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전공 신청 기간마다 학내 커뮤니티는 ‘학점컷’ 얘기로 들썩인다. 여러 전공을 찔러보듯 신청하는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합격 기준 평점이 점차 오르는 추세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학생회(총학)는 학사제도 관련 설문을 진행하고 본부에 다전공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학사과는 지난 1월 2일 다전공제도 개편안을 발표해 2020학년도 2학기부터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본부가 문제를 인지하고 개편한 데 의의를 두면서도 개편안의 효과에 의문을 던졌다. 이번 개편안이 도출된 과정을 돌아보며 그 실효성을 점검하고, 다전공제도의 앞길을 그려봤다.
다전공제도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전공의 대표격인 복수전공제도의 역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는 1997년 7월 ‘서울대학교복수전공이수규정’을 마련해 이듬해 1학기부터 시행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해 기존에 편입이나 전과만 가능했던 단일전공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취지에도 정작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학생 수는 많지 않았다. 안내 부족과 졸업 지연 등의 현실적 제약 때문이었다. 연합전공 또한 학제 간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2002년부터 시행됐지만, 학생들의 호응이 클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지원자 수가 미미했다. 첫 모집 결과 총 선발 인원이 정원의 56%에 그쳤고, 이후로도 지원자가 점차 감소해 2005년한국학 연합전공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복수·연합전공의 실적이 저조했던 원인으로 제도의 미비함이 지적됐다. 본부는 용이한 복수전공을 위한 수업 환경 개선을 비롯해 대학 당국의 행정적·재정적 지원 확대, 연합전공의 고유한 커리큘럼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서울대는 2007년 ‘복수전공 및 연합전공제도 개선 방안’을 기획하고, 연계전공과 학생설계전공을 신설해 2008년 1학기부터 ‘제2전공 의무화’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선 ‘의무화’ 조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해당 조항에 반대하기 위해 ‘관악교육투쟁특별위원회’가 발족될 정도였다. 이에 의무화 조항이 삭제된 채 2009년부터 제2전공제가 실시됐고, 이것이 오늘날의 다전공제도로 이어졌다.
전공 선택 기회의 다변화는 ‘2007-2025 서울대 장기발전계획’과도 맞물려있다. 이미 서울대는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학부와 대학원 수업의 초점을 각각 교양과 전공으로 차별화한 것이다. 그 결과 학부에서는 전공 탐색 기회 보장이 중요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장기발전계획은 미래사회 인재 육성 방안으로 복수·연합전공 확대와 자유전공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당시 제2전공 의무화 추진 과정에 참여했던 신정철 교수(교육학과)는 “학과 간 장벽을 낮춰 학생들이 타전공을 자유롭게 듣고 폭넓게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 (제2전공 의무화의) 취지였다”고 회고했다. 다만 신 교수는 심화전공 도입 배경과 관련해 “몇몇 단과대에서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할 전공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심화전공을 주장했다”며 학과 간의 장벽이 여전히 견고하다고 지적했다.
다전공제도는 제2전공제를 통해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복수전공의 경우 지원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제2전공제가 실시된 2009년엔 374명이 복수전공에 지원했고, 이듬해 432명으로 증가하더니 2015년엔 910명에 달한 것이다. 학생들은 다전공 이수 활성화라는 제도의 취지에 긍정적이다. 인문대생 A씨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이 융합의 측면에서 좋다고 생각한다”며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할 때와는 차별화되는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장호(천문 18) 씨 또한 “학부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고 만약 마음에 드는 분야가 있다면 대학원에서 더 깊이 공부하면 될 것”이라며 다전공제도의 순기능에 만족해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다전공 이수의 활성화는 순기능뿐 아니라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인기’ 학과의 경우 다전공생들이 몰려 강의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지난해 4월 총학이 진행한 ‘학과별 강의 실태조사’ 결과 경영학과와 디자인학부, 컴퓨터공학부 등에서 강의 공급량에 비해 다전공생 및 타과생 수강 인원이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학과에선 타과생의 수강 제한이나 전공별 순차적 수강신청을 시행하고 있지만 전공생들은 여전히 수강신청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경영대생 B씨는 “전공선택 과목의 경우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며 “특히 회계 과목은 주전공생 기준으로도 ‘2픽’ 선에서 끝난다”고 털어놨다. 이어 B씨는 “후순위인 복수전공생과 부전공생은 듣고 싶은 강의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수강반 제한이 필요한 이유다.

‘학점컷’ 상승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전공 진입을 위한 평점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다전공에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채운(서어서문 14) 씨는 “높은 평점 기준 때문에 (몇몇 전공은) 꿈도 못 꾼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며 “마치 대입처럼 평점에 맞춰서 가게 되는 학생들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평점 기준 상승의 원인에 관해 총학 이태경(정치외교 17) 전 교육정책국장은 “한 번에 다전공을 많이 신청하는 사람들은 적지만 그로 인해 타 학생들이 불합격하거나 불필요하게 학점컷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평점 이외의 선발기준을 포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점컷 상승이 문제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평점 위주의 평가 기준에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정채운 씨는 “다전공제도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선발 과정에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포함해 다전공 신청을 진지하게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 수강 이력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박미선(종교 15) 씨는 “대학에 와서도 본인의 관심도나 역량이 아닌 단순한 숫자로 평가받는 게 불만”이라며 “관련 교양이나 전공 등 이수경력의 고려가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제2전공제 실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서울대저널>은 2014년 기사 ‘복수전공, 이대로 괜찮은가’에서 높아지는 복수전공 평점 합격 기준 및 무제한으로 가능한 다전공 신청 개수 등을 비판했다. <대학신문> 1917호의 ‘전공 다양화 위한 복수/부전공 제도, 그 속에서 드러난 문제점’ 또한 평점 평균이 다전공의 유일한 선발기준으로 활용되는 점을 꼬집었다. 이태경 전 교육정책국장은 “문제 해결의 노력이 누적되지 못했다”며 자료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총학이 실시한 설문조사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다전공제도 개편, 성과와 한계
총학은 지난해 2월과 4월 각각 ‘수강신청 사례조사’와 ‘학과별 강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9월 교육환경개선협의회에 다전공제도 개선안을 제안했다. 올해 1월 학사과는 총학의 제안을 일부 반영해 다전공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2020년 2학기부터 ▲다전공 신청 시기 조정 ▲다전공 신청횟수 및 총 이수 가능한 개수 제한 ▲다전공 신청자격 조정이 이뤄진다. 또한 각 단과대에 다전공 중도 포기로 인한 잔여석 이월과 제2전공생 평가요소 확대가 권고됐다.

당시 총학이 제시한 개선안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이태경 씨는 “(중도포기 등으로 인한) 빈자리를 줄여 실질적인 자리를 최대한 확보하고, 타전공을 제대로 이수하려는 학생에게 기회가 돌아가게끔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총학이 처음 제안한 ‘최대 등록가능 제2전공 수 제한’은 다전공 신청 및 이수 개수 제한으로 최종 반영됐다. 이는 무제한 신청으로 인한 학점컷 상승을 방지하고 이수 계획이 없는 다전공 등록 취소를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이태경 씨는 “(다전공을) 3개까지 신청한 학생들은 많았던 반면 4개부터는 학생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해 제한 기준이 3개로 정해졌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다전공 신청 시기가 앞당겨진 것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기존엔 다전공 진입에 성공하더라도 해당 학기엔 타전공생의 수강을 금하는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다전공 신청 시기가 수강신청 기간과 겹쳐 변동된 학적으로 수강신청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공학부 복수전공을 이수하는 이현종(통계 15) 씨는 “수강반 제한 때문에 개강 이후 남은 강좌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변화를 환영했다.
다전공 신청 및 이수 개수 제한에 관한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박규민(서어서문 13) 씨는 “정말 필요한 다전공만 신청함으로써 기존의 학점컷 상승으로 인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반면 배장호 씨는 “신청 개수 제한에도 인기 학과의 경쟁률이 내려갈 것 같진 않다”며 개수 제한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다전공제도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완해야 할 지점들이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다전공 미이수자로 인한 공석 발생이다. 현재는 다전공 이수를 취소한 인원만큼 다음 학기로 이월해 선발하도록 각 단과대에 권고된 상태다. 각 학과는 연간 복수전공 이수자를 3학년 정원의 100% 이내로 선발할 수 있어, 1학기에 발생한 취소 인원만큼 2학기에 추가 선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태경 씨는 “이수하지 않는 다전공의 취소를 유도하기 위해 이수 가능한 다전공 총 개수를 6개로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학기 취소 인원은 다음해로 이월되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지며, 이번 조치로 학생들이 다전공을 즉시 취소할지 미지수라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선발 요건 다양화는 이번 개편안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 각 단과대에 평가 기준 다양화가 권고된 상태지만, 권고의 실제 이행 여부는 알 수 없다. 다전공 선발은 개별 학과에서 주관하는 만큼 본부 차원에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석민 교무처장은 “선발의 공정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다전공제도의 취지에 맞게 평가 요소를 확대하는 데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점만이 공정하다는 인식을 깨야만 비로소 취지에 맞는 다전공 선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공 심화에서 학문 융합으로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다전공제도 개편은 학과 간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제한된 강의 공급으로 인해 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몰리는 인기 학과에서 타과생의 수강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전공 탐색 기회를 막기도 한다. 수강반 제한 설정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A씨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할 수 없거나 혹은 할 생각까진 없는 학생들도 타전공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며 과도한 수강반 제한을 비판했다. 또한 다전공 진입을 해야만 전공 이수를 인정해주는 현행 제도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진입 없이도 자유롭게 전공 탐색을 하고 이수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졸업시 부전공 이수를 인정해주는 연세대학교의 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에 대해 신석민 교무처장은 “다전공 이수를 추후에 인정해주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이는 학생들의 수요가 몰리는 학과의 강의 공급 문제가 먼저 개선돼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전공제도의 문제는 대학 학부 교육의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학 교육의 목표는 전공별 심화 지식을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학문 간 융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제2전공제 시행의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학과별 전공 중심의 교과과정을 강조할 경우 다전공제도의 취지는 무색해진다. 신석민 교무처장은 “특정 학문의 학사학위를 받기 위해 기본적으로 학습해야 할 지식의 양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전공 위주의 경직된 교과과정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질문하며 배움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포괄하는 교육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내다봤다.
모든 변화는 구성원의 합의로부터 출발한다. 이미 학부 교육에 대한 논의의 발판은 마련됐다. 작년 2학기부터 학부 다전공제도 및 대학원 협동과정 등의 운영 실태와 개선방안에 관한 기획 과제가 진행 중이다. 교육위원회는 작년 12월 학부 교육 개선을 목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올 4월 포럼을 열 계획이다. 신석민 교무처장은 “기획과제 결과에 따라 학생 및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부터 근본적인 개선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공 지식과 학문 융합 사이에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과 합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