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복지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 결코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어제(23일) 오후 2시,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농성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및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공동행동)’의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는 전동휠체어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공동행동은 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측의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발표를 앞두고 ‘생계급여 및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부양의무자기준은 기초생활 보장의 걸림돌로 꾸준히 지목됐다.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을 위해선 부양의무자(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수준에 미달해야 한다. 때문에 가족과 연이 끊긴 빈곤계층은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2년 8월 21일부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고, 2017년 9월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을 받아냈다. 1,842일 만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14일 발표한 ‘한국형 뉴딜 종합계획’을 통해 2022년까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된 이후 한 발짝 나아간 조치지만,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이 빠져 있고 생계급여에서도 소득 및 재산 기준을 유지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회견에선 정부를 향해 부양의무제기준을 완전히 폐지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의장은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90만 명이나 된다”며 “대통령의 공약대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종옥 서울지부장 역시 “(정부가) 최저의 생계를 보장하겠다고, 병원비 없어 죽는 일 없애겠다고 했다”며 정부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발생한 구체적인 피해에 대해 증언이 이어졌다. 동자동사랑방 박승민 간사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사례를 언급했다. 박 간사는 “(한 주민은) 갑자기 수급비가 끊겨 주민센터에 갔더니, 아들이 취직해서 더 이상 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분은 97년도 이후 아들과 연락한 적이 없는데 (수급비 중단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니냐”며 억울한 사연을 전했다.
홈리스행동 야학 학생 반짝이 씨는 들고나온 발언문을 한 글자씩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전기 값도 줘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계속 일을 해야 해요. 돈을 안 벌면 나는 굶어 죽어요. 일을 안 시켜줄 때도 돈이 필요한데 수급은 안 된다고 해요. 엄마가 있어 안 된다고 하는데 사이 안 좋은 가족 때문에 수급 못 타게 하는 거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동행동 측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가족중심복지’와의 결별을 의미한다”며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통해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 존재 자체로 시민임을 인정받고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엔 농성을 위해 천막이 설치됐다. 공동행동은 29일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발표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