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과 우리의 좌표

바로 지금, 세 들어 사는 원룸에서 도어락을 굳게 잠그고 글을 쓴다.처음 ‘여성의 집’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지난해 여름쯤이었다.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현장의 CCTV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 우리 집 도어락의 키패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영상 속 범인은 휴대폰 플래시로 키패드 위의 지문을 비추며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애를 썼다.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로 지금, 세 들어 사는 원룸에서 도어락을 굳게 잠그고 글을 쓴다.

  처음 ‘여성의 집’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지난해 여름쯤이었다. 신림동 주거침입 사건 현장의 CCTV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 우리 집 도어락의 키패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영상 속 범인은 휴대폰 플래시로 키패드 위의 지문을 비추며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애를 썼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선 지문을 여러 군데 찍어 분산시켜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즉시 자기성찰이 이어졌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새벽에 겁도 없이 나다니면서 안일하게 살고 있었구나’.

  그때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왜 내가 반성을 하고 있지? 늦은 밤 ‘조심히 들어가’라는 걱정 어린 인사를 들을 때도 왠지 억울했다. 나를 포함한 누구도 불안한 귀갓길이라는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원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외줄 위에 여성들을 세워놓은 건 누구란 말인가. 세 기사를 엮어 지면에 싣기로 한 결정은 이 물음에서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사회 운동가 수전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우리는 무수한 좌표들 사이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다시, 누가 위태로운 외줄 위에 여성들을 세워놨나. 누가 여성들의 공간을 빼앗았나. 한 지도 위에서 서로의 삶은 연결돼있다. 흔들리는 지도 저편에서의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의 삶에는 지대한 고통을 안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여성 개개인이 자신의 좌표-온전한 자신의 삶-에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으려면, 외줄 위의 여성들뿐 아니라 나머지 좌표들의 단단한 연대가 간절히 필요하다. 그 연대 속엔 연민이 아닌 ‘당연한 용기’가 자리하기를 바란다.

  기사에 담긴 문장들은 선한 의도로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해주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다. 동시에 폭력을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고함이다. 양쪽 모두에게, 혹은 두 모습을 동시에 가진 이들에게, 여성들이 ‘조심히 들어가’야만 하도록 만든 이 사회의 공기를 직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자신의 좌표를,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가질 수 있는 날까지 우리는 편지를 부치고 고함을 친다. 지면에 스민 잉크가 언제까지고 마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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