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9일 오전 8시경, 청년노동자 故김상용 씨가 ‘한국화이바’ 기숙사 내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밀양경찰서는 단순 자살로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당일 오후 7시 40분경, 밀양경찰서는 유족에게 유품을 인계했다. 고인의 친형인 김상범 씨는 단순 자살이 아니라 생각해 고인의 휴대전화를 파헤쳤다. 고인의 휴대전화 메모장에서 유언이 발견됐다.
고인은 ‘책임질 수 없어 떠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마지막까지 죽기 싫은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거 같아요. 가족들, 여자친구한테 미안해지네요’라며 ‘과장 차 좀 타고 다니세요. 업무 스트레스도 많이 주고…. 하, 이 글을 적고 있는데도 무서워서 죽을 용기는 안 나네요. 몇 번 시도해 보면 되겠죠’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무엇이 그토록 故김상용 씨를 괴롭혔던 걸까.
고인의 친형인 김상범 씨는 지난 12월 23일부터 한국화이바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 진상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다. 그러나 사측과 국가기관은 모두 유가족의 요구를 외면했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
고인은 직속 상사였던 과장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과장은 자차가 있음에도 ‘카풀’이라고 포장하며 고인을 운전기사로 착취했다. 고인은 평일에 한국화이바 내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에 있는 고인에게 과장은 아침마다 본인이 밀양역이나 삼랑진역에 도착하면 고인의 차로 회사까지 데려다줄 것을 강제했다. 삼량진역과 회사 사이는 왕복 78km에 달한다. 고인은 매일 아침 과장을 태우기 위해 회사 출근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기상했다. ‘무급 운전기사 노릇’은 퇴근 후에도 강요됐다. 고인은 퇴근 시각인 오후 5시에 업무를 마치고도 과장의 퇴근을 기다려야 했다. 고인이 오후 5시 40분쯤에 과장에게 연락하고, 과장이 고인에게 ‘오늘 바쁘니 먼저 가라’는 문자를 보내는 일은 일상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과장은 고인에게 유류비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고인의 계좌 내역을 확인한 결과, 유류비 명목으로 5회에 걸쳐 총 18만 원이 입금됐다. 유가족은 “내가 18만 원 줄 테니 2년 동안 네가 내 기사를 해보라”며 가해자를 향한 울분을 토했다.
동시에 고인은 과중한 업무와 책임을 떠맡으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인은 방위산업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특수사업부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고인은 발사관사업을 담당했는데 아직 실물이 없는 개발 단계의 프로젝트였다. 때문에 대략적인 비용 견적을 기반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고인의 견적과 다르게 원가가 불어났다. 계획 단계의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를 고인 혼자서 책임져야 했다는 점이다. 김상범 씨에 따르면 과장과 부장은 고인이 상황 보고를 했는데도 방관하며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고인은 윗선에서 무책임하게 책정한 부족한 예산으로 혼자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문제로 발주처로부터 시달렸다. 고인은 납품기일마다 연차를 사용했다. 문제 회피. 대리 직책의 고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인이 특수사업부에서 일하게 된 과정도 부당했다. 고인은 2013년 12월 한국화이바의 철도사업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고인은 부품사업부에서 일하다 특수사업부로 차출됐다. 두 부서의 업무는 전혀 다르다. 김상범 씨에 따르면 고인은 특수사업부가 부품사업부에 비해 업무량이 많고 힘든 걸로 소문이 나 있어 특수사업부에 차출되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다. 또한, 사원이 전격적으로 다른 부서의 대리로 발령되는 일이 굉장히 이례적이어서 고인은 부담스러워했다. 고인의 부담은 회사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고인은 그저 회사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수사업부는 처음 부서에 온 고인에게 가혹했다. 상사들은 고인에게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무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교육과정이 부재한 상태에서 고인은 새로운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특히 업무와 관련한 과장의 괴롭힘은 상습적이었다. 고인과 근무했던 다른 사원은 ‘과장이 도와준다는 말만 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했다’며 ‘업무를 도와주지는 않고 스트레스만 줬다’고 설명했다. 과장이 이전에 근무했던 생산관리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당시 과장 밑에 두 명의 대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과장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했다. 다른 한 명은 과장이 부서이동을 할 때 그에게 다시는 이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과장은 반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과장의 폭주를 막을 장치는 사내에 없었다.

고인이 가만히 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고인은 고통 속에서 상황을 모면하고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발버둥쳤다. 고인은 원래 부서였던 부품사업부로 돌아가려 시도했다. 그는 회사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부품사업부 상무와 본부장에게 부서 전환배치까지 승인받았다. 그러나 특수사업부 측의 반려로 부서 이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고인은 생을 달리하기 4달 전인 8월 19일,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결근했다. 고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가족은 실종 신고를 했다. 그 후 가족과의 상의 끝에 고인은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특수사업 부의 부장과 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부에서 보면 우리가 너를 관리 못 한 걸로 보일 수 있으니 참으라’는 이유였다. 김상범 씨는 “내 동생은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요당했다”며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분노했다. 사측은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이 부서 재배치와 사직 요구까지 거부했다. 감당해야 할 부담은 늘어가지만 이를 피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산되는 악순환 속에 고인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렸다.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
사건 발생 후 사측은 유가족을 기만하며 고인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괴롭힘 방지 조항은 사용자에게 괴롭힘 사실에 대한 조사 및 인정 권한을 부여한다. 노동청이 고인의 죽음을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것으로 인정했음에도 사측이 추가적으로 조사해 2월 20일까지 노동청에 보고하게 된 이유다. 사측은 고인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의 결과라 고 판단할 증거가 없으므로 고인의 죽음은 단순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직원의 진술이 그 근거였다.
김상범 씨는 “우리들도 자료를 이만큼 가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사측에 자료를 직접 제공했다. 김 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한국화이바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도 시작했다. 그러자 사측은 유가족에게 성의를 보여 재조사할 테니 ‘3월 19일 금요일까지 언론플레이나 시위를 일괄적으로 하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김 씨는 사측의 요구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괴롭힘 사실이 있었다고 결론낼 자격이 오직 사측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화이바는 3월 13일까지 재조사 결과를 유가족에게 미리 고지하고 3월 20일까지 노동부에 재조사 결과를 알리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화이바는 약속을 또 다시 어겼다. 3월 23일까지 유가족은 어떤 내용도 고지받지 못했으며 재조사는 끝없는 지연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국가기관의 대처도 미흡했다. 사건 발생 당일, 밀양경찰서는 사건을 단순자살로 처리했다. 김상범 씨는 동생인 고인의 휴대폰에서 유언장을 직접 발견했다. 유언장에는 괴롭힌 사람이 명시적으로 지목됐다. 이를 근거로 김 씨가 고인의 죽음이 단순자살이 아니라고 항변하자 밀양경찰서는 ‘사건을 이미 단순 자살로 종결했으니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 며 ‘재조사나 2차 조사를 원하면 민원을 넣으라’고 답했다. 김 씨는 경남지방경찰청에도 찾아갔다. 하지만 경남지방경찰청 또한 유가족에게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기다려달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건 발생 이후 100일이 지난 지금에도 수사엔 진전이 없다. 유가족은 현재 경남지방경찰청에 밀양경찰서에 대한 내사까지 요청한 상태다.
그나마 노동청은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감독관이 파견돼 현장조사를 한 뒤, 노동청은 관련자들의 진술서를 받고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다. 하지만 노동청의 인정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김 씨는 “허탈했다”고 말한다. 노동청은 현행법상 1차 조사기관이 회사고, 회사가 가해자에 징계를 내리도록 규정돼 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사측이 인정을 하지 않으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가족은 답답한 마음에 창원시의회, 창원한마음센터, 민주노총 등 각종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렸지만 진상규명을 위한 뾰족한 방법은 찾지 못했다.
고인의 죽음이 남긴 과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공론화된 지 오래다. 일터 내에서 연령과 직급이 낮을수록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쉽다. 괴롭힘은 많은 경우 위에서 아래로 향하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의 ‘신입사원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상당수 청년들이 직장에 취업 후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적·대인 간 괴롭힘 ▲일 관련 괴롭힘 ▲조직적·환경적 괴롭힘 ▲성차별과 성희롱을 겪는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는 직장 내 괴롭힘 취약계층으로 20대를 손꼽기도 했다. 괴롭힘 피해가 자신의 연령에서 비롯됐다는 응답도 20대(24.5%)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일명 ‘괴롭힘 방지법’이 생겼다. 2018년 12월에 괴롭힘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돼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직장에서 지위 및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됐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던 상황에서 그나마 폭언 및 모욕, 집단 따돌림, 사적 용무 지시, 과도한 업무 부여 등의 행태를 포괄해 규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괴롭힘 방지법에 따르면 누구든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사실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로 질병 등이 발생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산업재해의 범주에 포함된 것은 큰 진전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도입 후 첫 관련 자살 사건인 故김상용 사건이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의 존재 여부를 조사하고 인정할 권한을 전적으로 사측에 부여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괴롭힘 가해자를 직접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그 대신 회사가 자체조사한 결과에 따라 자율적으로 가해자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노동청의 조사 결과의 구속력이 없는 상황이다. 故김상용 씨의 친형 김 씨가 노동청의 괴롭힘 사실 인정에도 허탈감을 느낀 이유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괴롭힘에 대한 진상규명을 게을리할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고 규정하면 어떤 책임도 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화이바 측이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괴롭힘이 없었다고 결론 내린 이유다. 가해자가 다른 동료인 경우와 비교했을 때 ‘사용자의 괴롭힘’은 밝혀질 가능성이 더욱 적다. <월간노동법률>은 현행법이 ‘사용자의 괴롭힘을 사용자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맹점이 있다’며 가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신고해야 하는 법의 모순을 비판했다.
현재의 법은 사후조치에 불과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할 제도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안석태 수석부본부장은 “근로감독관은 진정이 들어간 후에 사후적으로 사업장을 조사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청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후 뒷수습만 하는 셈이다.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능동적으로 조사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선제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는 갈 길이 멀다. 노동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로익 르루즈(Loic Lerouge) 연구 위원에 따르면 프랑스는 직장 내 ‘정신적 괴롭힘’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과 함께 예방책과 구제책도 준비됐다. 행정적인 감독과 근로자대표기구의 집단적 개입의 보장 등이다.
무엇보다 프랑스에서는 괴롭힘의 존재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 권한이 법관에게 있다. 법관은 필요시 자신이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사 조치들을 지시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분쟁 을 기업 밖에서 사법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다. ‘괴롭힘’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도 주목할 점이다. 근로자는 괴롭힘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 사용자는 사측의 지시에 괴롭힘과 무관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괴롭힘에 대한 조사부터 인정 권한이 모두 사측에게 집중된 한국의 체계와 대조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복잡한 문제다. 안석태 수석부본부장은 직장 내 괴롭힘의 근본적인 원인이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선 위계적 조직 문화 개선,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 등 노동의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궁극적 해결을 도모하기는커녕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해야 할 법조차 허울만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청년들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2017년 과중한 업무부담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LG 유플러스 현장실습 고등학생부터 지난해 간호사 집단 내 조직적 괴롭힘인 ‘태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서지윤 간호사까지 직장 내 괴롭힘은 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측과 국가기관은 법을 핑계로 고인과 유가족의 고통을 차갑게 외면했다. 청년노동이 죽음의 행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