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을 찾아 거리로 나오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 이윤경 활동가와의 만남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 신림역 5번 출구로 나와 도림천에 이르면 하얀 버스와 천막이 보인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청소년의 말소리와 웃음이 새벽 거리를 채운다. 신림동의 거리청소년들에게 ‘도림천 밥차’로도 알려진 ‘EXIT(엑시트)’ 버스는 매주 금요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거리의 청소년들을 위해 열려있다. 엑시트는 사단법인 ‘들꽃청소년 세상’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아웃리치’ 활동으로 2011년에 시작됐다. 아웃리치는 활동가가 지역사회의 봉사 대상자를 직접 발굴해 필요한 긴급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청소년 아웃리치 봉사는 IMF 사태 당시 많은 가정이 경제적 위기에 처해 붕괴된 데서 비롯됐다. 쉴 곳을 잃은 청소년들은 집을 나와 거리로 향했고, 그들에 대한 대책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아웃리치다. 엑시트는 기동성이 담보된 버스를 아웃리치의 공간으로 채택해 거리청소년을 발굴하고 있다.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간식이나 식사, 긴급구호물품 등을 제공하고 상담 및 법률서비스를 지원한다. 

  엑시트에 찾아오는 거리청소년들 중 다수는 가정폭력과 학대 수준의 방임을 겪고 있는 탈가정 및 탈학교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떠들고 놀기도 하며, ‘활동가’라고 불리는 엑시트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근황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엑시트에서 거리청소년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윤경 활동가를 만났다.

‘너무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이윤경 활동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으로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장애인권활동을 했었다. 장애인권운동가의 길을 걷다 갑작스레 거리청소년 대상 자원 활동가가 된 이력은 언뜻 독특해보이나 본인의 입장은 다르다. 이 활동가는 “사실 사회적 대우나 처한 어려움의 측면에서는 장애인과 청소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뜻하지 않은 장애로 고통을 감내하게 된 장애인과 부모의 학대나 방임으로 거리로 나오게 된 거리청소년 모두 자의가 아닌 외부 환경으로 인해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는 그들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쉽게 규정하고 시야에서 지워버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난곡 들꽃청소년세상 본부에서 만난 이윤경 활동가

  장애인권과 청소년인권의 접점을 인식하고 있던 이윤경 활동가에게 엑시트의 활동가들이 함께하자고 제안해왔다. 이 활동가는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5월부터 엑시트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선 “엑시트가 너무나 중요한 공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짧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이 활동가는 대한민국 청소년 복지의 미진함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청소년 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너무도 열악하지만, 그나마 최근엔 발전적 복지로 이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청소년 복지는 여전히 20세기 초반의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 이 활동가의 생각이다.

  이윤경 활동가는 국내 청소년 기관이 극히 부족할 뿐 아니라 각 제도와 시설들이 청소년의 온전하고 건강한 자립을 지원하기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느껴왔다. 거리청소년들은 청소년 쉼터를 주로 이용하는데,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의 현황 보고에 따르면 서울에는 현재 19개의 쉼터가 있을 뿐이다. 이 활동가는 “거리청소년들은 쉼터를 많이 이용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간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시설보호의 대안으로서 등장한 가정형 주거공간인 ‘그룹홈’ 역시 거리청소년 보호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활동가는 그룹홈의 운영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입장이다. 거리청소년들을 통해 그룹홈에서 과도하게 엄격한 생활규칙을 강제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무조건 핸드폰을 반납해야 한다’, ‘주말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 안 된다’ 등의 내규가 대표적인 예다. 이 활동가는 엄격한 내규에 답답함을 느낀 청소년들이 엑시트가 인계한 그룹홈에서 나와 다시 엑시트로 돌아올 때가 많다고 전하며 “내가 살 수 없는 공간을 그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는 청소년들의 진로와 취업, 자립을 도우려는 긍정적 취지에서 시작돼 주로 거리청소년의 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기관이다. 그러나 이윤경 활동가는 이 시설이 거리청소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의식주와 같은 생존의 위험에 당면해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가는 거리청소년에게 검정고시 준비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에선 청소년 개인의 자율적 의사보다는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교육을 일괄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배제하기 쉽다. 

  이윤경 활동가는 거리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청소년이 중심이다’라는 슬로건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엑시트는 거리청소년이 방문하면 필요에 맞는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메뉴판’이라고 불리는 종이에 원하는 내용을 체크하도록 한다. 메뉴판은 가벼운 상담 요청부터 청소년으로선 쉽게 언급하기 힘들 수 있는 성 관련 용품까지 포괄하고 있어 청소년들이 가능한 부담 없이 도움을 요청하도록 한다.  

▲‘엑시트’에 방문하는 청소년들에게 제공되는 ‘메뉴판’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들 스스로는 나이에서 비롯된 위계구조를 지우고 청소년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윤경 활동가는 매년 청소년들이 직접 진행하는 평가에서 나온 흥미로운 말을 전했다. ‘엑시트는 다른 시설에 비해 ‘꼰대력’이 떨어지고 나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 활동가는 “이들에겐 비청소년들로부터 환대를 받는 경험이 흔치 않다”며 “여기서만큼은 그런 환대를 받게 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밤새 이어지는 힘든 활동에도 불구하고 엑시트를 찾아오는 청소년에게 언제나 열렬한 환영을 보내는 이유다.

가정폭력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거리청소년의 상당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탈가정을 선택한 이들이다. 이윤경 활동가에 따르면 매주 평균적으로 여름에는 70여 명, 겨울에는 40여 명의 거리청소년이 신림역 엑시트를 방문하는데 이 중 80% 이상이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이다. 이 활동가는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상황 자체를 안타까워하며, 일단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가 형성해 온 가족 중심의 순응적인 가치관은 가정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자녀 스스로 가정폭력의 고통을 참게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부모의 체벌을 정당화할 수 있는 현행 법률의 문언이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민법 제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라며 부모에 의한 징계권을 규정한다. 여기서 ‘징계’에는 체벌이 포함될 여지가 있다. 이는 교육과 학대의 경계를 흐린다. 이로 인해 친권자 체벌권에 대한 논란이 일어 법률 개정 필요성이 논의됐으나 아직까지도 미해결 상태인 것이 한국 사회의 현주소라고 이 활동가는 설명했다. 

  거리청소년은 폭력을 피해 가정을 뛰쳐나오지만, 거리에는 의료지원은커녕 의식주라는 삶의 기본마저도 준비돼 있지 않다. 나아가 사회에 홀로 남겨지며 각종 차별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윤경 활동가는 이른 시기부터 범죄의 가해자가 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면서 사법 절차를 경험하는 거리청소년들에게 비청소년만큼의 사법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일례로 재판 이후 청소년에게는 판결과 처분의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나이가 어리니까 당사자여도 벌을 받는 이유는 몰라도 된다’는 사회적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윤경 활동가는 이후 처분의 집행 과정의 문제도 언급했다. 청소년 보호처분 6호인 보호시설 감호위탁은 청소년 범죄자를 시설의 보호 하에 두지만 청소년을 교화하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허용하는 등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활동가는 “보호감호 시설은 결국 청소년들을 가두는 감옥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소년원은 자유를 비롯한 인권 침해가 보호시설보다 훨씬 심각한 실정이다. 이 활동가는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소년원에 입소한 이들 중 약 50%가 감정 기복이 심한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근의사가 배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병 약을 처방받고 약물을 복용 중”이며 “언제 어디서 싸울지 모른다며 욕실 안에까지 CCTV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도 보호시설이나 소년원을 바꾸려는 노력이 부재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윤경 활동가는 가정폭력을 피해 뛰쳐나온 거리청소년들을 수용할 대안이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다 촘촘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에 따르면 집에서 나온 가정폭력 피해 청소년들은 아파도 진료를 망설인다. 진료비가 비싸다는 이유도 있지만, 진료 기록이 남아 부모가 쫓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이 더 크다. 청소년이 거리로 나와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지원체계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이윤경 활동가는 ‘거리청소년과의 교류 과정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질문에 한 거리청소년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엑시트에 방문하는 청소년이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나면, 약 5만 원 정도의 활동비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 활동가가 만난 한 거리 청소년은 그 돈을 받으면 옷도 사고, 핸드폰도 살 거라며 신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 청소년이 활동비 모두를 친구에게 비싼 뷔페를 사는 데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놀란 이 활동가가 왜 힘들게 번 돈을 스스로를 위해 아껴 쓰지 않고 그렇게 한 번에 써버렸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걔랑 같이 살아야 되잖아’였다. 이 활동가는 이때 그룹홈에서 사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거리청소년은 다른 청소년들처럼 집이라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주거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리청소년들에게는 일상의 매 순간이 전쟁이다.

    그러면서도 이윤경 활동가는 관계를 형성하며 변화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 “처음에는 입을 열 때마다 욕을 조사처럼 하던 이가 활동가들과 관계를 맺고 얽히는 순간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이 활동가는 “재미가 없다면 (엑시트를) 계속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저 사람이랑 말 한 마디 편하게 나눌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거리청소년에게 다가가서 함께 주거 문제 등을 해결해보자는 제안을 하는 순간이 바로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다. 

  이윤경 활동가는 “청소년은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면 활동가의 제안을 훨씬 더 귀담아 듣는다”고 말했다. 거리청소년들이 비청소년에 대해 갖는 적개심이 “이전까지 이들에게 다가온 어른들은 대부분 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활동가는 청소년들이 비청소년에게 마음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내가 겪어 왔던 시기라고 해서 모두가 나와 같은 시기를 겪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엑시트’ 버스 내부 전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각자의 어려움이 있듯이 청소년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 이윤경 활동가는 그저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초면에 반말을 쓰지 말고, 또 어리다고 함부로 말을 걸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함부로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소한 습관이 곧 청소년에 대한 비청소년 인식 전환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청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려는 엑시트 활동가들의 노력은 오늘도 엑시트 버스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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