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편의점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의 ‘프랜차이즈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편의점 점포 수는 4만 1,359개에 달했다. 이는 2017년 대비 4.6%(1,810개) 증가한 것으로 2018년 한 해 동안 하루 평균 5개의 편의점이 문을 연 셈이다. 편의점 산업의 약진은 매출 측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018년 프랜차이즈 업계의 전체 매출액은 3조 7,240억 원 증가했는데, 편의점 업계는 홀로 전체 증가분의 49.1%를 차지했다.
업계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편의점은 저비용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창업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 조리기구 구매 등 초기 설비 투자에 수억 원이 드는 다른 소매점 창업과 달리, 편의점 창업은 수천만 원으로도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1인 가구의 증가는 편의점 창업을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든다. ‘혼밥족’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상하면서 편의점은 혼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하며 수요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편의점 산업의 장밋빛 전망 이면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어딜 가도 편의점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금, 편의점 점주들이 직면한 문제를 확인하고 이들의 권리와 지위를 보장할 방법을 알아봤다.
손실은 점주에게, 이익은 본부에게
서울의 대표적인 1인 가구 밀집 지역인 관악구에는 거리마다 편의점이 빼곡히 차 있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제공하는 ‘소상공인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입구역 반경 1km 이내(면적 3.14㎢)에는 102개의 편의점이 영업 중이다. 1㎢당 편의점이 32개 꼴로 있는 셈이다. 관악구에서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편의점들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편의점 업계의 급속한 성장은 시장의 포화로 이어졌다. 인터뷰에 응한 편의점 점주들은 입을 모아 편의점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시장의 포화를 들었다. 개별 편의점의 안정적인 영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편의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경영하는 A씨는 “편의점 산업의 전체 규모가 커지는 속도보다 편의점 점포 수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제한된 수요를 놓고 경쟁하는 개별 편의점은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시장의 포화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맹본부)들은 여전히 공격적으로 외연을 확장한다. 국내 최대 가맹본부 중 하나인 C사는 창업 설명회를 지역별로 주 2회 이상 열고 있다. 다른 가맹본부인 G사는 서울 지역 가맹점 창업 설명회를 주중 매일 개최한다. 가맹본부들은 점주와의 상생을 내세우며 창업을 유도한다. C사의 창업 안내문은 ‘가맹본부와 점주 간 업무 분담에 따라 점주는 점포 관리 및 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안정적인 사업시스템 제공을 통해 노하우 없는 창업 희망자도 운영 가능하다’는 낮은 진입 장벽을 내세운다. 특히 C사는 개점 후 2년간 점포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보전을 약속하기도 한다.
창업 절차에서 가맹본부가 제시하는 조건은 실제보다 점주에게 유리한 것으로 과장된 경우가 많다. A씨는 “가맹본부에서 2년간 비용을 보전해주는 제도는 점주 보호의 기능도 있지만, 가맹본부에서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미끼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비용 보전 조건에 다다르면 점주 본인의 인건비조차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최소비용 보전제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최소비용 보전을 받더라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경우에만 비용 보전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맹본부는 실제보다 과장된 수익 추정치를 통해 창업자를 유인하기도 한다. A씨는 가맹본부 측 영업 직원에게서 전달받은 예상 수익을 기대하며 편의점을 창업했다. 영업 직원은 상권의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며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예상 수익은 근거 자료 없이 창업 컨설팅 현장에서 구두로 통보됐다. A씨는 “창업 후 가맹본부 측에서 제시한 예상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증언했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제9조는 가맹본부가 가맹희망자의 예상 수익에 관한 정보를 서면으로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허위·과장의 정보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A씨에게는 가맹본부가 과장해 제시한 예상 수익 정보가 단지 구두로 전달돼 서면으로 남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가맹 계약을체결한 이상 점주가 정보의 허위·과장성을 인지해도 가맹본부에 대항할 근거가 없다. 이처럼 가맹본부들은 신규출점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창업희망자를 대상으로 암암리에 불공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편의점 시장의 포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업계는 자율적으로 ‘점포 간 최단거리’ 규정을 둬 동일 가맹본부 내 신규 근접 출점을 제한하고 있다. 최단거리 규정은 가맹본부가 기존 점주들의 영업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그러나 가맹본부들은 점포 간 최단거리를 약간 넘겨 출점하는 식의 꼼수로 자신들이 만든 규정마저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B씨는 5년 전부터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C사 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B씨는 재개발 사업 후의 수요 증가를 예상하며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15년, 재개발 단지 입구 위치에 편의점을 개업했다. 그런데 재개발 단지에 입주가 시작된 지난해에 재개발 단지 내에 C사 소속의 신규 점포가 개업했다. 영업에 타격을 입은 B씨는 가맹본부에 항의했지만 가맹본부 측은 ‘최단거리 기준인 250m를 넘겨 출점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B씨를 돌려보냈다. B씨의 점포와 신규 점포의 거리는 270m였다. B씨는 “가맹본부는 규정을 지킨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왔다”며 “점주와 상생하겠다는 가맹본부가 어떻게 근처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점주와 한마디 상의 없이 이럴 수 있냐”고 토로했다.
가맹본부가 포화 상태의 업계에 계속 신규입점을 유도할 수 있는 이유는, 시장 포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대부분 점주에게 귀속되는 데 있다. 가맹본부는 프랜차이즈 전체에서 발생한 매출총이익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기 때문에 편의점에 대한 수요 자체가 위축되지 않는 한 손해를 보지 않는다. 가맹본부는 소비자가 어느 점포에서든 자신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에서 물건을 구매하기만 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점주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통상적으로 개별 점포에서 발생하는 매출총이익은 점주와 가맹본부가 7:3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가맹본부가 ‘가맹비’ 명목으로 매출총이익의 30%를 가져가면 점주들은 남은 70%로 ▲인건비 ▲임차료 ▲전기료 등 가게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용을 충당한다. 고정비용은 매출 수준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발생한다. 가맹본부의 무분별한 출점으로 개별 점포의 매출이 감소할 때, 고정비용은 줄어들지 않아 점주가 가져가는 몫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편의점 ‘사장님’, 정말 사장님 맞나요?
보통 자영업자는 매출 감소, 비용 인상 등으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 폐업을 결정할 수 있다. 현행법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편의점 점주들도 법적으로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폐업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점 가맹 계약을 들여다보면 현실적으로 폐업의 자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점주는 가맹 계약의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폐업을 결정할 경우 가맹본부 측에 시설위약금과 영업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 시설위약금은 편의점을 개업하는 과정에서 본사가 부담한 설비 투자 비용에 대한 배상분이고 영업위약금은 계약 해지로 인해 가맹본부 측이 입을 기대손실에 대한 배상분이다. 점주가 폐점 시 가맹본부 측에 물어내야 할 위약금은 수천만 원에 달한다. A씨는 “편의점 가맹 계약은 5년을 단위로 이뤄지는데 점주끼리는 이걸 ‘5년 짜리 노예 계약’이라 부른다”며 “장사가 안돼서 적자를 봐도 당장 위약금으로 지급할 돈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떻게든 5년을 버틴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점주들은 ▲경영 관리 ▲상품 진열 ▲판촉 활동 등 업무 전반에서 가맹본부가 제공한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사업자 지위가 무색하다. A씨는 “점주들은 가맹본부에서 매입한 물건을 가맹본부에서 요구하는 가격에 판매하고, 가맹본부에서 판촉 행사 지침이 내려오면 그대로 따른다”며 가맹본부가 개별 점포의 영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B씨는 “같은 프랜차이즈에 소속된 편의점 점포들은 판매하는 물건이 서로 겹치고 (판촉)행사가 중복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가맹본부의 영업 지침은 각 점포의 사정과 관계없이 일괄 적용된다.

편의점 점주는 영업시간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다른 자영업자와 차이가 있다. 영업시간은 가맹 계약에 명시된 조건 중 하나로, 점주가 이를 위반할 경우 가맹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 매출 사정에 관계없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영업시간은 점주들의 사생활을 위협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B씨는 “지인 중 가게 사정이 좋지 않아 배우자와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를 하며 점포를 지키는 점주가 있다”며 “이들 부부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일이 없다”고 밝혔다.
편의점 점주, 단체교섭 인정받을 가능성은
편의점 점주 단체의 구성은 현행법상으로도 가능하다. 가맹사업법 제14조의2에 따르면 가맹점주들은 권익 보호 및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려 단체를 구성해 가맹본부를 상대로 거래 조건에 대한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맹사업법이 보장하는 협의는 효력이 떨어진다. 이철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소상공인 단체가 가맹본부 등과 협의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 소상공인 단체와 가맹본부 사이의 교섭력 불균형을 시정하는 조치라 보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A씨는 “가맹본부는 점주 단체의 교섭 요청에 사측 책임자를 파견하는 것만으로 가맹거래법을 준수했다고 주장한다”며 현행 가맹사업법의 한계를 짚었다.
편의점주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헌법 제33조에 규정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아 사용자를 상대로 근로조건에 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된다. 민주노총 법률원 조혜진 변호사는 “편의점 점주들은 가맹본부의 영업 방법에 과도하게 귀속돼 있어 노무 제공에 따라 수입을 가져간다고 볼 여지는 존재한다”면서도 “개별적 근로관계 형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편의점 점주와 같은 개인사업자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경우, 공정거래법은 이를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사업자들의 공정 경쟁을 막는 담합 행위로 봐 규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편의점주가 노조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을 순 없을까. 대법원에서는 노무 제공 관계의 형식이 아닌 실질을 근거로 근로자 지위를 판단한다. 이철수 교수는 “편의점 점주가 노조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편의점주의 소득이 가맹본부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가맹본부가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편의점주가 가맹본부에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가맹본부의 사업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지 ▲계약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가맹본부와 편의점주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는지 ▲편의점주가 가맹본부로부터 받는 임금·급료 등 수입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다혜 강사(법학전문대학원)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근로자 개념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며 “2018년 대법원에서 진행된 일련의 판결들을 계기로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이 과거보다 더 넓어졌다”고 밝혔다.
해외에는 독립적인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업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지난 1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근로자의 범위를 폭넓게 규정한 ‘2019 캘리포니아 의회 법안 5호(AB 5)’가 시행됐다. AB 5는 해당 개인이 ▲지휘 및 감독으로부터의 실질적 자유 ▲사용자의 통상적 사업 범위를 벗어난 용역의 제공 ▲독립적 사업자의 지위의 요건들을 모두 충족시킬 때에만 개인사업자로 인정한다. AB 5에서 제시된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개인은 근로자로 분류된다. 이다혜 강사가 2019년 『노동법학』에 투고한 「미국 노동법상 디지털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 판단」에 따르면 이 법리는 사용자가 해당 개인이 자영업자라는 것을 먼저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추정되는 구조로 용역을 제공하는 사람에 유리하다.
가맹점주와 가맹본부 간 협의는 편의점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편의점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비롯한 개별 점포의 영업 환경이 가맹본부에 예속돼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프랑스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프랜차이즈에서 본사·점주·가맹점 노동자의 3자가 구성하는 노사협의체를 설치하도록 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조혜진 변호사는 “가맹점주와 가맹점 노동자에 대한 가맹본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공정한 거래를 보장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3자 노사협의체는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호혜적인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기 마련이다. 가맹본부의 무분별한 출점으로 생긴 폭발적 성장의 그늘에는 불합리한 수익·비용 배분과 경직적인 계약 조건 아래 신음하는 점주들이 있다. 점주들은 ‘5년짜리 노예 계약’의 굴레에 매여 있지만, 현재 시행 중인 법과 제도에 근거해 이들이 겪는 부당한 처우들을 해결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점 점주들은 거래 당사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당연한’ 권리를 원한다. 사업자와 노동자의 이분법적 시각의 사각지대에 놓인 편의점 점주들의 현실을 직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