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솔직함이 매력인 음악이다. 많은 힙합 플레이어와 리스너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힙합만큼 솔직한 장르는 없기 때문에 힙합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때론 자유로움이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번져 문제가 된다. 혐오 표현은 자신이 ‘언더그라운드(대중적 노선이 아닌 마니아 중심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향유하는 영역)’에서부터 시작해 갖은 역경을 이기고 성공한 ‘진짜 힙합’ 뮤지션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곤 한다. 혐오 표현 없이 솔직할 수는 없는 걸까.
한국 힙합의 여성혐오 돌아보기
엠넷(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방영으로 힙합은 전에 없던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동시에 출연자들이 가사에 사용한 혐오 표현으로 숱한 논란이 일어났다. 2015년 방영된 ‘쇼미더머니’ 시즌 4에 출연한 그룹 ‘위너’ 출신의 가수 송민호는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여성 비하 가사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힙합 평론가 블럭은 “송민호의 랩에서 더 가시적으로 드러났을 뿐, 모두가 아는 ‘(일리네어레코즈의) 연결고리’라는 곡에서도 ‘탐폰이나 물어 입에’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며 힙합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혐오 가사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힙합 가사는 그 사정이 비교적 나아진 편이다.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 따르면, ‘쇼미더머니’ 시즌 2에서 시즌 7까지 음원사이트 ‘멜론’을 통해 발매된 111곡 중 19건(약17%)의 여성비하 표현이 사용됐으며, 단순 욕설이 포함된 곡은 절반에 해당하는 56곡(50.45%)으로 나타났다. 한편 2019년 방영된 시즌 8의 경우 33곡 중 3곡에서 단순 욕설, 1곡에서 장애인 비하 표현이 발견돼 혐오 표현이 줄어든 양상이다.
이를 두고 문제가 개선됐다고 평할 수 있을까.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이와 관련해 “힙합 플레이어들이 다양해졌고 여성 래퍼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며 “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힙합씬의 규모를 지켜야 할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이슈나 윤리적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전략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힙합씬 내부의 자정작용이 아니라 인기 감소라는 외부의 상황에 따른 생존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전반적으로 혐오 표현이 감소했지만 반성을 거쳐 줄어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은 그저 수면 아래 가라앉았을 뿐이다. 김수아 교수는 “남성 플레이어들 중에서 남성 역차별론 등의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정서로 무장하고 일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고 습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혐오와 관련된 힙합 비평을 계속해왔던 음악 칼럼니스트 블럭은 “조금씩 나아지곤 있겠지만 (여성혐오와 관련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하고 근거 없는 비난만 당하니 피로감을 느낀다”며 “최근에는 관련 글도 제대로 쓰고 있지 못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무엇을 위해 혐오를 내뱉나
힙합에서는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는 가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이 어려운 과거를 이기고 그저 좋아서 시작한 힙합을 통해 돈을 벌며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이 성공 서사에 여성혐오가 더해지면 여성은 남성의 이야기를 증명하기 위한 트로피로 전락한다. 김수아 교수는 “흔히 말하는 머니스웨거 랩 스타일(자신의부와 성공을 과시하는 랩 스타일)에서는 성공한 남성을 돈, 여자를 거머쥔 것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음악에서 플레이어들은 ‘돈, 전국에 있는 아가씨’도 자기가 꼬실 수 있으며 ‘손 안’에 ‘니 여친’의 속옷도 거머쥘 수 있다고 과시한다. (창모, ‘인기가요’ 중에서) 학내 힙합 동아리 ‘Triple-H’에서 활동하는 김준형(자유전공 15) 씨는 “많은 남성 래퍼들에게 여자라는 존재가 성공의 징표이자 자랑거리로 대해진다”며 “힙합을 하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는 표현을 쓴다면 대부분 자기자랑의 측면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머니스웨거 힙합은 스스로가 부유하고 잘 나가는 남성이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를 ‘루저’라 칭하는 힙합도 있다. 블랙넛이 대표적인 예다. 블랙넛은 자신을 열등감과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키는 170’을 간신히 넘기고 ‘몸무게는 60도 안 되는 멸치’에 ‘못생겼고 성격은 XX’인 찌질한 루저 남성으로 정체화한다.(블랙넛, ‘MY ZONE’ 중에서) ‘루저’를 자칭하면 성공기를 자기자랑이 없으니 혐오 표현이 줄어들까.
그러나 블랙넛의 노래에서도 여성은 대상화된다. 김수아 교수는 “블랙넛은 집안 빚지고 사는 전라도의 저학력 청년이란 자기 서사에 여성혐오와 혐오표현을 자주 끼워넣는 방식으로 기믹(gimmick,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의 특징을 부각하는 전략)을 구성했다”고 말한다. 블랙넛의 서사에서 고등학교 동창일 땐 몰랐던 ‘잘 나가는 퀸카’는 ‘이빨잘 나가는 찐따’였던 자신이 선물한 명품백을 받고 잠자리를 같이할 대상으로 사물화된다. (블랙넛, ‘기형아가 만난 걸레’중에서)

머니스웨거 힙합과 블랙넛의 ‘루저’ 기믹은 공통적으로 여성을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적 구조로 재현한다. 성녀가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라면, 창녀는 성녀가 아닌 여성, 혹은 돈을 원하는 ‘골드 디거(gold digger)’다. 김수아 교수는 “(루저 남성성에서) 내가 여성을 ‘획득’하지 못한 것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하기 때문이며, 나의 무능이나 루저됨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할 성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며 “성녀가 아닌 주제에 나를 무시하는 창녀 같은 여자는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흔히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창녀’로 정체화된 여성들은 욕망 해소의 대상이자 멸시의 대상이다. 머니스웨거 힙합에서는 트로피로 전락한다. ‘보시면 다 알다시피 난 꽤나 다르지 / 여기 많은 가시나들의 번호 다 있지’라는 가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주체가 아니다. 이때 ‘성녀’의 존재로 여성의 대상화나 여성혐오가 일부 ‘된장녀’들에 대한 비판일 뿐이라며 정당화된다.
‘진짜 힙합’이 뭐길래
힙합의 혐오나 비하적 표현에 대한 비판에 으레 ‘원래 힙합은 그런 장르다’, 혹은 ‘‘힙알못’(힙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비판을 한다’는 식의 반박이 따라온다. 문외한들이 ‘훈장질’로 힙합의 솔직한 표현을 방해한다는 말이다. ‘원래 그렇다’ 담론을 이해하려면 힙합이 강조하는 ‘진짜 힙합’의 정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힙합은 어느 음악 장르보다도 ‘진짜’가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장르다. 김수아 교수는 “자기를 재현하는 것을 진짜 힙합의 요건으로 보며 힙합의 장르적 특성을 반영한 아이돌 음악을 힙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설명한다. 힙합은 어려웠던 래퍼 자신의 삶과 힙합을 통한 성공을 재현할 때 진짜가 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이들은 방송이나 기획사에서 밀어주는 아이돌의 힙합은 진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쇼미더머니 4에서 아이돌 그룹 출신의 경쟁자 송민호를 두고 블랙넛은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 비꼬며 자조했다. 팬덤과 소속사의 후광을 업은 아이돌이 힙합씬에 뛰어든 것에 대한 텃세이자 비아냥이다.
‘디스’의 대상은 아이돌에 그치지 않는다. 래퍼들끼리도 ‘한솥밥 먹던 것도 다 올라오겠다’며 ‘언더그라운드인 척 그만’하라고 디스한다. (Don Malik, ‘old Wave’ 중에서) 음악적 성취가 아닌 방송이라는 마케팅으로 성공을 꾀하는 순간 ‘진짜’를 두고 다투는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끈질기게 음악을 하는 언더그라운드 플레이어에게만 진짜 힙합의 자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래퍼들은 ‘어디가 언더그라운드인지 알려’달라며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강한 지향성을 보인다. (‘119 Remix’ 중에서)
여성혐오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여성을 자기재현의 도구로 활용하거나, 혐오까지도 ‘솔직’하게 내뱉을 수 있을 때 진짜 힙합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블랙넛은 자신이 참여한 곡 ‘Indigo Child’에서 래퍼 키디비를 성희롱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블랙넛은 재판 진행 중 레이블 동료들과 공동으로 제작한 곡 ‘IMJMWDP’에서 ‘내 힙합은 진짜라서 징역 6개월’이라는 가사로 랩을 한 바 있다. 래퍼 슬릭은 이와 관련해 “미디어 속에서 힙합은 늘 화가 나 있고, 무언가에 저항해야 하며 혐오 표현이나 솔직함으로 포장된 폭력성을 으레 내비춰야 하는 경향이 힙합의 필수 요소인 것처럼 그려지곤 한다”고 지적했다. 포장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금기시되는 혐오 표현까지 사용하는 게 ‘진짜’라며 칭송받는 이유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담론은 자기표현의 과정에서 사용하는 여성혐오에 ‘솔직함’을 이유로 면죄부를 부여하는 시도다. 하지만 자기표현이라는 이유로 타인에 대한 혐오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 담론은 힙합을 남성성의 함정 안에 가두고 혐오와 폭력이 힙합의 고유한 특성인 것처럼 왜곡해 여성혐오를 재생산할 수 있다. ‘Triple-H’에서 활동하는 궁찬영(화학생물공학 석박사통합과정) 씨는 “이제 막 랩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다른 래퍼들을 모방해서 가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힙합의 혐오가 계속해서 재생산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래도 힙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우리는 힙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래전부터 힙합씬의 혐오 문제로 고민하며 활동해온 래퍼 슬릭은 “남성성과 남성권력의 표방이 힙합 본연의 정체성은 아니”라고 말한다. “힙합음악과 함께 음악 외의 문화적 요소가 형성될 수는 있지만, 소수자 혐오가 문화 요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힙합의 솔직함으로 혐오에 저항할 수도 있다. 궁찬영 씨는 “‘Bitch’나 ‘Motherfucker’와 같은 표현이 난무하고 자신이 ‘적’으로 규정한 사람 애인의 속옷이나 벗기는 수준의 가사를 보면 한국 힙합의 여성혐오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힙합만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장르가 없기 때문에 힙합을 계속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다면,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얘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슬릭은 “자기 자신을 뽐내지 않아도 힙합일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 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힙합이라고 말한다.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이용될 때 비로소 진가가 발휘된다는 의미다.
힙합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면 지탄받아야 할 대상은 힙합 그 자체가 아니라 힙합을 잘못된 방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슬릭은 “여성혐오 표현 때문에 힙합에 관심을 접는 사람이 생기면 그것은 힙합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혐오 표현을 쓰는 힙합 아티스트들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하여 블럭은 “그런 컨텐츠가 비판 없이 소비된다면 소비자의 책임도 있다”고도 지적한다. 일례로 블랙넛은 성희롱 사건을 전후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호감을 갖는 리스너 층은 여전히 두텁다. 블랙넛을 두고 ‘솔직하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잘한다’는 평가를 ‘힙합엘이(HIPHOPLE)’나 ‘디시인사이드 힙합갤러리’와 같은 리스너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힙합의 소비자들도 혐오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블럭은 혐오 이후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며 “잘못한 만큼 반성 이후의 삶이 중요하다”며 “실천의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더라도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더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겠지만 혐오 없는 힙합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 과정에서 혐오적인 음악을 생산하지 않기 위한 플레이어의 노력도 중요하며, 동시에 그것을 소비하는 리스너들 또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2018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래퍼 김하온이 ‘고등래퍼 2’에서 당당히 읊은 가사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너 그리고 날 위해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