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이 해방되지 않는 곳에 약자들의 해방은 없다”

광화문에서 동물권리장전 선언 열려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세련된 도시 속에 감춰진 폭력이 고발됐다. 지난 토요일(11일)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동물권리장전 선언 집회가 열렸다. 흰 천으로 쌓인 닭의 시체들이 광화문 광장 계단을 내려왔고, 작고 마른 시체들 앞에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붉은 장미를 내려놓았다. “여러분 장미와 이슬이의 뼈를 꼭 한번 안아봐 주세요. 너무나, 가벼워요.” 장미와 이슬이는 DxE(Direct Action Everywhere-Seoul) 활동가들이 농장조사 중 육계농장에서 발견한 어린 닭들에게 붙인 이름이다. 장미는 죽은 채로, 이슬이는 시체 사이에서 산 채로 발견돼 구조됐으나 곧 숨을 거뒀다. 집회 중간에는 육계농장에서 짧은 삶을 마감한 장미와 이슬이를 비롯한 어린 닭들을 추모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닭의 시체 앞에서 이들은 추모의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위로했다. 추모에는 싱어송라이터인 이내 활동가의 노래 ‘꺼내지 못한 말’이 함께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로즈법(Rose’s Law)의 내용을 담은 동물권리장전 제정을 요구했다. 로즈법은 2년 전 미국 켈리포니아주에서 있었던 동물 구조 활동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닭 로즈에게서 그 이름을 빌렸다. 이들은 동물의 온당한 삶을 위해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 집을 가질 권리,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 학대와 살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 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현재의 동물보호법과 달리 로즈법은동물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별적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본다. DxE 은영 활동가는 “기억되지 못하고 쓰이지 못하는 삶과 고통이라 해서 감히 권리가 없다고 할 수 없다”며 “마땅히 분노하고 폭동을 일으켰어야 할 동물들을 대변해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외쳤다.

  이날 집회가 열린 광화문은 19년 전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자’라는 구호와 함께 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홍은전 인권기록활동가는 이동권 투쟁 과정에서 법을 어겨야 했던 장애인들의 투쟁을 회상하며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갖지 못한 존재들”이었다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경험을 떠올렸다. 홍 활동가는 “‘더이상 죽이지 말라’는 말은 (세상의 억압과) 싸우는 모든 인간들의 구호”라며 “의심의 여지 없는 이 인권의 구호를 가장 문제적인 장소로 이동해 동물들의 고통 위에 지어진 우리의 일상과 값싼 평화와 잔인한 문명을 모조리 문제 삼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애인권운동과 동물권 운동의 연결성을 강조한 것이다.

  활동가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결박해 누워있던 작년 가을을 회상하기도 했다. 세계 동물의 날이던 지난해 10월 4일, 수많은 닭이 살해당하던 도살장 앞에서 60여명의 활동가들은 동물들의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도살장 앞을 ‘락다운’(Lockdown, 도살장 등을 점거하는 동물권 직접행동)했다. 당시 점거에 참여했던 이솔 활동가는 “인간에겐 인권이 있기 때문에 점거를 하더라도 누구도 저 자신을 쉽게 죽일 수 없음을 알았다”며 “동물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를 인간들에게 빼앗겼다”고 목소리 높였다. 함께 온몸으로 도살장 앞을 가로막았던 향기 활동가는 “새들이 도살장으로 보내지고 그곳에 도살되는 일이 자연스러운 업무로 여겨지는 ‘일상화된 폭력’에 의문을 던지고 균열을 냈다”며 지난 락다운 활동을 기억했다.

  법원은 당시 활동가들의 점거를 불법으로 보고 1천 2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에 이들은 법정에서 동물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겠다며 벌금 약식명령에 대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향기 활동가는 “부당한 법에 의문을 던지고 법정에서 동물의 현실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울려 퍼질 때,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은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동물권리장전 제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재판은 초복(初伏)인 다가오는 목요일(16일)에 수원지방법원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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