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개인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야 할 공간이다. 형법은 ‘주거 생활의 평온’을 보장하기 위해 주거침입을 처벌한다. 그러나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곧 여성 대상 성범죄의 ‘손쉬운 타겟’이라는 의미로 전락한 지 오래다. 1인 가구 여성이 겪는 주거 불안의 중심엔 여성 대상 성범죄에 대한 불안이 자리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성폭력 범죄 23,478건 중 약 23%인 5,319건은 주거시설에서 발생했으며, 약 14%인 3,264건은 길거리에서 발생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부터 집에 도달해 머무르는 시간이 누군가에겐 살얼음판이 된다는 얘기다.
신림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부모님들이 딸과 함께 집을 보러 오면 신림동 사건을 언급하면서 많이 걱정한다”며 “(소개한 집의) 밤 귀갓길이 으슥하진 않은지, 여성 전용 원룸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여성의 주거 안전에 대한 위협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무엇이 여성의 집을 둘러싼 안전의 울타리를 위태롭게 만들었을까.
법이란 울타리는 누구를 위하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2장 제3조(특수강도강간 등)
①「형법」제319조제1항(주거침입), 제330조(야간주거침입절도), 제331조(특수절도) 또는 제342조(미수범. 다만, 제330조 및 제331조의 미수범으로 한정한다)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같은 법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및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형법」제334조(특수강도) 또는 제342조(미수범. 다만, 제334조의 미수범으로 한정한다)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같은 법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및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010년 제정된 성폭력처벌법은 특수강도강간 항목을 별도로 둬 주거침입이 동반되는 성폭력을 가중처벌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형법 제250조와 비교할 때, 법은 주거공간에 침입해 저지르는 강간을 살인에 버금가는 중한 범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거침입을 동반한 성폭력에 정해진 처벌 수위는 엄중하지만 여성이 체감하는 성폭력이 처벌받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무엇을 성폭력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성범죄의 맥락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성폭력에 관한 사회적 감수성이 최근 십여 년간 굉장히 빠르게 변했음에도 법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는 스토킹 범죄다. 스토킹은 현실 또는 사이버 상에서 상대방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지속적으로 쫓아다니는 행위로, 많은 주거침입 범죄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정도의 처벌만 받을 뿐이다.
정의당 여성위원회에서 주최한 ‘제대로 된 스토킹처벌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이정미 의원은 스토킹 처벌과 관련해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이슈화된 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낮은 형량이 선고될 뿐 아니라 처벌을 피할 구멍도 많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은 꾸준히 강조됐지만 수차례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국회 임기의 만료 등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 의원은 스토킹처벌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안전하고 정상적인 사회라면 혼자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무서운 일일 순 없다’고 비판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법의 미온한 대처가 성폭력 안전망의 허술한 실태를 방증한다는 얘기다.
법의 제·개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은의 변호사는 “제·개정이 필요한 법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법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제한되는 경향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간죄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이다.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다. 문제는 성범죄 사건에선 여성이 느끼는 협박의 정도와 법이 인정하는 협박의 정도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괴리의 원인이 경찰·사법부·입법부 체계에 만연한 남성중심적 관점이라고 꼬집었다. 심각한 성폭력 문제의 대책으로 엄벌주의를 제창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는 공적 영역 내에서 이런 관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무리 형량을 높여도 여성 대상 폭력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지원책마저 형식에 그친다. 2013년에 시작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에게 법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개인 업무와 국선변호를 병행하는 비전담 변호사의 경우 다른 사건 의뢰인의 변호나 다른 사건에 비해 적은 급여 때문에 국선 업무를 후순위로 미루는 경우가 잦다. 변호사와 피해자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 역시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제도의 허점’이라는 제목의 청원을 제기한 한 누리꾼은 ‘국선변호사를 신청했지만 아무런법적 조력도 얻지 못한 채 재판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여성의 공간을 훔치는 매체들
법체계의 기저에 있는 시각은 사회 전반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대중의 일상적인 시각과 맞닿은 미디어는 자극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여성의 1인 주거 이미지를 소비한다. 드라마 등에서 여성의 집에 매일 밤 찾아가 만나 달라 애원하는 행위를 낭만적인 구애처럼 표현하는 경우가 한 예다. 혼자 사는 여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한다는 판타지를 드러내는 ‘저 혼자 살아요’, ‘라면 먹고 갈래?’라는 표현은 대중이 여성의 1인 주거를 인지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윤김지영 교수는 “남성이 투사한 여성 자취방의 성적 판타지는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 자극을 제공하기 위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는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지우기도 한다.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미디어에서 성폭력을 그리는 방식은)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고 여성에게 범죄의 책임을 돌림으로써 일종의 처벌을 행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문란하거나 밤늦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됐다는 식의 서술은 가부장제가 설정한 ‘정상적인 여성’의 범주를 벗어나는 여성의 행위를 비난한다.
주거 안전을 위협하는 성범죄의 문제를 고발해야 할 언론조차 범죄의 선정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김수아 교수에 따르면 언론의 ‘프레이밍 효과’는 ‘에피소드(개별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을 뜻한다. 그는 프레이밍 효과의 예로 가해자의 범행에 서사를 부여하는 경우를 들었다. 주거침입 성범죄를 다루는 기사의 제목을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여성을 늦은 밤 뒤따라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으로 작성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서술은 가해자가 한 일에 개연성과 타당성을 부여해 이를 거부한 피해자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암시한다. ‘몹쓸 짓’ 등의 표현으로 명백한 범죄행위의 심각성을 축소함으로써 성범죄의 구조보다 가해자 개인을 악마화하거나 엄중한 처벌을 내리지 않은 개별 재판부의 잘못으로 논의의 범위를 한정하는 경우는 또 다른 종류의 프레이밍이다.
보도에서 피해자에 대한 자극적인 서술과 이미지 역시 도구화된다. 가해자의 성별을 명시하기보다 피해자가 여성임을 강조하는 식의 헤드라인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집중하게 해 사건의 선정성을 부각한다. <동아일보>에 게재된 ‘처음 본 여성 쫓아가 침입시도 20대, 출소 6개월 만에 재범’(2020.1.27.)이라는 제목은 대표적인 예다. 기사의 내용이나 삽화에서 범행 방식을 불필요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매일경제>는 주거침입 사건을 다룬 기사 ‘경찰 출동만 하면 뭐하나…또 죽음 부른 ‘데이트 폭력’’(2017.1.19.)에서 남성이 손을 올려 여성을 폭행하려는 모습의 실루엣을 그림으로 삽입했다. 이런 요소는 기사를 접하는 여성에게 다시금 공포와 불안의 이미지를 각인할 뿐이다.
그 문화 속에 여성의 공간은 없다

지난해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의 범행현장 CCTV 영상엔 가해자가 수차례 주거침입을 시도하는 모습이 담겼다. 검찰은 주거침입과 강간미수 혐의로 가해자를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주거침입 혐의에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가해자가 무슨 의도로 집에 침입하려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추측만으로 강간미수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대중은 재판부의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그를 강간미수범으로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에는 한 달 만에 10만여 명이 참여했다.
검찰은 가해자가 강간 의도를 가졌다고 판단한 근거로 ▲피고인이 성폭력 전과자라는 점 ▲여성이 혼자 거주하는 원룸이라는 장소적 특징 ▲경험칙(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도출되는 통념에 바탕을 둔 판단 방법) 등을 들었다. 주목할 점은 어째서 검찰이 ‘경험에 비춰봤을 때’ 가해자가 강간을 목적으로 주거침입을 시도했으리라 추론했느냐, 어째서 대중이 이와 같은 추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느냐다. 검찰과 대중의 ‘상상’은 사회가 목격한 실제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서울 1인 가구 여성의 삶 연구’(2016)에 따르면 강력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력) 피해자 중 87%는 여성이다. 이 중 91.7%는 강간과 강제추행 피해를 입었으며, 장소별 발생 비중은 주거지(아파트, 연립·다세대, 단독주택)가 가장 높았다. 이런 특징이 미디어와 일상에서 과장·왜곡돼 재현되는 과정을 거치면 여성 대상 범죄는 안타깝지만 ‘일어날 법한’ 사건이 된다.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구조가 사회문화 속에서 재생산되면서 대중의 머릿속에 익숙하고 자연스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이미지의 익숙함을 지탱하는 기반은 ‘강간문화’다. 김수아 교수는 ‘강간문화’를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정의하지 못하게 하는 인식구조와 재현 양식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강간문화는 특히 대중문화에 만연해있고 대중의 인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형법에서 성폭력이 성립되기 위한 제약이 지나치다는 사실 또한 강간문화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강간죄의 기준이 그 예시다. 폭행과 협박의 유무가 아닌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판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1953년 형법에 제정된 이래 해당 조항은 변한 적이 없다. 적극적인 거부가 없다면 암묵적 동의라고 여기는 강간문화 없이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강간문화는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윤김지영 교수는 ‘미투라는 혁명의 해일-페미니즘 프리즘으로 강간문화 해부하기’(2018)에서 ‘개인들이 구조를 유지하는 부조리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낼 때에만 그 구조적 질서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개인들이 재생산하며 유지되는 강간문화는 결국 각 구성원의 인지와 변화에 의해서만 해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강간문화는 여성이 선택한 1인 가구라는 삶의 방식에 ‘여성’이라는 성(性)을 부여한다. 1인 가구 여성이 겪는 주거 불안이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직결되는 이유다. 여성의 공간을 보호해야 할 법이라는 울타리는 부실하며, 대중을 자극하는 데 급급한 매체들은 여성의 자취를 자극제로 소비한다. 혼자 사는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건 범죄자뿐이 아니다. 주거 안전 불평등이 유지되는 조건에는 사회의 묵인을 바탕으로 성범죄를 용이하게 만드는 문화가 자리한다. 작은 균열들이 모일 때에만 견고하게 짜인 강간문화를 해체할 수 있다. 대중의 움직임이 나아갈 방향은 강간문화 너머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