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등교육은 사실상 민간이 책임져왔다. 우리나라 대학의 80% 이상이 사립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사립대학 중에는 사학 비리로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다. 이에 교육계는 공영형 사립대를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공영형 사립대 모델의 골자는 대학 이사회의 상당 부분을 공익이사로 선임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대신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대학 재정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계의 요구에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교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공영형 사립대 전환 및 육성을 약속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2019년부터 공영형 사립대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기도 했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상지대학교는 공영형 사립대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대학이다. 한때 상지대는 비리 사학의 상징이었다. 상지대 정대화 총장은 교수 시절 학생들과 함께 재단에 맞서 싸우다 파면당하기도 한 인물로, 상지대를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그러나 공영형 사립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정대화 총장에게 공영형 사립대에 대해 물었다.

사립대를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교육기관이 교육기관답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대부분이 사립이다. 사립이 바로 서지 않으면 대학이 바로 설 수 없다는 절박한 요구 때문에 이 정책이 나왔다.
교육은 그 태생 자체가 공공적이라고 봐도 된다. 사립학교를 두고 ‘공공성과 자율성의 조화’라고 말하는데, (자율성에 초점을 맞춰선 안 되고) 압도적으로 공공성의 관점에서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자율성을 강조하면 해법이 전혀 안 나온다.
공공성이란 개념이 모호하다
공공성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다. 결국 나라에 도움이 되고, 국민 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우선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대학은 몇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족벌 체제여선 안 된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도록 문호를 열고, 재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것이 곧 공공성을 확대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그런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가
우리나라 사학은 거의 예외 없이 이사장을 비롯한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크다. 마치 우리나라 재벌과 같다. 이런 체제는 달리 말하면 ‘공동묘지의 침묵’이다. 그렇기에 몇 명의 공익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장점을 갖는다. 무엇보다 사학 비리의 발생을 차단할 수 있다.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 개방성, 투명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공영형 사립대만으로는 사학 비리 척결을 위해 충분치 않아 보인다
물론이다. 우선 사립학교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본래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 육성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립학교 방치법’, 특히 ‘사학 비리 조장법’이 돼버렸다. 사학 비리를 저질러도 (현행법으로는) 처벌도 못한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고 수십 년간 이야기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사학 비리를 저지르면 학교에서 책임지고 물러나서 다시는 교육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사학 비리를 저지르면 교육부나 검찰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은 정부가 오히려 은폐해줬다. 교육 현장의 비리에 대한 신속하고도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
정부가 사립대학 운영에 관여하는 것은 사적 소유물인 사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거짓말이다. 학교는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사립대는 법인의 소유다. 사립대를 만든 사람이 사립대의 주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립대의 이사회는 주인이 아니라 운영 주체다. 또한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더라도 지금 정부가 공영형 사립대를 강제하고 있지 않다. 원하는 대학이 있으면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한국은 대학의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며 따라서 부실대학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 맞춰 대학체제를 다시 짜야 하는데, 그냥 단순히 (대학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공영형 사립대를 지금의 지역거점국립대처럼 ‘지역거점사립대’로 만들 수 있다. 지역거점국립대와 협력해 그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 만들면 (대학체제의) 건전한 재구성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효과가 있다. 먼저 다른 대학들의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고 견인할 수 있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져 공영형 사립대로 학생들이 몰리면 다른 대학들도 공영형 사립대 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한편 자구 노력도 하지 않는 무능하고 비리가 많은 대학은 존속할 이유가 없으므로 조용히 문 닫게 될 것이다.
그 많은 사립대들을 모두 지원해주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돈이 없어서 지원을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국고만 바라봐선 안 된다. 각 대학이 발전기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은 재정의 4분의 1이 발전기금이다. 대학은 국가의 100년을 준비하는 교육기관이다. 좋은 대학을 만들면 사람들이 돈을 낸다. 또한 대학 자체가 스스로 연구 사업 등을 통해 수익금을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립대학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해 대학을 운영하면 안 된다.
현재는 지방의 사립대들을 중심으로 공영형 사립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정이 어렵지 않은 수도권의 거대 사립대들은 공영형 사립대로의 전환을 희망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 대학들은 그대로 둔 채로 몇몇 대학들만 공영화시킨다고 전체 사립대의 공공성이 높아질지 의문이다
(수도권의 거대 사립대들 입장에선) 지금은 할 필요가 없지만, 나중에는 모른다.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시행할 때 1단계에서 참여할 대학, 2단계에서 참여할 대학, 3단계에서 참여할 대학이 달라질 것이다. 좋은 모델을 선보이면 따라가게 돼있다. 공영형 사립대 전환 이후 등록금이 더 낮아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보며 그렇지 않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우리도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자’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영형 사립대 공약은 지난 3년 동안 사실상 거의 진전된 것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당초 정부는 2019년부터 시범적으로 일부 사립대를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할 방침으로 교육부는 2019년 예산안에 812억 원을 편성해줄 것을 기획재정부(기재부)에 요청했다. 이에 기재부는 *예비타당성조사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812억 원의 예산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기재부의 반대가 아쉽고 유감스럽다. 기재부가 교육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수입 대비 지출을 계산하는 것인데, 예비타당성조사가 가능한 영역이 있고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교육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교육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재부에만 책임을 돌릴 문제는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도 반성해야 한다. 기재부가 반대한다고 모든 정책이 실행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긴급재난지원금 문제에 대해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며 태클을 건 적이 있었다. 이에 당정청이 함께 모여 논의하고 설득해 결국 시행됐다. 즉,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정책이 있으면 충분히 협의·조정할 수 있다.
상지대는 지난 2월 교육부의 정책 연구 사업에 선정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금액은 1억 5천만 원, 연구기간은 6월 말까진데, 실질적인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충분한 지원이라고 보는지
프로젝트만 보면 돈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나 상지대의 정책 연구는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상지대에서 공영형 사립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됐다. 지난 10년 동안 해온 상지대 자체의 노력을 이번 프로젝트에 담는 것이기에 우리로서는 돈이나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다. 상지대는 (대학 운영) 민주화 추진 과정에서 이미 우리 나름대로의 모델을 만들었다.
교육부는 연구 사업을 계기로 기재부를 다시 설득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가 기재부를 압박할 만큼 힘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20대 국회와는 다른 21대 국회에 주목하고 싶다. 예산 편성은 기재부가 하지만, 예산 의결은 국회가 한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육부의 설득보다는 국회의 설득을 조금 더 기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위해 상지대 차원에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정부가 공영형 사립대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지대는 나름대로의 길을 갈 것이다. 상지대는 이번 가을 자체적으로 공영형 사립대로 출범한다. 정부 사업은 재정을 매개로 하지만, 공영형 사립대의 본래 취지는 재정 지원에 있지 않다. 돈을 준다고 공영이고 안 준다고 공영이 아닌 것은 아니다. 대학이 공공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공영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과 무관하게 상지대가 스스로 좋은 대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먼저다.

서울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립대인 서울대가 사립대 문제에 관심을 가져줘서 대단히 고맙다.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립과 사립을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공공성의 관점에서 여러 대학과 학생들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부분이 많다. 국립대 학생들은 국고 지원을 받으니 대학 발전에 대한 일종의 책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립대가 사학 비리를 넘어 공영형 사립대로 발전하도록 서울대 학생들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사학 비리가 있어서는 절대로 교육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주목해달라.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에 대해 사전에 사업 타당성을 검증·평가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