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수가 던지는 공은 야구의 시작을 알린다. 여자야구 불모지인 한국에서 국가대표 투수로 살아가는 김라경 선수의 삶이 이와 닮았다. 한국 여자야구는 프로리그는 물론 실업팀, 초·중·고·대학팀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 선수가 던지는 공들은 한국 여자야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투수는 가장 주목받는 동시에 가장 외로운 자리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김 선수는 홀로 마운드에 서는 투수의 심정으로 묵묵히 땀 흘려왔다.
투수만큼 중요한 존재는 공을 받는 포수다. 포수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내 공을 어디로 어떻게 던져야 할지 안내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김라경 선수는 지금까지 포수의 사인 없이 공을 던져온 셈이다. 이제 그는 자신 다음으로 마운드에 오를 후배들을 위해 ‘야구 행정가’라는 포수를 꿈꾸고 있다. 올해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냥 야구가 좋았던 시간들
김라경 선수와 야구의 첫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리틀야구 선수인 7살 터울의 오빠를 따라 야구장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장난감은 야구공이었고 좋아하는 옷은 야구복이었다. 오빠에게 글러브를 물려받아 캐치볼을 배웠다. 매일같이 동네 주차장 등에서 친구들을 불러 야구를 했고 동네야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어린 김 선수의 눈에 띈 것은 야구단에 다니는 남자 친구들이었다. 그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김 선수는 야구단에 들어가 정식으로 야구를 배우고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먼저 야구를 시작한 아들이 부상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딸을 만류했다. 누구보다 어려움을 잘 아는 오빠 역시 취미로만 즐기라고 동생을 설득했다. 여자야구의 진로가 불투명하다는 개인적인 고민까지 겹쳤지만 끝내 김라경 선수는 야구를 놓지 않았다. 김 선수는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도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이미 마음속엔 야구뿐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은 여자축구부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결국 김 선수는 오빠가 프로구단에 입단하면 야구를 시켜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을 받아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오빠인 김병근 선수가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구단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가족 모두 대전 근처의 계룡으로 집을 옮겼다. 부모님은 김라경 선수와의 약속을 지켰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김 선수의 손을 잡고 계룡시 리틀야구단을 찾아갔다. 그렇게 김 선수는 야구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그냥 야구가 좋았어요”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보이지 않는 길 위를 걸어
리틀야구단에 들어갔을 당시 전국에서 여자선수는 김라경 선수가 거의 유일했다. 남자선수들은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이내 ‘누나 야구 잘한다’며 반겨줬다. 불편함이 없진 않았다. 운동 중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멀리 있는 여자 화장실을 찾아 혼자 다녀와야 했다. 전지훈련을 가면 같은 방에서 밤새 노는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부모님과 자야 하는 게 아쉽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여자 동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남자선수가 무심코 던진 말들은 상처가 됐다. 김 선수는 야구로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한다.
그래도 리틀야구단 시절은 그토록 원하던 야구를 배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쁨도 잠시, 더는 야구를 배울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리틀야구는 ‘한국리틀야구연맹(연맹)’ 규정상 중학교 1학년까지만을 선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남자 동기들은 중학교 야구부로 진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들에겐 고등학교와 대학교 야구부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이 보장돼있었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쳐 프로리그에 진출할 기회도 제공됐다. 그러나 김라경 선수 앞엔 닦여진 길이 없었다. 창창한 앞날을 향해 하나둘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김 선수는 “혼자 정체된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같은 성별의 선배가 없다는 점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류현진, 이승엽과 같은 롤모델이 있는 남자선수들과 달리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게 두려웠다”는 말이다. 스스로를 더 믿는 방법밖에 없었으나 한 번씩 그 믿음이 깨질 때면 견디기 힘들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친 뒤에는 리틀야구 시합을 뛸 수 없어 개인훈련을 지속했다. 리틀야구단에서 완전히 나가진 않았지만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합조’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특히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예전처럼 함께하지 못했다. 김라경 선수는 당시를 “야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두 달 동안 일부러 야구를 끊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야구가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프트볼로 전향하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김 선수가 좋아하는 운동은 야구였다.
개인훈련을 이어가던 중 연맹에서 규정을 고쳐 여자선수들의 경우 중학교 3학년까지 시합을 뛸 수 있게 했다. 김라경 선수는 다시 마운드를 밟을 수 있었고 중학교 3학년 땐 최연소로 여자야구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당시 여자야구 국가대표는 야구를 취미로 즐기는 직장인으로 구성된 ‘여자 사회인야구단’에서 차출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길을 꿈꾸다
국가대표로 나간 첫 국제대회에서 김라경 선수는 세계 각국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을 보며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의 관심은 외국 선수들이 어떻게 야구를 잘하게 됐는지로 향했다. 자연스레 김 선수는 야구 선진국의 제도를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같은 해 여자야구 국가대표와 서울대학교 야구부의 고척돔 개장경기도 전향점이 됐다. 김 선수는 서울대 야구부를 보며 그곳이라면 남자선수들과 동등한 기회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됐다. 다른 대학교 야구부들은 프로리그를 목표로 어린 시절부터 쭉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온 선수들로 구성되지만 서울대 야구부는 비선수 출신이 대부분이다. 서울대 야구부의 구성이 폐쇄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는 대학교 야구부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이에 김 선수는 학업과 야구를 병행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게 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리틀야구단을 나오게 된 김라경 선수는 여자 사회인야구단에 들어가 훈련을 계속했다. 다만 대부분이 직장인이다보니 구단훈련은 주말에만 이뤄졌다. 평일엔 몸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훈련에 의존했다. 기관을 통한 체계적인 훈련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도 서울대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한국의 여자야구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의식도 점차 강해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8년엔 여자야구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라경 선수는 일본 여자야구 발전 사례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일본은 여자야구 세계 최강국으로 여자 프로리그가 있을 뿐 아니라 야구의 산업화도 잘 이뤄져있다. 김 선수는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성장이 더딜까” 생각했고 한국 여자야구 제도 전반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최초가 기억나지 않도록
올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김라경 선수는 꿈꾸던 대로 서울대 야구부에서 활동 중이다. 김 선수는 “다시 남자선수들과 함께 뛰게 되니 리틀야구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야구를 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무엇보다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아직 한국 체육계는 스타선수가 나와 성적을 내고 직접 사례로 증명해야 그 종목에 지원을 해주는 식이다. 김라경 선수는 그게 현실이라면 “내가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 김 선수는 한국인 최초의 일본 여자 프로야구 진출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좋은 기량을 증명함과 동시에 야구 선진국의 여자야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배워오고자 한다.
선수로서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나아가 김라경 선수는 후배들을 위한 길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같은 성별의 선배가 없어 혼란스러웠던 김 선수와 달리 이제 그의 뒤에는 그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많다. 김 선수는 한국 여자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어린 선수들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도록 유소년야구를 육성하는 것이 출발점이라 지적했다.
야구 행정가라는 꿈을 위해 스포츠 산업, 외교 등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많다. 김라경 선수는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 현지 제도를 배워오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꼭 여자야구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지금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김 선수의 목표다. 김 선수는 “스스로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탁상행정은 되지 않을 것”이라 힘줘 말했다.

인터뷰 질문 중에는 여자 야구선수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의식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김라경 선수에게는 언론 인터뷰를 하며 숱하게 받아온 질문이었다. 김 선수는 이런 질문에 더 이상 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계속 들춰낼수록 편견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김 선수는 “(편견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며 “계속 논하는 게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야구=남자야구’라는 등식을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김라경 선수. 그의 앞날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