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을 지나
수업에서 튕기더라도 오렌지주스는 마시고 싶어
161호 비하인드저널

수업에서 튕기더라도 오렌지주스는 마시고 싶어

  100퍼센트 오렌지주스라고 불리는 음료가 오렌지를 통으로 갈아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산지에서 착즙된 오렌지는 살균 처리 과정을 통해 향과 풍미가 사라진 원액이 된다. 이 원액을 공장으로 운반하여 구연산, 설탕 등의 감미료와 향료, 색소 등을 넣어야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오렌지주스가 된다. 식감을 위해 오렌지 과육을 따로 넣는 경우도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이런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로 거듭난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대상에서 우리는 취하고 싶은 요소들을 선택하여 추출하고 재조합한다. 인류의 역사는 자연을 재구성해온 과정이고, 착취는 인간에게 이 재구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부추기는 원리이며, 소외는 그 부작용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나는 오렌지주스뿐 아니라 우리의 의사소통에서 이러한 재조합의 실마리를 찾는다. 썩은 오렌지를 골라내듯, 우리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서로에게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 평소 직접 대면이 일반적이었던 우리의 소통 방식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에 따른 ZOOM 강의로 대표되는 비대면 접촉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나는 ZOOM으로 강의를 듣게 되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강의 내용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고, 자료를 인쇄해서 볼펜으로 필기하는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나에게 전면 온라인 강의는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좋아진 덕인지, 인간이 적응이 빠른 동물이라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대면 강의는 내게 편한 일상이 되었다. 가장 좋은 점은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점이었다. 예전이었으면 열정적인 강의가 한창인 조그만 강의실에서 남들의 시선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도록 고개를 숙여 조용히 강의실을 빠져나가야지만 갈 수 있었던 화장실을 내키는 대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고무줄 바지를 입고 강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1.5교시 수업을 9시 25분에 일어나서 정시 출석할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편리했다.

  내가 전송하고 싶은 나의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비대면 강의의 장점으로 꼽힌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잠시 웹캠을 끄고 나의 영상 정보 송출을 중단한 뒤 볼일을 보면 된다. 웹캠의 각도를 조절하여 잠옷 차림의 하의를 안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방금 일어나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멀쩡한 척 앉아있을 수도 있다. 음소거로 돌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필기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수업을 듣다가, 마이크를 켤 땐 모드를 바꿔서 어느 때보다 호기심 가득한 학생인 척 할 수도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자연 상태의 나를 재조합하여 덜고 싶은 것을 덜고 더하고 싶은 것을 더하는 것은 재밌는 일이었다. 마치 오렌지 원액에 구연산과 설탕을 섞고 과육을 첨가하여 진짜 오렌지주스를 만들 듯이. 교수님들도 카메라를 의식하시는지, 최대한 잡담을 자제하거나 수업과 관련된 것으로 줄이고 수업도 더욱 알차게 준비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실시간 강의라고 하더라도 1시간 15분보다 빨리 끝나거나, 시간을 다 채워서 강의하면 예년 진도보다 빨리 나가곤 했다. 오렌지에게 오렌지다움을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오렌지주스에게 오렌지다움을 요구하듯이, 우리는 비대면 상황에서 더욱 ‘교수다움’이나 ‘학생다움’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비대면 강의의 단점은 비대면 강의의 장점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대면 강의보다 명확하고, 통제 밖의 환경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무력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우선 서버나 와이파이 문제가 그렇다. 내가 수강하는 초급한문 1은 퀴즈와 중간고사를 온라인으로 치렀는데, 40여 명의 학생 중 2~3명은 꼭 한 번씩은 서버에서 튕겨 나갔다. 다른 수업에서는 교수님의 와이파이 환경이 좋지 않아서 접속이 차단되는 바람에 수업 중간에 사라져버린 교수님을 10분 정도 기다린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이제 모두의 존재가 디지털화되어서 깜빡거리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버퍼링에 걸릴 때마다 내 존재는 일순 사라지고, 서버가 원활해지면 다시 활성화된다. 존재가 사라질 때마다 ‘사이버 세계’라는 대기열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렉 때문에 표류하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대기열에 모여있다. 시험을 치르다가 ZOOM 강의실에서 튕겨나간 학생들도, 6동 와이파이가 좋지 않아 컴퓨터를 재부팅하려는 교수님도, 그리고 잠깐씩 버퍼링에걸려 모두의 말이 느리게 들리는 나조차도.

  비대면 강의의 또 다른 단점은 자연의 대상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반드시 놓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온다. 연주, 체육 등 교수자의 섬세한 교정이 필요한 수업이나 교생 실습, 사회봉사 등 기관에 가서 해야 하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불만이 엄청났다. 이 때문에 음미대를 중심으로 연석회의는 등록금 반환 운동을 주도하였고,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등록금 반환 소송을 걸기도 하였다. 이 운동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와 해석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운동은 비대면의 시대에 통제할 수 없었던 환경을 개선하라는 요구이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사이버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보고있다.

  오렌지주스에 들어가는 수많은 감미료의 진실을 알아채고 “이건 가짜야!”라고 분개하는 건 이미 산업화 시대에 끝났어야 했던 이야기다. 현실을 재구성한 사이버 세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그것이 실재냐 허상이냐의 논쟁이 무의미할 정도로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우리들이 조각조각 분열되어 사이버 세계 안에서 재구성되는 이 시점에서, 느슨하고 넓은 의미가 됐든, 마르크스적 의미가 됐든, ‘착취’나 ‘소외’의 개념은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항상 그랬듯이 중요한 것은 누가 통제권을 갖느냐는 문제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넓은 범위에서 더 양질의 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을 향해 우리는 가야할 것이다. 오늘 저녁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한 번쯤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김희지(철학 15)

과학철학으로 논문 쓰고 졸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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