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 이사회에 식대 인상안이 상정된 후 생협과 학생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구내식당은 학내 구성원이 누려야 할 보편적 복지”라며 대학 당국에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했으나, 생협과 본부는 추가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식대 인상안은 일단 보류됐지만 학생과 생협 사이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없다. 문제의 쟁점은 무엇일까. 생협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을 살펴봤다.
갑자기 밥값이 오른다고?
생협 측이 발표한 식대인상안에 따르면 천원의 식사는 운영이 축소되거나 300원 인상되고, 나머지 식대는 500원 인상된다. 생협이 식대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식당 부문의 적자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카페나 매점 부문의 영업이익을 통해 식당의 적자를 메우는 방식으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식당 부문의 적자가 나머지 부문의 흑자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생협 임정빈 집행이사는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식당 부문에서 30억 가량의 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난 15년동안 식대가 동결돼온 반면, 임금과 식대료는 인상된 만큼 식대 인상안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식습관이 변화하면서 학생 식당의 식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도 적자 확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식대인상 저지를 위한 학생대책위원회(대책위)’는 식대인상안이 통과되더라도 2022년이 되면 다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대학 당국의 재정 지원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대책위 양진영(사회 17) 공동대표는 “생협의 존립 목적은 무엇보다 학내구성원의 복지에 있다”면서 “(설립 취지상) 생협은 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러한 부담을 학내구성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양 대표는 “식대인상안이 상정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논의가 전혀 없었고, 총학생회가 비민주적 식대인상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이사회는 다시 식대인상안을 상정하려 했다”며 식대인상 과정에서 일어난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생협과 본부, 미로같이 복잡한 관계
현재 생협과 본부는 각각 독립된 법인으로 별개의 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생활협동조합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998년 생활협동조합법이 제정되고 2000년 독립 법인으로서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이 탄생하기 이전, 생협은 ‘서울대학교 소비조합’, ‘서울대학교 생활복지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본부 산하에 존재했다. 그러다보니 별개의 단체로 분리된 이후에도 그 흔적이 생협 정관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임원과 이사 구성 조항이다. 현재 생협 정관 33조와 34조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부총장과 학생처장이 각각 당연직으로 생협 이사장과 부이사장으로 선임되고 학생부처장 역시 당연직 이사로 선임된다.
이런 이사회 구조 하에서 생협은 전적으로 본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운영된다. 현재 생협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의 수는 총 17명으로 당연직 이사 3인을 포함한 교원 이사 8명, 직원이사 3명, 학부생이사 4명, 대학원생이사 2명으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의 안건이 과반수를 의결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부생이사와 대학원생이사가 모두 반대하는 안건도 이사회 통과가 가능하다. 물론 이런 당연직 이사 제도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임정빈 집행이사는 “대학 생협의 탄생 배경을 고려한다면 당연직 이사 제도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실질적으로 대학 생협의 운영은 본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렇듯 본부와 생협은 생협 운영 전반을 본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지만 정작 본부 차원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주장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독립된 법인격이라는 이유에서다. 생협 사무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생협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므로 생협 내부에서 적자 감축을 위한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생협 차원에서 대학 본부에 일방적인 지원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결국 생협과 본부는 실질적으로는 ‘한 몸’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명목상으로는 별개의 단체인 애매한 상황이다.
법원까지 간 학생 대 생협 갈등
대학 당국의 독단적 운영이 지속되자, 학생들은 당연직 이사 제도를 문제삼으며 생협의 비민주적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대책위 소속 생협 이사 및 대의원 9명은 2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3월 5일로 예정된 생협 이사회 개최를 금지해달라면서 가처분 신청을 냈다. 현재 이사장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출되지 않았으므로 이사회 소집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31조 3항은 ‘이사장은 이사 중에서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총회에서 선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현재 이사장은 본부의 부총장이 당연직으로 맡았을 뿐 아니라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기에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이번 결정을 두고 생협 측과 학생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생협 측은 이사회 개최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임정빈 집행이사는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정관이) 서울시에서 허가를 받기도 했고, 관련 판례를 참고했을 때 이사회 개최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 기각과 별개로 학생들은 여전히 이사회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동현 학생이사는 ‘생협 정관이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31조의 문언과 조화롭게 해석되지 않는 면이 있다’는 법원 결정문 내용을 근거로 “(이번 결정은) 이사장 등이 적법한 자격을 가졌다는 건 아니고 가처분에서 다투기엔 부적절한 사안이라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학생들의 의도 역시 이사 자격 자체를 문제삼으려는 건 아니다. 가처분 신청의 목적은 일단 식대인상안의 통과를 늦추겠다는 데 있다. 이동현 학생이사는 “식대인상안이 이사회에서 통과되면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어 (가처분 신청이) 불가피했다”며 가처분을 신청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사회가 열려 식대인상안이 통과되면 더 이상 항의하거나 재고를 요청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이 학생이사는 “학생처장은 ‘생협의 자구책 없이 (본부 차원에서) 더 지원할 수 없다’고 하고, 생협 경영지원실에선 ‘더 마련할 자구책이 없어 식대 인상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며 생협과 대학 본부가 논의 과정에서 보인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밥값 ‘500원‘ 속 숨겨진 문제
학생들은 2020년 생협 사업계획에 포함된 생협 매점 외주화 계획도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3월 25일 대책위는 ‘졸속으로 추진되는 생협 매점 외주화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기존 생협 매점이 CU 편의점으로 전환될 경우 물가 상승의 우려가 있을 뿐더러 추진 과정 역시 졸속으로 진행됐다’며 생협 측을 비판했다. 그러나 생협 측 주장에 따르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것은 매점 ‘편의점화’로 외주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운영 권한이 외주 업체로 넘어가는 외주화와는 달리 운영 주체가 여전히 서울대 생협이기 때문이다. 임정빈 집행이사는 “이미 학내에 존재하는 편의점형 매점의 경우 운영도 생협이 담당하고, 일하는 직원도 생활협동조합에 속해있다”면서 “대형 유통망을 이용하면 학생들에게도 싼 가격에 물건을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편의점화’ 역시 외주화와 다를 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동현 학생이사는 “프랜차이즈 계약을 하게 되면 유통망 이용의 대가로 매출 총액 일부를 로열티로 지불하게 된다”면서 가격 할인이 쉽게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이 학생이사는 “편의점 같은 경우 본사에서 공급하는 물건들만 파는 것이 원칙”이라며 “특약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순 있지만 생협 차원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프랜차이즈 가맹이 단순히 유통망 이용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장기적으로 판매 물품 결정, 가격 결정 등 매점의 권리와 통제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학생들은 식대인상안이나 생협 매점의 외주화·편의점화가 장기적으로 생협 식당을 외주화하려는 의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27일 생협 경영진단 중간발표에서는 식사 부문 적자를 해소할 방안으로 ▲다향만담 폐점 ▲식당 식대 인상 ▲매점 프랜차이즈화를 비롯하여 ▲직영 식당 외주화가 제시됐다. 생협 측은 단순히 자문 결과일 뿐 생협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학생들은 매점 프랜차이즈화가 생협 전면 외주화를 위한 준비단계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양진영 공동대표는 “학내 매점 가맹화 자체는 생협 외주화 흐름의 일부”라며 “220동 식당이나 예술계식당처럼 식당이 외주화되면 식대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식대가 인상될 뿐 아니라 학생의 요구를 반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양 대표는 “현재 생협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채식 관련 상품 등을 활발하게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외주화가 진행되면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8년 아시아연구소(101동)에 위치한 감골식당이 할랄 메뉴 제공 등을 이유로 외주화된 이후, 채식뷔페 운영을 비건식에서 락토-오보식으로 바꾼다는 방침을 내놨다가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이동현 학생이사는 “학생처장이 ‘생협체제가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가장 좋은 방식인지 재검토해봐야한다’고 의문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면서 “이런 얘기나 식대 인상 시도, 매점 프랜차이즈화 등 일련의 흐름을 모두 지켜본 입장에서 외주화 의도가 없다고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이 학생이사는 “생협과 어떤 전공적 연관성도 없고, 시장중심주의자로 (생협이라는 단체와) 성향도 맞지 않는 이경묵 교수에게 생협의 경영진단을 맡긴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며 “사실상 결론을 정해놓고 (이를 말해 줄) 적합한 사람에게 연구를 위탁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경묵 교수는 지난 7월 <KBS>와 <MBC>를 민영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언론에 기고한 바 있다.

서울대 생협의 미래는?
결국 법원이 가처분을 기각한 이후 3월 19일 열린 2020년 제1차 생협 이사회에서 식대인상안은 안건에서 제외됐지만 적자를 해소할 다른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여전히 재정 지원을 둘러싸고 학생들의 주장과 생협 및 본부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임정빈 집행이사는 “이미 본부로부터 한해 20억이 넘는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본부에 지원 확대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대학 예산의 사용처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추가 지원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식대 인상도, 재정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카페나 매점 부문의 흑자를 모두 합쳐도 식당 부문의 적자를 메우지 못하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2019년까지 생협 전체 영업이익을 따졌을 때 적자가 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물론 이는 서울대 생협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생활협동조합연합회 정선교 씨는 “(다른 대학 생협도) 식수 저하, 임금 인상 등의 운영비 상승, 대학 상업화로 다양한 외부 업체가 입점하면서 발생한 수익 저하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세종대 생활협동조합은 외부 업체가 입점하는 상황에서 운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2014년 폐쇄됐으며, 다른 대학 생협 역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정선교 씨는 “일부 사례를 볼 때 (생협에) 시설사용료나 전기·수도·가스 등 운영을 위한 제반 비용을 지원하는 대학들이 있고, 이런 지원은 직접적으로 대학 구성원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생협의 위기 상황에서 대학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서울대 생협은 대학 당국에 시설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전기·수도·가스 요금 역시 모두 납부하고 있다. 양진영 공동대표는 시설사용료와 공과금 면제는 단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양 대표는 “제한된 영업이익 안에서 임금 등을 고려하다보니 노동자 처우의 문제도 많은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교수·직원·학생·노동자 등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공동연구용역을 실시해야 하고, 나아가 본부가 생협의 후생복지사업을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의 의견과 생협 및 대학 의견 사이에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생협 운영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생협의 적자 해소, 비민주적 운영 행태 개선 등 산적한 과제 앞에서 서울대 생협의 갈 길은 어디일까. 서울대학교 구성원 모두 함께 답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