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사람이 있다

  12월호 커버 주제 회의에서 아이돌 문화산업과 함께 최종 후보가 됐던 소재는 플랫폼 노동이었다. 둘은 매우 다른 이야기지만, 돌이켜보면 두 문제는 그 당사자에 있어 핵심적인 공통 질문이 적용되기도 한다. 플랫폼 노동자와 아이돌은 노동자인가? 법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다면 왜 그런가? 

커버 주제가 확정된 뒤 가장 먼저 스스로 아이돌이 노동자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내 결론은 ‘아니다’였는데 거기까지 이르는 사고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그들이 하는 활동이나 기획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아이돌은 당연히 기획사에 종속된 노동자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기획사들이 이렇게 대놓고 근로기준법을 어기면서 아이돌을 혹사할 순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분명 아이돌은 노동자인 것 같았지만, 답은 다르게 골라냈다. 

정답이었다. 변호사님은 현재 아이돌이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설명하셨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은가. 변호사님도 아이돌이 실질을 따지면 노동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직 관련 법적 분쟁도 행정부 차원의 검토도 없어서, 그래서 아이돌은 노동자가 되지 못했다. 노동자인데 노동자가 아니었다. 답은 맞혔지만 사실상 출제 오류였다.
 
출제 오류를 어떻게 정정할 것인가?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체적인 연대로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인다. 기사를 쓰면서 아이돌과 연습생의 인권에는 누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기획사가 수익 창출의 목표를 제쳐놓고 자발적으로 소속 아이돌의 노동조건과 건강관리를 개선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빛나는 정상만을 바라보며 가시밭길을 헤쳐온 아이돌들에게 너희가 당사자이니까 꿈을 버리고 부당함을 폭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다른 방식의 폭력이었다. 검토해보니 해당 산업과 관련해 제정된 법과 정부의 대응은 빛 좋은 개살구 격이었다. 실효성이 없었다. 

기획사와 당사자와 정부를 제하니 대중이 남았다. 그런데 대중의 차가운 시선은 일단 나에서부터 확인됐다. 누군가를 노동자로 보려면 일단 그 대상이 사람으로는 보여야 하는데 내가 아이돌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한 적이 얼마나 있던가. 아이돌은 멋진 ‘이미지’이고 동경과 성공의 ‘아이콘’이자 하나의 ‘상품’이었다. 그것은 제3의 존재이지 사람은 아니었다. 더 깊숙한 곳에는 아주 잔인한 마음도 있었다. ‘좋아서 시작한 데다 저 정도 부와 명예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부당함과 제약은 그냥 버텨야 하는 것 아닌가?’

숨 막힐 듯한 기획사의, 정부의, 대중의 그리고 나의 위력 아래에 아이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려함 안에는 사람이 있다. 기사를 한 줄씩 적어 내려가면서 내가 좋아해 온 그 수많은 아이돌을 향해 되뇌었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몰라서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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