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등록금’, 정말 돌려줄 순 없을까

거세지는 학생들의 반환 요구에도 대학은 요지부동
ⓒ권민재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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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우(중어중문 14) 씨는 오늘도 수업을 듣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느덧 비대면 강의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불편함과 답답함은 여전하다. 이 씨의 이번 학기는 순탄치 않았다. 원래 세 강좌를 신청했던 이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이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자 영어 강의 하나의 신청을 취소했다. 수강 학점이 9학점 이하라 학점 수에 따라 등록금을 납부하는 그는 “영어 강의의 경우 교수와의 소통이 더 중요한데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니)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이지우 씨뿐만이 아니다. 대학생들은 최근 소송까지 준비하며 등록금 반환 요구에 나섰으나 대학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학생들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학생들의 요구는 그저 무리한 요구일까.

합심한 대학들과 ‘나 몰라라’ 교육부

  코로나19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대학들은 대규모 감염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개강을 연기하고 수업 일수를 감축하는 등 학사일정을 조정하며 수업을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에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강의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과 실험·실습·실기 수업의 경우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했다. 강의가 시작되자 학생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온라인 강의의 특성상 교수와의 소통은 원활하지 않았다. 실험·실습·실기 과목은 날림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 사실상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 한편 실시간 수업을 녹음·녹화된 동영상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심지어 기존의 동영상을 재활용하는 수업까지 있었다. 수업 시간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는데, 이를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과제 부담만 증가했다.


  물론 학기가 진행되며 사이트 서버 접속 오류 등의 시행착오는 줄어들었지만, 수업권 침해를 호소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실시한 ‘코로나19 대학가 수업권 침해 사례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강의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64.5%에 이르렀다. 이에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전국 237개 대학, 2만여 명의 대학생이 참여한 전대넷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 설문에 참여한 학생 중 99.2%가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은 앞서 언급된 이유들 외에도 학교 시설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 역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이유로 꼽았다.


  학생들의 요구에도 대학들은 등록금 반환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4월 16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유학생 특별 관리, 캠퍼스 방역, 원격수업시스템 구축·운영, 기숙사 관리운영비 보전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했고 휴학생 증가, 유학생 감소, 평생교육원 등과 수익사업 운영 중지, 편의시설 임대료 감면 등 수입이 감소해 재정 손실이 확대되고 있다’며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를 일축했다. 즉, 학생들의 주장과 달리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지출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수업권 침해를 이유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재정이 어려워 등록금 반환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재정 손실이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대학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추가 지출만을 강조할 뿐 줄어든 지출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리고 있다. 대학 측은 ‘행정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회계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대넷 이해지 집행위원장은 “(등록금 반환을 거부하기 전에) 회계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대교협은 학교별 현황에 따라 등록금 반환 대신 장학금 지급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장학금 지급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전대넷에 따르면, 87.4%의 학생들이 등록금을 돌려주는 대신 장학금을 지급하는 안에 반대했다. 학생들이 납부한 등록금에 비해 장학금 액수는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이에 대교협은 장학금 지급이 최선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 제한을 해제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현재 ‘대학혁신지원사업 사업비 집행 및 관리 기준’에 의하면, 사업 목적 및 프로그램에 부합하지 않는 성격의 격려금은 사업비 집행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대교협은 이참에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완전 일반지원으로 전환해 자율성을 보장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이에 이해지 집행위원장은 “제한 완화 후 늘어난 사용 가능 금액을 대학들이 실제 학생들에게 보상하는 용도로만 쓸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상을 핑계로 규제를 낮추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등록금 반환 논의에 있어 교육부의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교육부는 반환 논의를 당사자인 대학과 학생 간의 갈등으로 돌려놓고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지 집행위원장은 “교육부·대학·학생 3자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3자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학생들의 요구가 명확하고 대학의 책임이 분명하며 교육부의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라, 이 세 주체들이 같이 모여 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3자 협의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대넷 이해지 집행위원장

우리 학교의 입장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연석회의 코로나 대응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21명 중 68%가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세미나 수업을 포함한 이론 위주 수업은 한 학기 내내 비대면 강의로 진행됐고, 역시 비대면으로 진행되던 실험·실습·실기 수업은 5월 첫째 주가 돼서야 단계적으로 대면 강의로 전환됐다. 학교 측은 비대면 강의로 인해 불충분하게 진행된 강의를 가급적 종강일 내에 집중 보충 강의로 보완할 것을 권장했다. 필요시 최대 5주간의 추가 보충 수업 기간을 부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음·미대 공동 등록금 보상 요구 TF’에서 활동 중인 음악대 김서정(기악 17) 학생회장은 “이번 학기 비대면 강의 지침은 음·미대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제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못했고 교육 환경도 조성되지 못했다”며 “이에 대한 보상은 단지 남은 주차를 보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김 학생회장은 “방학까지 연장해 진행되는 추가 보충 수업 기간의 경우 현실적으로 잘 운영이 될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등록금 반환 요구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진행한 면담에서 예산과 및 재무과 관계자는 “(등록금 반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또한 비유를 들며 “(학생들의 요구는) 치킨을 일단 다 먹어놓고 치킨이 맛이 없어졌다며 그 맛의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불해달라는 소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수업의 질은 정량화할 수 없는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본부 관계자는 “우리 학교는 등록금 수입이 1,800억 원 정도로 전체 수입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이중 장학금이 절반 이상으로 1,000억 원 가까이 되고, 학생들이 내는 돈은 800억 원 정도다. 즉, 우리 학교는 10분의 1 정도만이 학생들이 기여한 몫이고 대부분은 정부 출연금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며 등록금 반환에 부정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초 편성된 예산과 실제 집행된 예산이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기자는 학교 측에 지출내역을 파악해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기자의 요청에 본부 측은 “학교 역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아직 조사가 진행된 바는 없으며,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 또한 없다”고 밝혔다. 그 이유를 묻자 “지금 조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예년에도 1학기 초에는 집행액이 많지 않았고 보통 2학기에 몰려있었다”며 “대면 강의 재개 이후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많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교내 행사 등 역시 추후 열릴 수 있기에 아직 지출이 안 됐다고 해서 지출이 줄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본부 측은 추가 지출이 충분히 있었다고 강조하지만, 아직 정확한 내역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학교는 코로나19 이후 추가적인 수입이 생겼다.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약 2억 3,800만 원을 지원받은 것이다. 학교는 서울대 부설학교에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하는 명목으로 2,300만 원을 교육부로부터 받았다. 유학생 관리 비용으로는 약 4억 원 중 2억 1,500만 원 정도를 교육부와 서울시로부터 확보했다.


  올해 들어 예비비 편성액이 늘기도 했다. 예비비는 회계연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지출에 대비해 편성하는 항목이다. ‘2020년도 법인회계 세입·세출 예산’을 보면, 지난해엔 7억 원이던 예비비가 올해는 39억 원으로 책정돼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예기치 못한 지출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이 이미 지난해보다 32억 원 더 확보된 상황이다.

‘새로운’ 바이러스와 ‘오래된’ 문제들

  지난 5월 6일 ‘예술대학생네트워크(예대넷)’는 시국선언을 통해 ‘예술대학의 학생들은 일상이 재난이었다’며 ‘예술대학생들에게 코로나19는 기존의 문제를 더욱 가시화시켰을 뿐,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예대넷은 2017년부터 예술대학의 등록금 책정에 문제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공론화해왔다. 예술계열은 인문·사회계열 등보다 등록금을 더 많이 낸다. 지금까지 대학은 예술계열의 특수성을 차등등록금 시행의 근거로 들어왔다. 그러나 다르게 책정된 등록금은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선 같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재료비 등 실습·실기비가 온전히 들지 않았음에도 대학은 예술계열 등록금 반환 역시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예대넷 신민준 집행위원장은 “여태 실습·실기비를 이유로 등록금을 더 내라 해놓고, (등록금 반환 요구에 부딪히자)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건 염치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김서정 학생회장 역시 “이번 등록금 환불 논의에서 차등등록금에 대한 논의는 절대 빠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고 그에 따른 교육비를 지불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지불하는 등록금의 산정 근거를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차등등록금 산정 근거를 공개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학교 측은 “등록금 동결 정책이 시행된 2009년 당시의 등록금 차등 수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며 “우리도 산정 근거를 파악해보려 했으나, 10년도 넘은 일이라 공문서 등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 없어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학교 측은 “그냥 인문대는 200만 원, 미대는 300만 원, 의대는 400만 원 정도가 적당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서정 학생회장은 “자료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근거를 제공해줄 수 없다는 말과 ‘그냥 그런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라며 차등등록금의 근거가 없다는 말은 천 원 단위까지 산정되는 등록금 산정 과정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학생회장은 “일방적인 학비 책정으로 학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시 제기되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몇몇 사립대의 적립금 문제다. ‘2018년도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학교의 누적적립금은 총 8조 원에 육박한다. 교육위원회는 적립금이 학생 복지와 교육 투자에 쓰일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적립금을 풀어 교육비로 환원하는 데 쓸 것을 요구해왔으나, 대학들은 비상상황 대비라는 명분으로 적립금을 모아왔다. 신민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에도) 적립금을 쓰지 않는다면 적립금이 대학들의 돈 불리기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학 재정 운영상의 투명성 역시 오래된 문제다. 대학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돈이 많이 들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지출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등록금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해도 열어주지 않는 대학도 많다. 한편 무엇보다 학내 의사결정에 있어 학생과의 소통의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학내 의사결정에서 학생은 주로 배제돼왔는데,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해지 집행위원장은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각 대학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절차들이 마련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예대넷 신민준 집행위원장

  교육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 만큼 등록금을 환불해달라며 시작된 학생들의 운동은 이제 등록금 제도 전반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신민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엔 사회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이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수혜자 부담의 원칙을 넘어서는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요구가 단순히 상품 구매자의 권리 주장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에 돈을 낸 만큼 교육 서비스를 받는다는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함께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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