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디판'(2015)
건물의 고장난 전등을 고치는 디판 ⓒ영화 '디판' 공식 스틸컷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내전으로 숨진 동료의 화장을 파리한 얼굴로 바라본다. 곧바로 화면이 전환되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곧 그녀는 어머니와 사별한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녀는 아이의 팔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간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 이 세 명은 가족으로 위장하기 위해 사망자의 여권을 구입한다. 그들에게는 이제 ‘디판, 얄리니, 일리얄’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있다. 그들은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스리랑카는 더 이상 그들의 터전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둥지를 틀다

  그들이 거주지로 배정받은 지역은 ‘르 프레’라는 명칭의 파리 외곽 방리유 (Banlieu)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 이민자들이 사는 방리유는 각종 인종 차별과 실업, 빈부격차 등으로 거주 환경이 급격히 악화됐다. 디판이 사는 아파트의D동 역시 마약 거래를 비롯한 각종 범죄의 온상이다. D동의 주를 이루는 젊은이민자 2·3세대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거리로 내몰렸다.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 2·3세들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1945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 1세대들이 가졌던 그나마의 일자리마저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디판은 얄리니, 일리얄과 함께 프랑스에서 가족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셋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디판은 난민 심사 전 돈을 벌기 위해 단속을 피해가며 거리에서 장난감을 팔고, 운 좋게 난민 심사에 통과한 이후엔 건물의 관리인을 맡는다. 관리인이라고는 하지만 청소부터 수리까지 사실상 남들이 꺼려하는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는 직책이다. 얄리니는 아파트에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가정부로 취업한다. 500유로라는 적은 금액의 월급에도 얄리니는 뛸 듯이 기뻐한다. 난생 처음으로 집다운 집을 가져본 일리얄은 자신의 집에서 눈치를 보며 중개인에게 “물 먹어도 돼요?”라고 묻고, 그런 그들에게 중개인은 “그럼, 이제 자기집인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순탄한 시작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프랑스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건물의 고장난 전등을 고치는 디판 ⓒ영화 ‘디판’ 공식 스틸컷

  가족으로 위장한 세 명 사이엔 어떠한 유대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서로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길 뿐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가장 상처받는 건 단연 일리얄이다. 이민자 심사 전 얄리니와 디판은 서로에게 일리얄을 떠넘기려한다. 일리얄은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고스란히 듣는다. 프랑스 학교에 일리얄이 처음 간 날 일리얄은 자신을 버리고 가지말라며 뛰쳐나오지만, 디판은 그런 일리얄에게 어떠한 감정적인 위로도 해주지 않는다. 디판은 본인들이 일을 할 동안 일리얄은 불어를 배워야 프랑스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리얄은 디판의 설명을 듣고 힘겹게 학교로 돌아간다.

   그러나 외지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학생들은 일리얄을 놀이에 껴주지 않는다. 얄리니는 한껏 차려입고 친구들과 걸어가는 또래 프랑스 여성들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지만, 자신은 결코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표정이다. 디판은 종종 아파트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들과 맞지 않음을 느낀다. 집에 돌아온 디판은 얄리니와 대화를 시도한다. 일리얄은 디판의 방에 찾아가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본다. 삭막했던 그들 사이에 유대감이 싹트는 순간이다. 

디판과 함께 신문을 읽는 일리얄 ⓒ영화 ‘디판’ 공식 스틸컷

스스로이기를 포기하는 순간들 

  디판과 얄리니, 일리얄은 프랑스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의 성과는 대체로 절망적이지만, 때로 영화는 사회의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중반부에 디판은 다른 이민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영화에서 몇 안되는 디판의 밝은 모습이다. 이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여러 색깔의 나뭇잎이 뒤섞인 풀밭과 흰색, 황색, 검은색이 엇갈려 칠해진 건물의 모습은 각양각색의 인종과 정체성이 본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어우러지는 문화 모자이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곧 그들은 프랑스에 적응하려면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지워야 한다는 걸깨닫는다. 정체성을 지우는 행위는 프랑스가 이민자들에게 바라는 태도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민자가 아무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해도 그들은 결코 프랑스 내부 세계에 접근할 수 없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얄리니는 밖에 나갈 때마다 남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그런 그녀에게 디판은 히잡을 쓰라고 조언한다. 얄리니는 본인의 종교가 아니라고 거부하지만 이내 시선을 피하기 위해 히잡을 두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이민자들이 이민자들의 세계에서만 섞일 뿐, 프랑스 사회와는 어울리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에게는 이민자 내부 집단 속의 또 다른 소수성(이슬람)의 영역으로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다. 프랑스 사회로의 진입은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다. 

  영화 후반부 르 프레에서는 테러로 인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디판은 아파트에 갇힌 얄리니를 구하러 간다. 전쟁을 피해 다다른 곳에서 디판은 다시 한 번 전쟁을 경험한다. 디판은 얄리니를 구하기 위해 총격전에 휘말리는 걸 서슴지 않는다. 마침내 겁에 질려 숨어 있는 얄리니를 발견한 디판은 얄리니를 꼭 안아준다. 이후 영화는 몇 년 후 세 명이 단독 주택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비현실적인 광경은 역설적으로 관객들에게 그들이 프랑스에서 절대 ‘어울림’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난민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에서, 디판은 결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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