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이상문학상 사태’에 많은 작가들이 연대해 업무 거부에 나섰습니다.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는 ‘내 노동성과가 부조리에 얽히다니 수치스럽다’며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비단 한 출판사가 아닌 문학·출판계 전반에 걸친 문제입니다. 문학·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점을 살피고 그들의 노동 환경을 조망하기 위해 연재 기사를 기획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문학·출판계의 노동 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다음 호에서는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어렸을 때 보던 그림책에서 교과서나 문제집, 소설책까지 주변에서 종이책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자책의 등장과 함께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여전히 종이책은 우리 곁에 있다. 종이책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단계를 거친다. 서점에서 쉽게 책을 집어드는 것에 비해 책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출판 과정을 따라가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처지를 살폈다.
작가가 을이 되기까지
책을 쓰는 사람은 작가다. 보통 작가라 하면 등단제도를 통과해 문단에 진입한 이들을 말한다. 물론 책을 내는 것 자체에 특정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등단제도는 문단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조건이다. 등단제도를 거치지 않은 작가들을 겉으로 드러나게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미등단 작가’로 따로 분류된다.
문단은 등단한 작가들이 작품을 내는 문학제도권 내의 활동영역을 말한다. 매년 신문사의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신인상 공모를 통해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등단하고 있다. 최근 들어 독립 출판이나 1인 출판사가 생겨나고 있지만 작가 지망생에게는 부담이 되는 방법이다.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에 제시된 작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5%의 응답자가 문학공모전을 거치지 않으면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실질적으로 문단이 한국문학을 대표하기 때문에 책을 내는 것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선 결국 등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쟁률이 5~600:1에 달하는 등단제도를 통과해 문단에 ‘데뷔’한 작가는 계약 문제를 마주한다. 출판사는 계약 전 작가의 이전 작품을 검토해 출판사의 기획의도와 맞는지를 확인한다. 따라서 작가가 계약을 맺어 책을 출판하기 위해선 출판 이전에 자신의 글을 보여줄 기회가 필요하다. 문학계에서는 문예지가 그 통로가 되는데, 일반 독자는 읽지 않는 문예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까닭이 여기 있다.
문예지에 글을 싣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가 문예지 발표 지면을 얻기 위해서는 문예지 기획위원의 원고 청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작가들은 원고 청탁이 오면 부당한 조건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글을 세상에 보일 기회 없이는 자신의 책을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문예지의 발표지면을 배분할 권한은 곧 ‘문학 권력’이 된다. 문학 권력은 문단 내에서 이미 인정을 받은 소수의 작가나 평론가의 몫이다.
이렇게 문학 권력을 쥔 소수의 작가나 평론가, 즉 ‘갑들’은 원고 청탁에서만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등단제도의 심사도 같은 갑들이 맡는다. 소수의 작가나 평론가가 문예지 기획위원이라는 이유로 출판에 필수인 등단 심사와 원고 청탁을 모두 좌우하는 상황이다. 문예지 기획위원이 동시에 신인상 심사위원을 맡는 기이한 상황은 문예지와 문예지 기획위원에 문학 권력이 집중되는 문단 내의 권력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
잃어버린 작가의 권리

작가가 출판사의 계약 대상으로 선택돼도 문제는 남아있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도 작가들의 권리가 침해된다. 2019년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가 실시한 저작재산권양도조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저작재산권양도조약 전에 출판사로부터 계약 내용에 대해 항상 설명을 듣는다고 답한 작가는 6.7%에 불과했다. 출판사가 출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계약서를 작성해도 계약서대로 진행하지 않아 작품이 출간될 때까지 무기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저작물을 기본으로 하는 출판계에서 저작권을 엄격히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출판사나 문예지가 작가의 동의 없이 책과 문예지에 작품을 싣고 작가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작료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올해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사태’도 이런 맥락에서 발생했다. 출판사는 ‘3년간의 저작권 양도 규정’을 수상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작가들이 조항 수정을 요구했지만 출판사는 이를 묵살했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오창록 지부장은 “(윤이형 작가의) 절필선언과 작가들의 연대로 이번 사건이 공론화된 것일 뿐, (문학계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는 어떨까. 문예지는 원고 청탁 과정에서 명확한 원고료를 제시하지 않는다. 묵은 쌀로 원고료를 대신하거나 문예지 사정이 어렵다며 정기구독권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여기에 ‘작가는 돈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문학계의 분위기가 더해진다. 이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원하는 작가들을 돈을 밝히는 ‘속물’로 만든다. 결국 작가들은 정당한 요구도 말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글쓰기라는 작가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출판계 문화가 반영된 결과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책임을 진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출판계는 작가의 책임을 보상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자정하기는커녕 ‘관행’이란 이유로 덮어놓기 급급하다. 심지어 출판사가 작가의 기획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출판사의 횡포가 있을 때 작가들은 문제를 제기하기조차 어렵다.
글을 책으로 만드는 사람들
작가가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책의 형태를 갖추게 하는 사람은 편집자다. 편집자라 하면 원고를 교정·교열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 편집자의 역할은 이보다 넓다. 편집자는 교정·교열은 물론, 새 책의 기획부터 저자 섭외와 계약도 맡는다. 어떤 책을 어떻게 만들지 계획하고 받은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편집 업무인 셈이다.
편집자는 크게 세 가지의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편집 업무가 아닌 다른 직종의 일을 맡게 되는 경우다. 편집자에게 마케터나 디자이너의 업무를 지시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문제를 넘어 부당 노동에도 노출된다. ▲수당 없이 업무 시간 외 추가 노동 지시 ▲사내 청소 강요 ▲출판과 상관없는 출판사 대표 보조 업무 요구 등의 사례는 여러 출판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혀 관련 없는 부서로 옮겨지는 부당 인사의 경우도 있다. 윤정기 편집자가 겪은 일은 대표적인 부당 인사의 사례다. 2015년 자음과모음 출판사 소속 윤 편집자는 갑작스런 인사발령을 받았다. 물류팀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지시였다. 윤 편집자는 출판사의 부당인사에 항의했지만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편집자 직무로 복귀할 수 있었다.
편집을 마친 후에는 디자인 과정이 남아있다. 북 디자이너는 표지 및 본문 디자인을 담당한다. 디자인은 출간 진행 순서상 마지막 단계로, 이전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기게 된다. 2015년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의 출판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디자인 업무 종사자가 ‘주 5회 이상’의 연장근로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6%로 출판계 내 다른 직군보다도 10%p 높다.
종이책의 위상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은 편집자와 북 디자이너에게 악재다. 종이책 외에 다른 매체들이 많지 않던 과거엔 출판사가 책을 ‘잘’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는 출판사가 홍보나 마케팅에 힘을 쏟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에 출판사는 굿즈, 북토크 등 다양한판매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출판사가 신경 쓸 업무가 늘어나면서 편집자와 북 디자이너의 업무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늘어난 업무량만큼 인력을 충원하기보단 기존 인원의 업무량을 늘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편집자가 편집 업무 외의 마케팅 등의 업무를 요구받고 북 디자이너의 연장근로가 불어나는 배경이다.

출판계의 노동환경은 어떤가
4년째 같은 출판사에 근무 중인 김윤우 편집자는 입사한 지 2년이 지나서야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근로계약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근로계약서가 없다면 노동자들은 부당인사나 해고 등 사측의 부당한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편집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매일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고용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출판노동 실태조사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20%에 이르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나 교부받지 못했다는 응답 또한 10%가 넘었다.
출판계의 보수 체계도 열악하다. 야근이나 주말근무에 따른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월급을 연봉의 13분의 1로 지급하거나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모두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출판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1주일에 평균 연장근로를 1~2회하는 경우만 50.3%, 그 이상은 22.4%로 연장근로를 하지 않는 경우는 25%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우 최소 주 1~2회 연장근로를 하지만 이 중 제대로 보상받는 경우는 4명 중 1 명꼴이다.
임금 책정 미비도 문제로 지적된다. 출판공동체 ‘편않’(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기경란 디자이너는 “출판계는 정해진 지표가 없어 급여가 책정되는 기준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출판 노동자들이 ‘근로시간과 업무강도에 비해’, ‘숙련도와 경력에 비해’ 임금이 적다고 지적해도 이를 구체적으로 요구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이유다. 기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는 과거나 지금이나 박봉”이라고 한탄했다. 이렇듯 출판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부담을 겪는 동시에 임금 불안을 떠안게 된다.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판 노동자는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들은 고용 불안을 쉽게 털어놓기 힘들다. 작은 규모의 사업장이 많아 사용자나 상사와 갈등이 생기면 사내에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출판 노동자들이 갈등 상황이 생기면 퇴사나 이직을 택한다.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반영하듯, 출판계의 평균 재직 기간은 3.1년에 불과하다. 3.1년은 중소기업연구원에서 밝힌 한국 근로자 평균 재직기간은 6.3년이나 5~9인의 소규모 사업장의 평균 재직기간인 4.4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출판계의 짧은 근속연수는 노동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회피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회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출판계의 노조는 총 7개로 사업장 내 노조가 있는 출판사가 극소수인 상황이다. 각 출판사 노동자들의 연대를 위한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가 있지만 사측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오창록 지부장은 “실질적으로 사측과 대등하게 교섭을 진행하거나 가시적인 영향력을 보이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노동환경 개선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관행’이라며 문제를 회피하는 사용자의 태도다.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그 피해를 노동자가 온전히 감내해야 한다. 이상문학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올린 공식 입장문에서 문학사상사는 ‘편집부 직원들의 대거 퇴직으로 인해 일련의 상황 수습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이에 대해 ‘결정권자의 잘못은 숨기고 직원들을 방패로 삼은 꼴’이라고 지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출판계 사용자 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 입장문 역시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이상문학상 사태 이후 ‘이와 같은 행태가 회원 출판사에 벌어지는지를 살폈으나, 문제되는 것이 없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입장문이 이상문학상 사태가 수면에 드러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충분한 조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창록 지부장은 이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관성적으로 사과할 뿐, (사용자들의) 태도에 변화는 없다”고 지적한다.
책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된다. 하지만 정작 책을 만드는 이들은 그들이 가야할 길을 제대로 갈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오창록 지부장은 “(관행이란 변명은) 출판사가 대처능력이 없다는 것을 숨기려는 표현”이라 말했다. ‘관행’이란 변을 들어줄 시대는 이미 지났다. 출판계 노동환경이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