접종을 통해 HPV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적절한 대책이 아니란 설명이다.

HPV의 매개체는 무관심이기도 하다

  정선화 전문의는 “성관계는 파트너가 전제되는 만큼, 교육은 성별과 무관하게 모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교육이 없는 상태에서의 정부 정책은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HPV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다. HPV 예방책은 학교의 성교육에 포함돼 있지 않고, 정선화 전문의가 지적하듯 발표된 논문은 대부분 영어라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다. 이함성 활동가 역시 “HPV 예방을 위해서는 성접촉 전 검진을 받고 파트너와 함께 백신을 맞아야 하며, 성접촉 이후에는 암 검사를 일 년마다 한 번씩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보균자들이 많고 모두의 문제임에도 HPV에 대해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며 실제 연구도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정선화 산부인과 전문의 ⓒ이유리 사진기자

  정보 부재는 HPV 감염을 알아차린 보균자에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심리적 고통을 야기한다. 정선화 전문의는 “HPV 보균자는 검사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CIN(자궁경부의 전암 병변 단계)이나 암으로 발병될 때 심각성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다. HPV로 인해 CIN이나 암이 발병하는 경우 원추절제술 등의 수술이 이뤄지는데, 이 수술로 자궁경부가 짧아지게 되면 조산이나 합병증의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임신을 할 경우 보균이 가져올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자궁경부도 성감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성욕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공식적인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심리적 고통은 다양한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이함성 활동가는 “바이러스 보균자의 경우 치료제가 없어서 정기적 검사를 6개월마다 개인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 면역력 활성화를 위해 많은 개인 투자를 한다는 점 등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는 특히 환자들이 “한의원에 방문해 적게는 100~500만 원의 돈을 쓰며, 구매하는 영양제들은 대부분 고가”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선화 전문의는 “의사들도 HPV 바이러스에 대해 많이 모른다”며 “HPV가 매우 다양하고 쉽게 전염됨에도 암 환자 치료가 우선이기 때문에 큰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관한 관심도 부족하다.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HPV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특허를 받은 김정환 약사는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과정에서 백신을 연구할 수 있는 기전실험실(백신의 작동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실험실)이 한국에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HPV 치료제 개발 관련 연구 시설과 바이러스에 관해 사회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미비하단 점을 큰 원인으로 꼽았다.

HPV에 대한 고민,

이젠 함께 시작할 때

  따라서 HPV 관련 정보 제공을 정책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청소년의 검사 및 백신 접종의 접근율은 보호자에 의해 좌우되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검사 및 예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정선화 전문의는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산부인과에서 교육할 수 있는 재원이나 의사들의 사회참여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PV 백신은 파트너와 같이 맞고, 가능하면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여성의 경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1년에 한 번은 자궁경부암 검진, HPV 검사, STD 검사(성병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산부인과를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주치의와의 상담을 통해 전문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간 HPV는 종종 여성의 문제로만 여겨져 왔다. 특히 HPV 예방 백신이 한국에서는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도입되며 이런 인식이 강화되기도 했다. HPV가 남녀 모두에게 중요함에도 정부의 백신 예방접종 및 검사가 여성에게만 이뤄졌다. HPV는 여성만의 질환이 아니다. 성접촉을 매개로 하므로 남녀 모두 예방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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