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제 점수는요

총선 문턱에서 지난 국회 돌아보기

  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여론조사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손을 들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낙승을 점쳤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들은 투표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초조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막상 개표가 시작되자 예측은 뒤집혔다. 유권자들은 집권 여당의 실정을 심판했고 민주당을 원내 1당으로 만들었다.

  임기가 시작한 지 반년 만에 20대 국회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에 응답했다. ‘촛불 정국’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것이다. 예상을 뒤엎으며 출발한 20대 국회가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변의 드라마를 연출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며 창대하게 시작한 20대 국회는 지난 4년간 어떤 과정을 밟아왔을까. 21대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20대 국회를 돌아보며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점검했다.

다당제 실험 후 남겨진 것은

  20대 국회는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어떤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채 시작됐다. 특히 제3당으로서 유의미한 의석수를 차지한 국민의당의 등장은 거대 양당의 대립으로 점철되던 한국의 의회 정치에서 고무적인 결과였다. 탄핵 국면 이후에는 탄핵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대안적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다당제 체제가 더욱 공고히 정착되는 듯했다.

 하지만 다당제 체제는 제3지대 당들의 분열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분열의 출발점은 ‘깨끗한 보수’를 표방했던 바른정당과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내세운 국민의당의 통합 논의다. 2017년 하반기 들어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모두 당의 통합을 두고 내홍을 겪었다. 같은 해 11월 김무성 전 의원 등 바른정당 창당에 관여한 의원 8명은 ‘보수 통합’의 명분을 내걸고 자유한국당(한국당)에 복당했다. 이에 반발한 의원들은 바른정당에 잔류했다. 이후 힘을 잃은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 합당 논의에 들어갔다.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찬성하는 ‘친안철수파’와 반대하는 ‘반안철수파’로 갈라졌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바른미래당으로 합당되자 합당에 반대하던 ‘반안철수파’ 의원들은 분리돼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통합 이후, 바른미래당은 제3지대 정당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다시금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로 쪼개져 계파 갈등만을 일삼았다. 2018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당내 갈등이 심화되자 정당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이 모여 지난 1월 창당한 새로운보수당은 ‘보수 대통합’을 이유로 한국당과 통합하며 거대 정당인 미래통합당(통합당)으로 회귀하는 모순을 보였다. 한편 민주평화당은 지도부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집단 탈당해 대안신당을 창당했다. 남겨진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은 다시 제3지대를 차지하고자 3당 합당을 추진한다. ‘민생, 개혁, 실용, 통합’의 가치를 내걸었지만, 밥 먹듯 이뤄진 분열과 통합에 국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기득권 정당의 정치를 벗어나 개혁의 바람을 불러오겠다는 제3지대 정당들의 다짐은 20대 국회의 끝에 선 지금,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제3지대 정당들은 창당 이념과 정체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계파 갈등과 내부 비리 등으로 구태 정치의 모습을 반복함으로써 유권자의 지지를 잃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후마니타스칼리지)는 “국민의당과 그 후신인 바른미래당은 19대 대선과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분열하고 사라지게 됐다”며 두 선거 결과를 통해 다당제 실험의 실패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다당제 실험의 실패는 곧 극심한 거대 양당 간 대결로 귀결됐다. 김민전 교수는 특히 20대 국회 후반기에 “국회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극한 대립 구도로 들어갔다”며 해체되지 않은 양당 대결 구도를 20대 국회의 실질적 마비를 낳은 원인으로 지목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당에 충성하는 지지기반을 내세워 폐쇄적인 당원 정체성을 형성하고 상대 당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는 데 급급했다. 20대 국회에서 민생과 정치개혁을 위한 입법 기능의 마비가 찾아온 이유다.

식물국회, 민생과 정치개혁은 뒷전으로

  20대 국회의 입법 성적표는 화려했던 임기의 시작과 비교하면 용두사미에 가깝다. 20대 국회 법안 발의 건수는 21,400건에 이르지만, 법안 통과율은 34.3%로 대표적인 ‘식물 국회’로 일컬어지는 19대 국회(32.2%)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한다.
 
  법안 통과율이 낮은 이유는 법안 제출을 의정활동 실적이라 여기며 단순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기에 급급한 의원들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단순 용어변경 ▲사문화 법률 정비 ▲법체계상 미비점 보완 등 단순 법안이 20대 국회 의원발의 후 가결된 법안 2,497건 중 38%(945건)에 달한다.

  비효율적인 법안 논의 구조에서 각 법안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며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지는 일 또한 잦았다.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되기 위해서는 교섭단체 소속 간사 간 합의가 필요하다. 상임위원회(상임위) 전체회의와 뒤이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에 상정된 안건은 만장일치 통과를 원칙으로 한다. 이 같은 시스템에서 정당 간 치열한 합의의 과정을 요구하는 많은 핵심 법안이 심사 과정에서 계류되는 데 그쳤다.
 
  20대 국회의 임기 종료를 목전에 둔 지금, 본회의에 부쳐지지 못하고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1,600여 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부동산, 생명·안전 등 민생 개선과 밀접하게 연관된 법안들이 다수 존재한다. 계류 중인 법안들은 20대 국회의 회기가 종료되는 5월 29일부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는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을 골자로 발의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41건은 20대 국회에서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지난 3월 5일에 열린 본회의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등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간 합의를 거치고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넘지 못해 수년간 계류돼 있었던 법안들이 겨우 통과된 바 있다. 이에 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는 “국회의원들이 민생 문제에 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여야 모두 정치공학적인 사고만 할 뿐, 근본적으로 민생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 꼬집었다.

  20대 국회는 민생 개선 과제뿐 아니라 국민의 정치개혁 요구도 해결하지 못했다. 현행 9차 개정 헌법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제왕적 대통령’을 양산한다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17년 1월 <MB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본권, 권력 구조, 경제·사회 조항 등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6%에 육박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며 개헌을 약속했고, 여야 의원들은 ‘헌법개정 특별위원회(개헌특위)’를 구성하며 개헌 논의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개헌특위는 2017년 1월 발족한 뒤 1년 넘도록 정부 형태 등 개헌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여야 간 이견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고자 한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이 과정에서 국민참여원탁회의와 대국민설문조사 등의 방법은 일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국회는 촛불 항쟁을 이끈 국민의 여론 수렴과 공론화에 미진했다. 무엇보다 통합당의 전신인 한국당이 개헌 논의를 파행으로 몰고 간 주범으로 지목된다.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가 투표율을 높여 한국당에 불리한 선거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판단으로 ‘국민투표법 개정안’이 계류돼있던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불참하는 등의 ‘어깃장 놓기’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3월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마저 본회의에서 부결되고 2018년 6월 개헌특위의 활동이 종료되며 20대 국회의 개헌 논의는 끝이 났다. 국민 4명 중 3명이 염원한 헌법개정이 국회의 ‘개점휴업’과 일부 정당의 정략적 보이콧으로 인해 허무하게 막을 내린 것이다.

토론 대신 몸싸움과 장외투쟁을 택한 2019년판 동물국회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2019년 패스트트랙 정국은 거대 양당의 막무가내식 대립으로 소통과 협치가 실종된 20대 국회의 모습을 대표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권력형 비리가 조기에 차단되지 못한 이유로 검찰의 부패와 중립성 상실이 꼽히면서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공론화됐다. <MBC>는 2017년 12월 공수처 설치 찬성 여론이 81.1%라 발표했고 19대 대선 주요 후보자 5명 중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4명도 검찰개혁을 공약했다. 검찰개혁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오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의원 선거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정당 대표성과 비례성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였다.

  2019년 4월 22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가 앞선 4개 법안 등에 대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기로 잠정 합의한 직후,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강경 태세에 돌입했다. 해당 법안 관련 논의에 줄곧 비협조로 일관하던 한국당은 이내 공론장 자체를 붕괴시키고자 했다. 4월 26일과 29일, 한국당 의원들은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회의장 입구와 선거법 개정안 지정 심사가 이뤄지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회의장 입구를 점거했다. 회의를 진행하고자 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그를 저지하려는 한국당 의원들 간 충돌은 몸싸움으로 비화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7년 만에 ‘동물국회’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패스트트랙 지정 투표가 개시되자 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기표소 안에 들어가 농성하는 방법으로 표결을 지연시켰다. 결국 김 의원을 기표소 안에 남긴 채 투표는 종료됐고, 4개 법안은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됐다.

  패스트트랙 안건이 상정되자 한국당 의원들이 장외투쟁에 돌입하며 국회는 기약 없는 공전(空轉) 상태에 접어들었다. 국민의 대표로서 입법 활동을 해야 하는 무대인 국회를 이탈한 것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은 8월에 이르러 ‘조국 정국’으로 이어지며 격화됐다. 8월 18일 한국당 지도부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과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저지하겠다며 두 번째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여야 4당은 일제히 한국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으며 한국당 내부에서조차 자중 요구가 일었다. 한국당은 마지못해 국회에 복귀했고 9월 정기국회가 열렸다. 이렇게 간신히 성사된 9월 정기국회에서도 정책과 법안 논의는 정쟁의 뒷전으로 밀렸다. 여야가 국정감사의 대부분을 조 전 장관과 관련된 공방에 소모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보이콧 속에 지난 12월 패스트트랙 법안들은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형태로 한국당을 제외한 채 처리됐다.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제1야당이 제외된 것은 20대 국회가 처음이다. 김민전 교수는 그 결과로 ”한국당이 선거법의 허점을 이용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나아가 “민주당도 한국당을 핑계로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선거법 개정안의 구멍을 메울 논의의 장은 정쟁으로 대신됐고, 그 결과는 비례대표 정당 난립이었다. 한편 민주당이 공수처법 및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선거법 개정안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면서 군소정당의 목소리를 살리겠다는 선거법 개정의 취지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선거법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에 의해 비례대표 의석수가 원안 대비 감소하고 석패율제 도입이 좌절되는 등 원내정당이 되려는 군소정당의 시도가 무산됐다.

심판의 화살은 어디로 향하나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기치 아래 정치·사회·경제 각 분야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며 힘차게 출발했다. 국민의 높은 기대는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에 반영됐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에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압승하며 그 지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지금, 문재인 정부는 경기 침체, 노동 및 정치개혁 부진, 남북관계 교착 등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국민과 맺은 약속을 책임 있게 이행하지 못하는 사이 제1야당인 통합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맹목적 반대’만 일삼으며 건설적인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제3지대 정당들은 뚜렷한 정체성도 없이 거대 양당의 거수기 노릇을 하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비례연합정당을 둘러싼 정쟁에 코로나19 사태가 더해지자 각 정당의 정책·공약 경쟁과 선거 운동은 실종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권자들은 지난 4년간 각 정당의 행보에 의지하여 소중한 한 표의 향방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20대 총선 결과가 19대 대선의 전주곡이었던 것처럼, 21대 총선에서 드러난 표심도 2년 뒤로 예정된 20대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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