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즐기는 리얼돌’. 길거리 한편에 대형 간판이 버젓이 서 있다. 리얼돌 체험방 광고다. 체험방 영업은 인터넷에서 더욱 본격적이다. 체험방 업체 사이트들은 체험방 이용뿐만 아니라 창업도 홍보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인 리얼돌 시장의 확장을 꾀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여름, 대법원은 리얼돌의 통관보류 처분 취소를 확정지었다. 리얼돌이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성기구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리얼돌을 활용한 성산업이 시작되는 지금, 리얼돌이 여전히 사적 영역에서만 사용된다고 볼 수 있을까. 리얼돌 체험방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 ‘오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1시간 3만 원. 리얼돌 체험방의 통상적인 이용 요금이다. 업소별로 조금씩 비용의 차이가 있지만, 핵심은 같다. 리얼돌 구매 가격에 비해 체험방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점이다. 리얼돌 구매에 선뜻 수백만 원을 지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리얼돌 ‘체험’에 단돈 3만 원을 쓰는 건 쉽다. 리얼돌 체험방은 이런 이유에서 등장했다. 큰돈을 들여 리얼돌을 장만하기는 망설이면서도 리얼돌을 사용해보고는 싶은 잠재적 이용자 집단을 노렸다.
리얼돌 체험방은 유사성매매 업소의 일종인 ‘오피방’과 비슷하게 운영된다. 체험방을 예약하면 리얼돌이 있는 오피스텔 방 호수를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운영방식은 체험방이 역세권이나 대로변에도 버젓이 자리할 수 있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 체험방은 평범한 오피스텔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체험방이 번화가에 위치할수록 이용자의 ‘죄책감’은 줄어든다. 한 이용자는 체험방 업체 사이트 게시판에서 ‘(체험방이) 대로변에 있다면 ‘일반인 코스프레’가 가능할뿐더러 사람이 많으니 (남들의) 시선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업자들은 리얼돌 체험이 합법이라고 강조한다. 리얼돌은 건전한 자위 기구이므로 미성년자가 출입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주장이다. 기자가 한 리얼돌 체험방에 연락해 예약을 시도했다. 30초도 되지 않아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체험방을 예약하는 데는 이름도, 나이도 필요 없었다. 실제 업소에 방문했을 때도 별다른 신원 확인 절차는 없었다.

업소에 도착하기 전 방 청소가 늦어지고 있다는 운영자의 연락이 왔다. 당초 예약한 시간보다 20분 늦게 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초인종을 두 번 누르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7평짜리 좁은 방 안에는 기자가 방문하기 직전 누군가가 급하게 청소한 흔적이 역력했다. 화장실의 물기 어린 바닥과 건조대에 쌓인 수건 더미가 눈에 띄었다. 싱크대에는 리얼돌 세척에 쓰이는 파우더와 붓이 놓여 있었다.
리얼돌 체험방 내부는 영락없는 주거용 오피스텔이었다. 기본적인 세면용품과 청소도구가 구비돼 있었다. 부엌 찬장에선 와인 잔 두 개와 몇몇 식기를 찾을 수 있었다. 블라인드로 가려져 어두운 가운데 창밖에는 업무로 바쁜 사무실이 보였다. 북적이는 도시 한가운데 외딴섬, 그곳에 리얼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소자본, 고수익, 블루오션?
리얼돌 체험방은 주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된다. 일반 프랜차이즈의 본사 격인 체험방 업체는 사이트를 통해 가맹점 운영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국 곳곳에 위치한 업소를 검색할 수 있다. 아직 개업 전인 체험방의 정보도 있다. ‘상권 분석 중’, ‘지사장 협의 중’, ‘인테리어 및 세팅 중’인 업체들이 인터넷 화면에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국내 리얼돌 제작업체 ‘팀포유’ 김성식 대표는 “(체험방 업체들이) 이미 체험방을 다수 확보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체험방 창업을 보다 그럴듯한 사업으로 포장한다는 얘기다.
리얼돌 체험방의 창업 과정도 여타 일반 프랜차이즈의 경우와 비슷하다. 상권조사와 입지선정에서 시작해 점주 교육을 거쳐 개업하는 식이다. 창업주 모집을 위해 체험방 업체 간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업체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각 업체만의 ‘독보적인 혜택’을 내세운다. ‘ㄷ’ 업체는 리얼돌은 물론 일회용 오나홀, 리얼돌 보수 및 관리에 쓰이는 용품 등을 지원한다고 홍보한다. 온라인 쇼핑몰 제작과 전단형 명함 무료 제공은 덤이다.
‘소자본 고수익’은 리얼돌 체험방 업체가 체험방 사업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뭘까. 우선 체험방은 음식점이나 의류매장처럼 접근성이 좋은 상권에 위치할 필요가 없다. 입소문을 통해 체험방을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임대료와 보증금이 낮아진다. 인테리어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카페처럼 내부 인테리어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리얼돌 가격으로 인한 부담이 적다는 의견도 있다. 섹스콘텐츠 미디어 ‘레드홀릭스’ 백상권 대표는 “리얼돌 가격이 개인에게는 비쌀 수 있어도 사업자 입장에선 비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리만 잘하면 200만 원 내외로 구매한 리얼돌을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체험방은 ‘매력적인’ 창업 아이템으로 둔갑한다.
리얼돌 체험방이 정말 매력적이기만 한 사업 아이템일까. ‘ㅉ’ 업체는 2018년 기준으로 체험방 수가 100개 내외이며, 시장이 확산 추세라면서도 ‘확장의 병목이 발생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발빠른 사람은 대부분 시작’했다며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설명한다. 김성식 대표도 체험방 시장의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이다. “인형 내구성이 굉장히 약하다. 손님이 많이 왔다는 가정하에 1~2주면 다 망가질 거다. 손님이 많이 갈 리도 없다. 중고 제품 구매도 꺼리는 게 성인용품인데 굳이 돈 내고 체험방에 가겠나. 체험방에 간 사람도 대부분 리얼돌 업계에 몸담아보려는 사람이지 그냥 리얼돌을 이용하러 가는 사람은 소수일 거다. 제게 찾아온 사람들도 체험방에 가 봤는데 찝찝해서 만져보지도 않고 나왔다더라.”
리얼돌 체험방 업체도 체험방 시장의 불확실성을 잘 알고 있다. 백상권 대표는 ‘리얼돌 체험방 창업, 망하는 이유를 알아보자!’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다가 지금은 망하는 경우가 좀 많다’고 설명한다. 이에 체험방 업체들은 업소의 재방문율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백 대표는 여러 가지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그중 하나가 ‘특화 VR 콘텐츠’다.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VR로 이윤을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ㄷ’ 업체는 창업주에게 실시간 성인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VR과 성인 콘텐츠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수단이 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리얼돌 체험방이 생기기까지
리얼돌 체험방의 기원은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며 다양한 유사성매매 업소가 새롭게 등장했는데, 인형체험방도 그중 하나였다. 2006년 노현송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 리얼돌을 직접 들고 와 ‘인형방’이 성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인형체험방은 음란물 상영을 근거로 단속되며 점차 사라졌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인형체험방이 ‘리얼돌 체험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대법원의 리얼돌 수입 허가 결정이 그 원인일까. 대법원 판결 직후 리얼돌 수입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6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언론에 크게 알려졌다. 실제로 언론이 리얼돌로 시끄러웠던 지난해 7월 리얼돌에 대한 구글 검색량이 대폭 증가했다. 법망을 피해가며 수입돼 ‘아는 사람만 알던’ 리얼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정작 리얼돌 업계 관계자들은 리얼돌 체험방의 등장이 대법원 판결과 큰 관련이 없다는 반응이다. 김성식 대표는 2018년 리얼돌 제작업체 팀포유를 설립한 직후부터 체험방 창업 문의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체험방 창업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리얼돌의 통관보류 취소 결정으로 리얼돌 공급이 쉬워져 체험방이 나타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대법원이 모든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정상적인 통관이 가능한 건 당시 소송 대상이 됐던 해당 리얼돌 모델의 경우로 제한된다. 지난해 대법원 결정 이후로도 리얼돌 공급이 쉬워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즉 체험방의 등장 배경을 알기 위해선 대법원 판결 이전의 리얼돌 수입 과정과 제작업계의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국내에 유통되던 리얼돌은 모두 수입제품이었다.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성식 대표는 “국내 리얼돌 제작업체는 두 군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리얼돌은 중국에서 들여오게 된다. 특히 리얼돌 체험방으로 공급되는 리얼돌은 모두 중국산으로 봐야 한다. 김 대표는 “중국산 말고는 제일 싼 모델이 800만 원대”라며 “중국산 아니고서는 체험방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칙대로라면 리얼돌은 관세법 제234조에 따라 통관이 제한된다. 그런데 리얼돌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버젓이 수입·유통되고 있다. 리얼돌이 통관보류를 피해 수입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리얼돌의 성기와 유두 부분을 제거하고 수입하는 경우다. 통관 과정에서 문제 되는 부분만 지우고 들여와 국내에서 2차로 수정한다. 두 번째 방법은 밀수다. 수입 신고를 다른 상품의 이름으로 하는 등의 방법이다. 김성식 대표는 밀수된 상품이 통관에서 걸리더라도 국내에서 제작된 제품이라고 주장해버리면 편법으로 수입된 제품인지 밝힐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방법은 중국 제작업체와의 협업이다. 중국 제작업체는 리얼돌 제작 기술을 갖고 있으나 중국 내 리얼돌 인기가 시들고 판매량이 줄며 곤란을 겪고 있다. 반면 한국 유통업체는 리얼돌 제작 기술이 없지만 리얼돌의 잠재 수요층을 갖고 있다. 중국 제작업체와 한국 유통업체가 손을 잡은 이유다. 이렇게 유통되는 리얼돌은 사실상 중국 기술로 만든 중국 리얼돌이지만 한국에서 제작돼 통관의 문제에서 자유롭다.
리얼돌 체험방이 등장한 이후 리얼돌 판매업자들은 새로운 고객층을 찾았다. 기존에는 개인 고객을 노리고 리얼돌을 판매했다면, 이제는 체험방 업체로 초점을 옮긴 것이다. 김성식 대표는 개인을 상대로 한 판매업체의 수익이 줄어든 반면 체험방을 상대로 한 업체의 수익은 증가했다고 말했다. 리얼돌 판매업체와 체험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모습이다. 아예 리얼돌 판매와 체험방 사업이 뭉치기도 한다. 섹스토이를 취급하는 ‘ㅈ’ 업체를 중심으로 리얼돌 전용 도소매 쇼핑몰과 함께 운영되는 ‘ㅉ’ 체험방 업체가 대표적이다. ‘ㅇ’ 체험방 업체 역시 섹스토이 및 리얼돌을 취급하는 ‘ㄹ’ 업체가 관리한다.
리얼돌 체험방 업체들은 창업주에게 체험방 이외에 다른 창업 옵션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ㄷ’ 업체는 ‘리얼돌 산업은 체험방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 렌탈샵 등 여러 분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홍보한다. 리얼돌 소비가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는 모습이다.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지난해 사법부는 리얼돌이 ‘인간이 은밀하게 행하기 마련인 성적 행위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된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국가는 개인의 사적 영역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이 더해져, 리얼돌 통관보류를 취소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리얼돌은 개인이 성적 만족을 위해 은밀하게 사용하는 도구이기에 국가가 리얼돌 규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리얼돌 체험방의 등장은 ‘사적 영역에서의 사용’이라는 대법원 판결의 전제에 의문을 던진다. 이제 사람들은 돈을 주고 리얼돌의 이용 시간을 구매한다. 체험방 운영에 동원되는 리얼돌은 각종 방법으로 수입·제작된다. 게다가 체험방뿐만 아니라 렌탈 사업 등의 부수적인 사업 형태도 생겨나고 있다. 체험방을 중심으로 하는 리얼돌 산업이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리얼돌을 사적 영역에서만 사용한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리얼돌 규제에 우려를 표했던 법원의 판단부터 재고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