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쀽이’와 ‘뺙이’. 자하연에 사는 오리 두 마리에게 학생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지난해 3월 자하연 내 물고기 개체 수 조절과 자하연 수질 관리를 위해 캠퍼스관리과에서 데려온 쀽이와 뺙이는 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왔다. 지난해 여름, 퇴행성 관절염으로 쀽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뺙이 혼자 외롭게 자하연을 지키고 있다. 최근 뺙이 역시 몸이 불편한 모습을 보이자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터져 나왔다.
학내 커뮤니티 ‘스누라이프’를 통해 뺙이의 부상을 처음 알린 졸업생 A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뺙이가) 지난주 금요일(12일)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일요일(14일) 오후에 (부상을) 발견했다”면서 “처음 봤을 때는 아예 한 걸음 걷는 것도 힘들어했고, 주저앉았다가 잠깐 움직이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캠퍼스관리과에 전화해 뺙이의 부상을 알리고 치료를 요청했으나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A씨는 “월요일에 캠퍼스관리과에 전화해 조치를 취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19일까지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서 수의대에 진료 예약을 요청하는 기본적인 일도 뒤늦게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이에 A씨는 사비를 들여 뺙이를 치료하려고 했으나, 이마저 제지당했다. 뺙이가 학교의 재산이라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치료할 계획도 없고, 개인이 치료해도 안 된다고 해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수질관리를 위해 데려온 만큼 새로운 오리를 가져올 계획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A씨는 “현재 총장님께 메일까지 보낸 상황”이라며 “제가 바라는 건 오리가 치료를 잘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부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수질관리를 목적으로 오리를 들여와 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뺙이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캠퍼스관리과 유재식 선임주무관은 “치료 계획이 없던 것은 아니고, 다른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가 수요일에 (관련 내용을) 들었다”면서 “검토를 하고 진료 의뢰를 하는데 절차적으로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선임주무관은 “예전 진료 결과, 퇴행성 관절염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오리의 상태를 당장 확인하긴 어려워 진료를 받아봐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경우 치료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사비로 치료를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추후에 권리 관계가 발생하는 등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치료를 허락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오리 치료를 목적으로 발전기금에 기부하고 이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은 어렵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 선임주무관은 “자하연 물고기 개체수 조정 및 수질관리를 목적으로 오리를 들여왔기 때문에 오리 관리 자체에 신경을 쓰긴 어렵다”면서 “재정만이 문제는 아니고 사업 목적이나 인력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A씨와 함께 뺙이 치료를 요구하고 공론화를 계획 중인 학부생 B씨는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통해 ‘힘을 모아서 학교 측에 공식적으로 오리의 치료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학교 측 허락 없이는 치료가 불가능한 만큼 공론화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B씨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수질관리를 위해 오리를 데려온 것까진 이해하지만, 사실상 본부가 뺙이를 홍보를 위해 마스코트처럼 활용해왔다”면서 “그래놓고 (나중엔) 오리를 부속품 취급하며 기능을 못하게 되면 교체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분노했다.

실제로 빡이는 서울대학교 홍보를 위해 활용되고 있었다. 서울대 공식 인스타그램이나 <서울대사람들>이라는 잡지엔 ‘뺙이’가 마스코트처럼 등장한다. ‘뺙이가 알려주는 S-CARD 혜택 총정리’, ‘자하연 오리 뺙이의 봄, 그리고 쀽이’ 같은 식이다. 소통팀 관계자는 “(뺙이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면서도 뺙이가 공식 마스코트인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오리를 처음 데려온 목적은 수질관리고 관련 업무도 캠퍼스관리과 소관영역이기 때문에 (관여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애초에 오리를 데려온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내 커뮤니티에는 ‘오리 한 쌍으로 수질 관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홍보담당 부서에서 제대로 관리하면서 마스코트를 삼든지, 그런데 쓸 돈 없다고 하면 없애는 게 맞다’거나 ‘학교가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데려다놓고 고통을 방치하는 등 생명을 경시하는 게 경악스럽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진료는 예정돼 있지만 치료 비용에 따라 뺙이에게 적절한 치료가 이뤄질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본부는 한 생명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A씨는 20일 스누라이프를 통해 오리가 진료를 받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진료를 받게 되기까지 관리과에서 보였던 태도는 (오리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질 필요를 느끼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자하연을 지키며 학내 구성원들에게 기쁨을 준 오리 ‘뺙이’. 그런 뺙이에게 학내 구성원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