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그가 남기고 간 이야기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 년을 돌아보다
▲김미숙 씨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의 분향소를 향해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김미숙 씨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의 분향소를 향해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49주기였던 지난 11월 13일 故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시민들과 함께 전태일동상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추위를 뚫고 행진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월 11일에는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가 광화문광장에 김 씨의 추모분향소를 설치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故김용균 씨는 지난해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의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 벨트 밀폐함 점검구에서 컨베이어 설비상태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협착해 숨진 노동자로, 사고 당시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남겨진 이들이 일 년이 다 되도록 아직 거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용균, 그가 남기고 간 이야기를 돌아봤다.

예고된 죽음

 IMF 외환위기 이후 1999년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2001년 한국전력공사(한전)는 5개 발전사(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를 자회사 형태로 만든다. 2013년 발전사는 ‘시장의 효율성 및 안정성 제고가 가능한 최적의 경쟁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며 발전정비산업 경쟁 도입을 결정한다. 경쟁에 참여한 하청업체들은 절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었다. 원청과 하청 간의 계약이 3년 단위의 단기 도급계약 형태였기 때문에, 다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청업체는 ‘갑’인 원청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갑을관계 속에서 ‘병’에 해당하는 사람이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원청과 하청 모두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힘들고 위험한 일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몫이 됐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간 한전 산하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총 346건) 중 97%(337건)는 하청 노동자가 당한 사고였다. 하청업체는 안전사고를 숨기기 급급했다. 산업재해 발생 사실이 다음 입찰 경쟁에서 감점 요소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의 외주화’ 구조를 낳은 입찰 경쟁에서 사업을 따낸 하청업체가 바로 故김용균 씨가 몸담았던 한국발전기술이었다. 입사 세 달 차 신입사원 김용균 씨는 그렇게 죽음의 현장으로 내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만이 김용균 씨의 죽음을 예고한 것은 아니었다. 김 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2010년부터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김 씨의 동료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해 사측에 항의했다. 이들은 트랜스퍼 타워의 턴오버 구간(고속으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방향을 전환하는 곳)에 살수설비장치를 설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위험하게 돌아가는 회전체에 사람이 상체를 집어넣어 작업을 하는 대신 밖에서 물을 뿌려 청소를 할 수 있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묵살됐고, 돌아오는 것은 ‘다치면 너희 손해니까 너희가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김 씨는 바로 그 턴오버 구간에서 작업을 하다 참사를 당했다.

  김용균 씨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위험작업 시 2인 1조 원칙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한국발전기술의 작업지침서에도 명시돼 있는 이 원칙은 ‘원칙’에 불과했다. 김 씨는 사고가 난 그날도 야간에 홀로 일하고 있었다. 기계에 딸려 들어가는 김 씨를 밖에서 잡아줄 사람도, 기계의 작동을 멈춰줄 사람도 없었다. 줄을 당기면 기계가 멈추는 방식의 안전장치만이 있었다. 그마저도 평소 줄이 팽팽하게 유지되지 않고 축 늘어진 채로 관리돼 김 씨의 죽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김 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모든 기회들이 날아갔다. 그러나 사고 직후 회사는 오히려 책임을 김 씨의 부주의로 돌렸다. 사고 이후 故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회사로부터 들은 첫마디는 ‘김 씨가 가지 말라는 곳을 갔고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는 말이었다.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자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지켜지지 않은 국가의 약속들

  매년 약 2,4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는 곳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압도적 1위 국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이렇게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국가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2018년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범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20만 원에 불과하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책임자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전체의 0.5%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쳤다. 2017년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한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의 경우에도 법원은 삼성중공업 관리자들과 관련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 속에 사업주들로서는 안전 설비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다. 안전 설비에 투자하는 것보다 벌금이나 과태료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싸기 때문이다. 故김용균 씨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 역시 사고 이후 뒤늦은 특별안전보건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을 1,029건이나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균 씨의 사고 이후 들끓는 비판 여론에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故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국회를 방문해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통과를 호소했다.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약속은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다. 고용노동부 역시 유해·위험 작업의 무분별한 도급을 엄격히 제한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것이 법 개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용균법에 정작 ‘김용균’은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재계의 강한 입김으로 인해 법이 대폭 후퇴해, 정작 김 씨가 일했던 화력발전소와 같은 전기사업 설비 관련 업장은 외주화 금지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김용균 씨의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약속을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유가족이 참가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위험의 외주화 중단 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2월 5일 김 씨가 일했던 발전소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를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2월 18일에는 문 대통령이 김 씨의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4월 3일 비로소 국무총리 산하에 ‘故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발족했다. 8월 19일 특조위는 ▲노동안전을 위한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 ▲노무비 착복 금지와 입찰제도 개선 ▲노동안전을 위한 필요인력 충원 ▲노동안전과 국민의 편익 향상을 위한 민영화·외주화 철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련 등을 골자로 하는 22개의 개선 권고안을 제출했다. 다음 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에 특조위 권고안을 정책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당정(黨政) 발표와 특조위 권고는 김 씨가 죽은 지 일 년이 돼가는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 이준석 태안화력지회장은 “우리가 지난 11월 11일부터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정부에 특조위 권고안 이행을 요구하기 위함이다”라며 지지부진한 정부를 규탄했다.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노동자들이 농성 천막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그렇다면 故김용균 씨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이준석 지회장은 특조위 권고안에 나와 있는 대로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라 주장했다. 직접고용을 하면 지금과 같은 원·하청 간 책임 전가 현상이 없어지기 때문에 설비개선에 투자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안전한 일터가 조성될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 지회장은 “위험한 업무에 대해 정규직은 당당하게 ‘이거 위험하다’, ‘나 혼자 못 간다’라고 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거부하거나 항의할 수 없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가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석 지회장의 말을 증명하듯 신분에 따라 목숨 값이 다르다는 경영진의 발상이 드러난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8월 19일 <MBC> ‘스트레이트’ 보도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이 작성한 ‘내부 경영실적 평가편람’이라는 문서에 산업재해로 사람이 숨졌을 때 원청 직원은 1.5점, 하청 직원은 1점, 일용직 건설 노동자는 0.2점을 깎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중부발전의 경우 노골적으로 ‘신분별 감점 계수’라는 표현과 함께, 원청 직원이 숨지면 12점을 깎지만 하청 직원이 사망하면 4점만 감점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하청 직원 3명이 죽어야 원청 직원 한 명이 숨진 것으로 친다는 뜻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무거운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영국은 이미 2007년에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제정됐고, 호주의 경우 기업에 대해 독립적으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을 형법에 마련하고 있다. 특조위는 故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 결과 종합보고서에서 ‘기업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벌금을 부과하고, 인허가 제한·범죄사실 공표 등 실제 기업 운영과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미숙 씨가 퇴근길 피켓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준석 지회장은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그 살얼음판에 올라와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지 일 년이 돼가는 어머니 김미숙 씨는 “모르고 있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면서 “용균이의 피켓 든 사진이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아직 처벌받은 책임자는 아무도 없기에 현장의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느낀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어머니는 아들이 내준 숙제를 열심히 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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