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예술을 적는 방법

전통과 현대, 원칙과 변용의 갈림길에서
양사언 초서(부분) 양사언, 41.5×123.3㎝, 서강대학교 박물관 ⓒ문화재청

  서예는 잘 알려져 있지만 친숙하지는 않은 예술이다. 서예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대답할 사람은 적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서예 전시를 찾아다니면서 보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서예는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한두 번 해본 것 이상의 인지도를 가지지 못한다. 대중적 인지도 하락과 신진 작가 유입의 감소로 위기에 처한 서예계는 전통을 지키면서 살아남기 위한 고민에 빠져있다. 재미있게도 생존을 위한 이 고민은 새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이 글씨를 아름답게 하는가

  서예는 글씨를 쓰는 예술 행위이다. 그중에서도 붓과 먹물을 이용하는 전통 예술을 가리킨다. 서예의 특징은 글과 그림의 양면성이다. 서예를 하는 것은 글자를 쓰는 행위이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르게 글의 내용만큼 글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 따라서 서예는 글쓰기면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회화적인 성격을 가진다. 

양사언 초서(부분) 양사언, 41.5×123.3㎝, 서강대학교 박물관 ⓒ문화재청

  ‘양사언 초서’에서와 같이 회화성을 극대화해 글의 가독성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예를 쓸 때 그림을 그리듯이 선을 덧칠할 수는 없다. 글자의 모든 선과 점은 붓을 종이에 대고 떼는 한 번의 움직임으로 완성된다. 그림에 가까워진 서예는 이 점에서 다시 글씨로 돌아간다.

  아름다운 글씨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예에서 좋은 글씨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은 있다. 먼저 정교한 붓놀림으로 글자를 이루는 선의 처음과 끝을 지저분하지 않게 맺어야 하고, 가는 선과 굵은 선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글자를 구성하는 선과 점을 적절히 배치해 이들 사이의 공간이 너무 멀거나 좁아선 안 된다. 이렇게 글자가 만들어지면 각각의 글자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미적 요소를 갖추기 위해 서예가들이 선택하는 수련 방법은 모방이다. 옛날 혹은 오늘날의 좋은 글씨들을 보고 따라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형태만 모방하는데, 어느 정도 숙련된 후에는 원작자의 붓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거기에 맞춰 붓의 속도와 리듬을 조절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닮고자 했던 남의 글씨를 자신의 것처럼 쓰게 되면 비로소 ‘원칙에 충실하게 쓴 괜찮은 글씨’를 쓸 수 있게 된다.

아름다움의 방향은 여러 가지

  서예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한석봉으로 알려진 서예가 한호의 ‘천자문’처럼 가지런하고 바른 인쇄체나 국가 외교 문서에 나올 법한 세련되고 고매한 글씨에 가깝다. 그러나 서예엔 훨씬 다양한 특징과 분위기를 가진 서체들의 전통이 있다.

광개토대왕비 탁본(부분) ⓒ도서출판서예문인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릉비는 한국사 뿐만 아니라 서예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흔히 ‘대왕릉비체’라고 불리는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씨는 소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그 질박함 때문에 서예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모방 수련의 대상이 된다. 중앙동아리 서예회 권대헌(자유전공 19) 회장은 “처음에 볼 때는 컴퓨터로 인쇄한 글씨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가지런하지 않고 어쩌면 이상해 보일 수 있는 글씨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박함, 화려함, 섬세함, 강인함과 같은 주관적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을 중요하게 볼지에 따라 서체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무일(無逸) 이승우, 64.0*125.0cm ⓒ이승우

  일반적인 심미적 기준을 과감하게 벗어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승우 작가의 ‘무일(無逸)’은 붓글씨를 쓸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번짐이다. 천 위에 먹으로 글씨를 쓴 이 작품에서 붓이 움직인 자국의 주변으로 먹물이 흐리게 퍼져나간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른 하나는 ‘일(逸)’ 자의 맨 아래 선에서 관찰되는 끊어진 듯한 부분이다. 획을 긋던 중에 붓이 천을 밀어 접힌 부분이 생겼고, 접힌 부분을 붓이 건너뛰며 도중에 획의 끊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작품은 완성됐고, 작가는 작품에 서명해서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에 출품했다. 손과 붓으로 글씨를 쓸 때 발생하는 우연과 변칙을 그대로 살려내 활용한 사례다.

  때로는 기존의 법칙에 없던 시도를 하기도 한다. 서예가 장영선 작가는 “법고창신(法古昌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예의 법을 공부했으면 응용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법고’에 매달려 ‘창신’을 어려워한다”라고 지적했다. 서예가 살아있는 예술이라면 서예가는 옛사람들의 훌륭한 글씨를 따라 쓰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글씨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희는 청나라 고증학이 발달하던 시기 중국에서 유학하면서 옛 명필들의 글씨를 새긴 비석을 보고 그 글씨를 익혔지만, 조선에 돌아와서는 ‘추사체’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서풍을 완성했다. 김정희의 글씨는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하며, 정교하기보다는 투박하다. 전북대학교 김병기 교수(중어중문학과)는 “김정희는 비문 연구에 기반한 당시 중국 서예에 한국적인 질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접목해서 한국에도 중국에도 없던 새로운 글씨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원칙을 고수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글씨를 만들어 낸 점이 김정희가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서예가가 된 이유일 것이다.

변용, 넘되 넘지 말아야 할 선

계산무진(谿山無盡) 김정희, 62.5*165.5cm,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러나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서예계에서 추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혔던 ‘계산무진(谿山無盡)’은 최근 위작 논쟁에 휩싸였다.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기존 미적 코드의 변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미술품 수집가 이용재·이용수 씨가 저서『추사정혼』에서 지적한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계(谿)’ 자의 양 밑 부분 획과 오른쪽 획이 시작하고 끝나는 부분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고 ▲‘산(山)’ 자의 가로획이 가늘게 그어져 허약해 보이고 수평을 이루지 못해 안정적이지 못하며 ▲글자의 배치 역시 ‘산(山)’자가 ‘계(谿)’ 자 밑으로 배치되지 않아 추사의 작품으로 보기에 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계산무진’은 결국 위작 논란을 해소하지 못해 2018년 2월 문화재청 보물 등록 심사에서 탈락했다.

  분명 ‘계산무진’은 서예의 원칙에 충실한 글씨는 아니다. 그러나 이승우 작가는 ‘계산무진’을 두고 “선이 지저분해 보일 수 있지만 뛰어난 실력자인 김정희가 ‘지저분한’ 붓놀림을 글자의 배치와 조화해 주어진 화면 안에 회화적으로 구성했다”고 평가한다. 정돈되지 않은 것 같은 선이나 낯선 글자 배치만으로 위작이라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작가는 이어 서 “굳이 흠을 찾자면, 마지막 ‘진(盡)’ 자의 맨 아래 선이 서예의 글씨로서의 원칙을 어기고 덧칠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작가는 “기본 필법을 넘어선 단계에서 작가의 흥취를 살리기 위해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은 전혀 흠결이 되지 않는다”며 ‘계산무진’에서 나타나는 원칙에 어긋난 필법이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더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경우 덧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을 쓰는 작가의 흥취와 기분을 상상하게 하며 바로 그 점이 작품의 예술성을 올린다는 것이다. 

‘계산무진’뿐 아니라 소위 ‘괴이하다’는 평가를 받는 수많은 김정희의 작품들이 진위를 두고 논란에 휩싸여 있다.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런 논쟁은 서예에서의 변칙을 잘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한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과 중국국가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해 베이징에서 열렸던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전시회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전시하면서 이른바 ‘괴(怪)의 미학’을 주된 화두로 삼았다. 이를 두고 김병기 교수는 “김정희의 글씨는 독창성이 강해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괴의 미학’을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김정희 스스로는 ‘괴의 미학’을 강조하다 보면 사이비가 준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괴’를 오히려 경계했다”고 지적했다. ‘계산무진’이 걸작인지 졸작인지, 혹은 진작인지 위작인지는 변칙이 허용되는 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그 선은 명망 높은 서예가였던 김정희에게도 쉽지 않은 물음이었다.

캘리그래피, 서예의 새 얼굴이 될 수 있을까

  캘리그래피는 서예와 마찬가지로 글씨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내는 예술이다. 본래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서예의 번역어였다. 그러나 오늘날 캘리그래피는 엄격한 규칙의 틀을 벗어난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형태의 문자 예술을 서예와 구별해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둘의 쓰임새는 비슷하다. 서예가 건물의 현판 글씨나 아름다운 시구를 적는 데 쓰였던 것처럼 캘리그래피도 상표, 간판 글씨나 감성적인 문구를 적는 데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서예가가 캘리그래피에 참여하면서도 서예의 전통을 잃지 않고자 노력한다. 이런 모습은 김정희를 비롯한 전통 서예가들이 자유와 변용, 서예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했던 과거와 비슷하다.

  이승우 작가는 “서예를 이해하고 숙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 어려움, 접근성 등의 요소를 생각하면 규칙에 덜 구속되는 캘리그래피가 현대인이 접근하기 유리할 수 있다”며 캘리그래피가 서예의 새로운 바람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캘리그래피가 서예에서 요구하는 격식을 갖추지 못할 수는 있지만, 대중들이 서예에 접근하려 하는데 장막을 드리울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최소 수개월에서 수 년간 다른 사람의 글씨를 모방한 후에야 자신의 글씨를 창작하게 되는 서예에 비하면 분명 캘리그래피는 진입장벽이 낮다.

  낮은 진입장벽은 캘리그래피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장영선 작가는 “캘리그래피로 인해 서예의 르네상스가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뚜렷한 정체성 없이 대중들의 눈높이와 감성에만 맞추는 방식이라면 한계가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장 작가는 인터뷰 중 자신의 메모장과 펜을 꺼내서 기자가 생각할 수 있는 ‘ㄹ’자를 자유로운 모양으로 그려 보라고 주문했다. 이어서 장 작가는 직접 ‘ㄹ’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연하면서 “이런 ‘ㄹ’과 같은 글자들이 무궁무진한 형태로 고전에 쓰여 있는데, 그런 것들을 공부하면 더 다양하게 표현할수 있다”며 전통을 자산으로 활용할 때 풍성한 창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영선 작가의 ‘ㄹ’ 시연 모습

캘리그래피의 등장은 서예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승우 작가는 캘리그래피가 서예의 새로운 바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원칙의 테두리에 갇히지 말고 대중들이 서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열어두되 서예의 현묘함을 숙제로 놔뒀으면 한다”며 캘리그래피가 서예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동시에 “직선적인 표현보다 점잖고 품위있는 전달이 더 가꿔진 모습을 갖출 수 있듯이 서예의 법은 캘리그래피로 하고 싶은 말을 더 품위있게 전달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며 서예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캘리그래피가 등장한 이후 서예계는 정체성과 새로움 사이에서 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성찰은 200년 전 추사체를 창안하던 김정희의 고뇌와 닮아있다. 그 점에서 캘리그래피의 등장은 새롭지만, 서예가들이 캘리그래피를 두고 하는 고민은 낯설지 않다. 흘러가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서예계의 고민이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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