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출발한 전문연구요원(전문연) 제도는 과학기술계(과기계)와 중소기업에 꾸준히 인력을 제공해왔다. 약 3년 반 동안의 존폐 논란 끝에 작년 11월 전문연의 존속이 결정됐지만, 병역자원 감소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문연의 존폐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문연 논란을 둘러싼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며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점쳐봤다.
존속과 폐지의 끝없는 줄다리기
전문연은 대체복무제도의 일종으로, 병력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잉여 인력을 연구 또는 제조·생산인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전문연이 처음 도입된 배경엔 본격적인 국가 경제개발계획의 시동과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연간 20만여 명에 달하는 잉여 병역자원이 있었다. 즉 전문연은 과기계 및 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고안한 자구책이었다.
전문연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국방부는 점차 가속화되는 저출생 현상과 그로 인한 병역자원의 감소를 근거로 1990년대부터 군 감축과 더불어 대체복무제도의 축소를 추진했다. 하지만 타 정부 부처와의 마찰과 과기계의 반발 등으로 전문연 폐지 논란은 매번 제도 연장 및 재검토로 끝났다. 국방부는 2015년까지로 연장된 전문연 제도의 존치 여부를 다시 검토했고, 그 결과 2016년 5월 언론을 통해 국방부의 이공계 병역특례제도 폐지계획이 보도됐다. 잉여 병역자원이라는 전문연의 전제가 흔들리며 또다시 전문연이 폐지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이에 과기계와 산업계가 즉각 반발에 나서며 전문연 존폐 논란이 다시금 불거졌다. 결국 정부는 2019년 11월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해 전문연 인원 감축 폭을 최소화했다. 이에 석사 전문연은 300명 감축됐으나, 박사 전문연 1,000명을 포함한 전체 2,200명 규모가 유지됐다. 이번 결정의 배경엔 작년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있다는 분석이다. 광주과학기술원 이기훈 교수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드러난 기술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할 수 없다”며 전문연을 통한 기초과학 육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병역자원 부족을 이유로 계속해서 전문연 폐지를 주장한 국방부가 압박에 못 이겨 전문연 존치에 손을 든 셈이다.
전문연과 국가 발전의 고차방정식
전문연 제도는 지금껏 이공계 대학원생의 심리를 절묘하게 활용해 인력을 확보했다. 군복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전문연은 학업 지속과 군복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문연으로 복무 중인 박윤수(물리천문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씨는 “기본적 인권도 보호받기 어려운 군대에서 최저시급보다 못한 월급으로 2년간 연구를 쉬고 싶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연 지망생인 오용재(물리천문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씨는 “전문연이라는 병역특례를 제공함으로써 유학 갈 친구들이 전문연을 지망하는 경우도 있다”며 전문연이 인력의 해외 유출을 일부 방지하는 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남우 연구원은 이를 ‘윈윈(win-win) 전략’이라 칭한다. 전문연이라는 제도 하나로 학생들은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고, 이공계 대학과 중소기업에서는 부족한 인력을 지원받아 업계의 발전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곽승엽 교수(재료공학부)가 이공계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연의 역량 및 연구기여도가 높다고 응답한 비율이 90%에 육박하고, 제도의 축소·폐지 및 다른 이유로 전문연이 연구실에 배정되지 못할 경우 ‘매우 타격이 크다’고 응답한 비율은 82.9%에 달한다. 곽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는 연구 현장에서 전문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연 제도는 산업계에도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중소기업연구원 노민선 연구위원이 발표한 ‘중소기업 병역대체복무제도의 효과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중소기업 전문연 1인당 매출액 증가 기여도는 4억 5,900만 원이다. 여기에 당시 중소기업에 복무한 전문연 숫자인 1,469명을 곱한 산업생산증가액은 총 6,750억 원 정도에 달한다. 노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병역대체복무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제도의) 항구화를 통한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윈윈 전략’은 작년 11월 발표된 대체복무제도 개편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부는 고급 연구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다는 판단하에 1천 명 규모의 박사 전문연 수를 유지하고, 석사 전문연의 중소기업 배정 인원을 855명에서 993명으로 늘리는 동시에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우대할 것이라 밝혔다. 과기계와 산업계를 동시에 신경쓴 포석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양옥석 인력정책실장은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관련 중소기업들의 소재 국산화가 국가적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며 석사 전문연의 중소기업 배정인원 확대를 환영했다. 석사 전문연의 대기업 전직을 막아 중소·중견기업의 연구역량 강화를 도모한 점 역시 성과로 꼽힌다. 양 실장은 “중소기업에 더 안정적으로 연구인력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기계는 전문연 제도가 유지되면 병력 부족을 딛고 국방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기훈 교수는 “미래의 국방은 병력의 숫자가 아닌 첨단무기체계와 이를 운영 및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에 좌우된다”며 국방 선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문연 제도의 축소·폐지가 국가 경쟁력의 약화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 또한 제기된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림원)은 작년 7월 ‘한림원의 목소리 제78호’를 발간하며 전문연 제도를 오히려 확대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림원 김성진 부원장은 “이공계 발전을 위해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제도의 성급한 변화가 아닌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병제라는 새로운 변수
과기계의 주장을 정리하면 전문연 존속을 통해 필요한 최소 병력의 수를 줄임으로써 병역자원 부족에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병력 감소 문제의 해결책으로 모병제를 도입하자는 주장 또한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출생률 하락으로 지속적인 인구감소가 예상되면서 모병제는 병역자원 고갈의 대안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김영삼 정부부터 군 규모의 감축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모병제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최근엔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에서 통해 모병제로의 단계적 전환을 제안하는 보고서가 발표돼 모병제 논의가 다시금 불거졌다. 민주연구원 이용민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50만 군(사병 30만) 및 병 복무기간 18개월을 유지해도 병역자원 확보 자체가 불가하다’며 병력이 아닌 질 중심으로 군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병제를 총선 공약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당분간 당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부는 장기적으로 모병제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년 9월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방부 정경두 장관은 ‘간부 정원이나 여군 인력 활용, 대체·전환 복무의 축소 및 전환 등 여러 방안을 갖고 대비 중’이며 ‘모병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작년 8월 국방부는 ‘20-24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숙련 간부 비율을 34.0%에서 40.4%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모병제 성격이 강한 간부 비율 확대를 통해 병력 감축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작년 11월 방송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첨단 과학장비 중심으로 전환해 병력 수를 줄여야 한다’며 ‘나아가 남북관계가 더 발전해 군축도 이루며 모병제 얘기가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병제가 실시될 경우 전문연 제도는 자연스레 소멸 수순을 밟는다. 이남우 연구원은 모병제 실시로 전문연이 사라지면 “과기계는 물론 산업계 또한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 지적했다. 전문연의 인력 유인 효과는 징병제라는 전제 하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모병제로 전환되면 전문연은 학업의 지속과 군복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란 지위를 잃는다. 전문연 제도로 국내 대학원 및 산업계로의 인력을 유치해온 구조가 무너질 경우 국내 대학원 진학률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곽승엽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연 제도가 없을 경우, 병역 이행 후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을 것이라 응답한 비율은 13.9%에 그친 반면 해외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비율은 49.0%로 나타났다. 설문 문항은 여전히 병역을 전제하고 있지만 설문 결과는 과기계가 우려하던 대학원 진학률 감소와 연구인력의 해외 유출이 지나친 걱정이 아님을 시사한다.
중소기업의 지나친 전문연 의존도 또한 문제다. 양옥석 인력정책실장은 “중소기업 부설연구소 대부분이 10인 미만 규모로 영세해 전문연 제도를 통해 부족한 연구인력 수급을 충당한다”며 “전문연 활용 중소기업의 85.1%가 동 제도를 확대 또는 최소한 현행 유지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의견조사에선 52.4%의 중소기업이 대체복무제도 배정인원 축소·폐지 시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라 응답하기도 했다. 양 실장은 “전문연의 폐지는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며 산업계의 현실을 전했다. 이에 대해 박윤수 씨는 “전문연으로만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건 사실 부끄러운 일”이라며 “전문연 제도가 없어도 오고 싶은 곳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
오랜 논란 끝에 폐지를 면했으나, 전문연 제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남우 연구원은 전문연 개편안을 두고 “미봉책으로 끝난 상황”이라 진단했다. 병역자원의 감소가 확실한 상황에서 국방부는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방부가 고수하는 병역자원 50만 유지 및 대체복무제도 감축 기조를 따라가면 전문연은 다른 대체복무제와 같이 축소·폐지의 길을 걷게 된다. 과기계와 산업계의 주장대로 전문연이 존속하거나 확대돼 국방 선진화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모병제 논의가 가속화될 경우엔 전문연은 저절로 사라진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방향에 따라 전문연 제도의 앞길이 달라지는 것이다.

전문연 폐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과기계와 중소기업의 몫이다. 과기계와 산업계에서 전문연 폐지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전문연 제도에만 매달려서는 이공계 및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난해 7월 ‘전문연구요원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의 ‘병역제도가 대학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국방부 이인구 인력정책과장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과기계와 산업계를 지탱하기 위해 병역제도라는 ‘넌센스’ 대신 제대로 된 주춧돌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은 전문연만큼 간편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연은 징병제 하에서 병역특례의 특성을 이용해 이공계 및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뚫고 인력을 확보해왔기 때문이다. 이남우 연구원은 “모두 전문연이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굳이 전문연의 폐지를 고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연의 향방이 여전히 묘연한 상황에서 전문연 제도만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해결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전문연을 둘러싼 논의가 존폐 논란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